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태제 Oct 30. 2022

용산 미군기지 오염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한미군기지 환경 오염실상과 한국정부의 대응 실태 취재기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고, 용산 미군기지 터를 조속히 시민공원으로 만들어 개방하겠다고 선언하는 뉴스를 보면서, 4년 전 미군기지 오염 실태를 취재해서 방송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취재했던 부산 하야리아 미군 기지의 졸속 오염 정화 사례가 생각났다. 용산 미군 기지 공원화 과정에서도 이런 일이 되풀이되겠구나 싶었다.      


2018년은 부평 미군기지의 다이옥신 오염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반환 일정이 조금씩 본격화되고 있던 용산 미군 기지의 오염 정화 문제가 한미 간의 현안으로 대두되는 시점이었다. 시민사회에서는 미군 기지 오염 정화 책임을 미국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었지만, 한국 정부를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의 관심사는 왜 미군은 반환하는 미군 기지의 오염 정화 책임을 지지 않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해 가을, 우리는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 오염 실태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용산 미군 기지는 광범위하게 오염되어 있었지만 그 실태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1년 녹사평역 지하수 기름 유출 사건을 계기로 용산 기지의 오염 실태는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2001년 1월 2일 도시철도공사는 녹사평역 삼각지 방향 터널 내 맨홀의 지하수에 기름이 대량으로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사실을 서울지하철건설본부에 보고했다. 서울시는 사태 분석에 들어갔다. 매일 녹사평역 맨홀 내 지하수에 휘발유와 등유 등 7~10리터의 기름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었는데, 검출된 휘발유 성분은 국내에 시판 중인 휘발유가 아니었다. 서울시는 녹사평역 주변의 한국 유류시설을 전수 조사했지만 기름 유출 흔적은 없었다. 

서울지하철건설본부는 인근의 미군기지를 오염원으로 의심하고 진상을 파악해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한다. 이어 미군 기지 안에서 한미 공동조사가 이루어졌고, 현장에서 기름 유출의 흔적을 다수 발견하게 된다. 결국, 2년 후 한미 양국은 녹사평역 기름유출 사건은 120미터 떨어져 있는 미군기지 내부 주유소의 기름탱크에서 휘발유가 새어나와서 일어난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그동안 미군 당국이 기지 내부의 오염원 정화를 완료했다고 선언한다. 기지 밖의 지하수 오염은 서울시가 정화와 모니터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때 이후 서울시는 녹사평 역 주변에 41개의 관정을 파서 지하수 오염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8년, 우리는 서울시의 협조하에 모니터링 현장에 입회했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난 지 17년이나 지났는데도 깊이 10미터에서 건져 올린 지하수 샘플에는 번들번들한 기름 성분과 검은 유류 찌꺼기들이 둥둥 떠 있었다. 녹사평역 인근에 있는 지하수 집수정에서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역한 기름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곧 반환을 앞두고 있는 남영역 인근 미군기지 캠프킴 주변에도 지하수 관정을 21곳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오염 상태를 모니터하고 있었다. 며칠 뒤 남영역 근처를 지나가다 우연히 목격한 캠프킴 주변 지하수 모니터링 현장의 상황은 더 심각해보였다. 관정에서 뽑아낸 지하수들을 농촌에서 석유를 담을 때 쓰는 한 말 들이 플라스틱 통에 담아놓았는데, 뚜껑이 열려있기에 들여다보니 통 속의 물은 누런 빛깔이었고 둥근 기름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2001년 이후 17년동안 80억원을 들여 정화작업을 계속해왔는데도 용산 미군기지 주변의 지하수들은 이런 상태였던 것이 다. 2016년 8월의 녹사평역 주변 지하수 오염도 측정결과를 보면,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의 평균 수치가 기준치의 49배에 달하고, 그 중에는 기준치의 1,170배나 검출된 곳도 있었다. 


서울시는 이전부터 미군 당국이 기지 내부의 오염원을 제대로 정화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오랜 시간의 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염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기름이 계속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서울시의 오염 정화작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시는 2013년에 미군 기지 내부에 들어가서 오염 실태를 조사하도록 정부에 요구했다. 

