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조작농산물 개발 실험의 진상을 파헤치는 한판 승부
2016년 이른 봄. 나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즉 유전자조작농산물 문제에 꽂혀 있었다.
멀리 익산에서 들려온 GMO 벼 시험재배 소식이 발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식이 들려왔다기 보다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어떤 온라인 카페에 올라와 있는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은진 교수의 강연 후기를 통해 이 소식을 접하게 되었던 것인데, 원광대가 있는 전라북도 익산시의 농촌진흥청 시험재배장에서 GMO 벼를 시험 재배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프랑스 칸 대학 쥘 셀라리니 박사 팀의 쥐 실험을 계기로 GMO 위해성 논란이 불붙고 있는 상황에서, 농촌진흥청이 GMO 전용 실험장도 아닌 일반 품종 시험재배장에서 GMO 벼를 시험재배 했다? 왜 국가기관이 우리의 주곡인 쌀을 GMO로 만들려고 하는지, 폐쇄된 환경에서 시험재배한 것인지, 혹시나 GMO 종자가 외부 논으로 방출되지는 않을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김은진 교수 측에 연락을 취했다. 당시 지방선거 후보로 나섰던 김교수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었다. 익산으로 내려가 원광대 연구실에서 김교수를 만났다. 김교수는 지방선거에서 non-GMO 관련 공약을 준비하다가 특허청 자료를 통해 GMO 시험재배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GMO 시험재배장은 폐쇄되었지만 2008년부터 시험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익산의 대표적인 쌀 주산지인 오산면 인근에 시험재배장이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아무리 벼가 97% 자가 수분을 하는 품종이라 해도 바람에 따라 상당한 거리까지 꽃술이 날아가 교잡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GMO 종자가 확산될 위험은 얼마든지 있어 무척 우려스럽다는 말을 김교수는 덧붙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현장을 가보았다. 현장 인근 농민들의 증언으로 쉽게 GMO 벼 시험재배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과연 김교수의 말처럼 사방이 탁 트인 평지의 논이었다. 일반 벼 품종 재배용 논과 인접해 있었다. GMO 종자가 얼마든지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은 이후 확인한 다른 곳의 GMO 벼 시험재배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상북도의 한 시험재배장에서는 GMO 벼를 재배하는 논과 일반 벼를 재배하는 논이 2미터 폭은 작은 농로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었으며, 참새들이 이 논 저 논을 옮겨다니며 이삭을 쪼고 있었다. GMO 시험재배장을 가로막은 울타리는 출입문이 열려 있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폐쇄되고 차단된 환경으로 엄격하게 통제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의식은 없어보였다.
얼마 후, 농촌진흥청이 위치한 전라북도 완주에서 한 농민의 제보가 들어왔다. 농로를 따라 오가는 길에 GMO 시험재배장을 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와 농로의 경계를 이루는 녹색 펜스에 GMO 재배 표시가 되어 있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농촌진흥청에 인접해 있는 완주군 이서면 정농마을에서 친환경으로 배농사와 쌀농사를 짓는 전업농민이었다. 며칠 후 제보자와 함께 현장을 가 보았다. 진입로는 차단되어 있었고 표지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제보자는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생물학적 위험을 나타내는 바이오헤저드 엠블럼이 그려져 있었고 유전자변형생물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제보자는 차를 몰아 다른 방향의 울타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울타리 옆에는 식량과학원이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다. 흰색 펜스 너머 아직 물을 대지 않은 넓은 논이 평야처럼 펼쳐져 있었다. 제보자는 그곳이 GMO 재배단지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들이 그렇게 확인해줬다는 것이다. 시험재배용 논의 규모가 놀라웠다. 농촌진흥청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서울로 돌아와 농촌진흥청이 진행해온 GMO 벼 개발 현황을 추적했다.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는 농촌진흥청 내부 자료들과 특허청 자료들만으로도 이미 GMO 벼가 3개 품종 이상 개발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장품 원료용으로 생산하는 기능성 GMO 벼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와 있었다. 이 기능성 벼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항암 항노화 물질을 합성해내는 유전자를 벼에 삽입한 ‘레스베라트롤 합성 벼’였는데 익산에서 시험재배를 한 품종이 바로 이것이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인 바이엘사의 ‘바스타’라는 제초제에 견디는 제초제 저항성 GMO 쌀도 거의 개발 완료 단계였다. 다국적 GMO기업 신젠타가 개발해서 필리핀에서 시험재배를 했던 비타민A를 첨가한 일명 ‘황금쌀’도 시험재배를 하고 있었다. 농촌진흥청은 신젠타와 몇 개의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도 확인되었다. 그 외에 가뭄 저항성 쌀 등 도합 4~5 품종의 GMO 벼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과정에서 벼 외에 다른 작물들도 GMO 개발을 하고 있다는 자료들이 나왔다. 고추, 알팔파, 유채, 사과, 콩, 들잔디 등이 눈에 띄었다. 농촌진흥청의 GMO 프로젝트의 전모가 어디까지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취재 시작 단계에 이미 농촌진흥청에 인터뷰 요청을 해 놓았지만, 그들은 차일피일 답변을 미루고 있었다. 전화로 던진 핵심적인 질문들 몇 가지에는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둘러대기만 했고, 이메일로 보내온 답변서에서도 올해는 GMO 벼를 재배할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하지만, 농촌진흥청 관계자들의 공식적인 인정만 없었을 뿐, 이미 내부 자료들과 현장 답사를 통해 그 실체는 어느 정도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확정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인터뷰가 필수였다. 우리는 한편으로 취재한 사실들을 근거로 들어 압박하고 한편으로 집요하게 설득하면서 인터뷰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편으로 전북의 환경단체와 농민단체들이 GMO 개발 및 시험재배 현황 관련 정보공개를 농촌진흥청에 청구했는데, 그 결과가 나온다면 중요한 팩트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결국 취재 막바지 단계에서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연구정책국장이 인터뷰에 나섰고 GMO 벼 담당 연구관이 보충답변을 위해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도 이들은 그동안 노지에서 재배한 GMO 농산물 품종에 무엇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말해달라는 필자의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전체 GMO 연구 품목들이 170여가지나 된다는 식으로 포괄적인 대답만으로 일관했다. 그리고는 현재 시험재배 중인 현장을 보여주겠다며 비닐하우스 단지로 안내했다.
