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오 Nov 29. 2024

첫 눈치고 과했어.

그래도 어른 빼고 아이들은 세상 행복했겠지요?

살면서 11월에 눈폭탄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에는 없는 것 같다.

서울은 겨울을 통틀어서도 역대 3위의 기록이라고 하니..

이 정도면 첫눈에 대한 감성은 고사하고 운전길 사고가 걱정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눈이 내리고 추워지면 빙판길에 아이가 넘어지지나 않을지 걱정 삼매경에 빠진다.

창문밖에서 바라보는 풍경. 저 멀리 아이가 자빠지지나 않는지 지켜보는데 설경이 아름답긴 하다..

차 조심해라 길 조심해라 OO조심해라 해라 해라....

엄마의 잔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건 잔소리가 아니라 사랑의 외침이었다.

기특이는 첫눈이 내리자 역시나 환호성을 지르면서 강아지처럼 좋아한다.

"엄마! 이따 집에 오면 엄마랑 눈사람 만들고 싶어! 엄마 나랑 눈싸움도 하자!"

"그으래~~~~"

라고 대답은 했지만 눈이 오던 날 스케줄은 언어치료와 피아노로 꽉 차 있었다.



집에 오기 전 기특이는 항상 콜렉트콜로 전화를 한다.

1학년 아이들이 많이 할 법한 수신자부담 전화에 올해부터 빠진 기특이.

매일같이 이 번호로 전화가 오니 아예 그 번호를 아이 이름으로 저장했다.

엄마 번호도 외우고 할머니 번호도 외우고 그래도 처음에는 외워서 전화하는 게 신기했다.

그러기를 반년이 지나니 이제는 그만 전화하고 바로 학원으로 갔으면, 집으로 왔으면...

역시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기 그지없다.


첫눈이 오던 날 역시나 기특이한테 콜렉트콜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오늘 친구랑 눈싸움했어!"

"와 진짜? 친구 누구?"

"어,, 어,, 어,, 옆반 친구인데 이름은 몰라!"

그래, 이름 모르면 어떠니~ 그 시간 너랑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눈싸움하고 놀았으면 됐지.

친구들과(사실 기특이는 반에 친한 친구가 없긴 하다;;) 노는 시간을 따로 내기도 힘든 요즘 세상. 뜻하지 않은 폭설이 아이들에게는 눈싸움이라는 재미있는 놀잇감을 제공해 주었다.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요즘 초등학생들은 1학년부터도 놀이터에서 보기가 힘들다.

다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 내 아이 역시 일주일 세 번 가는 센터언어치료와 피아노, 주 1회 수영... 주 2회 방문학습지까지..

저녁 6시까지 풀로 수업이 꽉 찬 날도 있다.

하아. 그런데 그중에 무언가를 도려내려고 해도 도려낼 게 없다는 게 함정이다.

지금 내가 시키는 건 다 기특이한테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인 내 생각이고, 아이가 언제든지 하기 싫다거나 힘들다고 하면 관두게 할 생각이다. 물론 몇 번의 설득과정은 필요하겠지만.


오늘 금요일이 되니 언제 폭설이 내렸었나 싶을 정도로 다 녹아버렸다.

아이들한테는 그야말로 깜짝 선물을 주고 떠난 산타할아버지 같은 폭설.

다음에는 적당히 오세요~ 어른들은 출근길 전쟁이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