밀폐된 비닐하우스 안에 다 자란 사과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GMO 사과였다. 결국 이들이 인정한 것은 GMO 벼를 시험재배 했었고, 현재 GMO 사과를 시험재배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러면서, GMO를 연구개발하는 목적을 기후변화 등으로 극한 기온과 환경에서 재배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설득력 없는 주장일 뿐이었다.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GMO 품목들은 특정 제초제에 견디는 품종, 특정 기능을 강화한 품종들이어서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이용될 수밖에 없는 품종들이라는 사실이 이미 확보한 자료들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의 GMO 노지재배 현황은 정보공개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전북지역의 환경, 농민단체들의 정보공개청구에 답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해보니, 전주, 완주, 수원, 평창 등 7개 시군에서 벼, 콩, 사과, 감자, 유채, 국화, 들잔디, 포플러, 알팔파 등 9개 품목이 시험재배되고 있거나 시험재배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GMO 작물이 어느 정도의 단계까지 와 있는지 알아보았다. 농촌진흥청 연구정책국장은 인터뷰에서 ‘가뭄저항성 벼’와 ‘레스베라트롤 합성 벼’를 상용화 전전 단계인 위해성평가 단계까지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레스베라트롤 합성 벼는 산업용으로 개발하기 위해 민간 기업이 기술 이전을 해 갔다고 덧붙였다.
기술 이전을 해 간 기업 B사에 현재 상황을 알아보았다. ‘레스베라트롤 합성 벼’는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막바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 1~2년 더 실험을 진행하고 나면 상용화를 안전성 심사를 신청할 수 있는 단계라고 했다.
그런데, 담당자와의 통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스베라트롤 합성 벼는 원래 식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농촌진흥청과 공동연구를 진행했었고, 1년 전에 식용 쌀로 안전성 심사를 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GMO 쌀의 상용화를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최근 GMO 벼 개발 사실이 알려지면서 농민단체 쪽의 반발이 시작되자 식량으로 개발하는 사업은 일단 뒤로 미루고 화장품용으로 개발을 우선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B사의 담당자는 동물실험 데이터가 좋게 나와서 여론이 가라앉으면 식량용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쌀로 개발하는 것이 훨씬 활용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농촌진흥청 담당자의 답변과는 분명 결이 다른 이야기였다. 농촌진흥청과 GMO 개발 기업들은 비판 여론을 주시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016년 4월, 뉴스타파 <목격자들>을 통해 오랫동안 취재하고 추적했던 사실들이 ‘GMO 습격’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되었고, 반향은 강력했다. 처음으로 공개된 농촌진흥청의 GMO 시험재배지 지도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전파되어 나갔고, 농민단체 뿐 아니라 전국의 먹거리 단체들과 일반 시민들도 농촌진흥청을 규탄하고 나섰다. 그 후 오랫동안 GMO 개발 반대운동이 지속되었고, 결국 농촌진흥청은 2017년에 GM작물개발사업단을 해체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농촌진흥청은 7년간 벼 20종, 닭 7종, 사과 6종, 돼지 5종 등 50가지 GMO 관련 연구개발 과제를 추진했다. 그러나, GM작물개발사업단 해체는 강력한 비판 여론에 대응하는 보여주기식 액션에 지나지 않았다. 2019년에 김현권 국회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GM작물개발사업단을 해체한 뒤인 2018년 이후에도 농촌진흥청은 77종에 대한 GMO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면 안전성과 위해성이 영원히 입증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유전자조작농산물 GMO. 기후위기 대응 등 GMO 연구 개발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철저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초제 저항성 품종, 불필요한 기능성 품종 등 기업의 이윤 확대에 복무할 수밖에 없는 품종의 연구개발이 국민의 세금으로 농촌진흥청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