서울시의 강력한 주장과 여론에 못이겨, 주한미군은 기지 내 조사를 받아들였고, 환경부는 2016년 1월과 8월, 모두 2차례에 걸쳐 용산 미군기지 내부에 대한 환경오염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주한미군 당국과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시에는 조사 결과 통보 문서가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읽고 바로 파기하라는 조건으로 왔고 서울시 담당자는 어쩔 수 없이 문서를 파기해버렸다. 2차 조사 결과는 서울시에 통보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시민단체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환경부를 상대로 이 조사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환경부는 “현재로서는 (공개에) 동의할 수 없다. 미완성된 자료는 오해와 부정적인 여론을 야기하고 동맹 관계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라는 주한미군 측의 입장을 근거로, “기본적인 외교 관계, 국가이익의 실질적 손상이 있는 정보라”라고 주장하며 외교적 파장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7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환경부 장관의 비공개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렇게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한미 당국은 기지 내부와 인근 지역 지하수 오염 조사 자료를 공개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기지 내부 45개 측정 지점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27개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 오염이 가장 심한 곳은 기준치의 670배를 기록했다. 또한 외부 관정에서는 68개 측정 지점 가운데, 41%에 해당하는 28개 지점에서 기준치를 초과했다. 녹사평역 기름 유출 사고의 오염원으로 지목됐던 주유소 담장 앞은 기준치의 550배를 기록했다. 2003년의 발표와 다르게 오염원은 정화되지 않았던 것이고, 그 외에도 많은 지역들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그러나 한미 당국이 내놓은 자료에는 내부 관정 위치가 공개되지 않아, 오염된 지역들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광범위한 오염 가능성을 접하게 되면서 시민단체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상황 파악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산미군기지 온전히 되찾기 주민모임’과 민변은 미국 정보자유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 1991년부터 2015년까지 ‘용산 미군기지 내부 유류 유출사고 기록’을 입수했다. 

확보된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은폐됐던 사고는 총 84건에 달했다. 84건 사고 가운데, 주한미군 자체 기준으로 3,780리터 이상 유출된 ‘최악의 유출 사고’가 7건. 400리터 이상이 유출된 ‘심각한 유출사고’가 25건이었다. 미군 항공유가 13, 248리터나 유출된 사건도 있었다. 많은 경우 유출된 기름은 지하로 흘러가고 토양으로 흡수되었는데, 그 중에는 한강으로 이어지는 배수로로 유출되거나 서울시 빗물 배수관으로 유출된 경우도 있었다. 

심각한 문제는 84건의 기름유출 사고가 났는데도 주한미군 당국은 서울시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시 물순환정책과 관계자는 우리 <목격자들>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84건 중 한 건도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철저한 비공개. 기지가 위치해 있어 한국 정부보다도 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서울시를 배제하는 행태. 주한미군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고 방어막까지 치는 한국 정부의 태도. 이런 것들이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런 비공개주의는 다른 미군 기지 문제에서도 똑 같이 나타났다. 환경부는 2017년 11월, 반환을 앞두고 있는 부평 미군기지가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는데, 이것도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 인천녹색연합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오염실태를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다. 그러나, 환경부는 조사결과의 요지만 공개했을 뿐 환경오염 평가보고서 원본을 공개하지 않았다. 법원은 ‘부평미군기지의 오염평가와 위해성 평가보고서 일체’를 공개하라고 판결문에 명시했음에도 환경부는 법원의 결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이것이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보 공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복되어온 태도다.     

한국 정부가 미군의 눈치를 보면서 이미 조사해서 파악하고 있는 오염 실태를 공개하지 않게 되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만약 부평 미군기지가 다이옥신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한국 정부가 알아서 환경정화를 충분히 하고 안전하게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겠지만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부산 하야리아 기지 반환의 경우를 보면 부정적인 판단이 들 수밖에 없다.       


하야리아 미군기지는 부산 시내에 위치한 16만 평 규모의 기지였고 시민공원으로 개발될 곳이어서 특히 관심을 모았다. 애초 환경부는 가장 느슨한 발암물질 허용기준을 적용해서 하야리아 기지의 위해성을 평가했고, 그 결과 오염 부지는 전체의 0.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화비용은 3억 원으로 추정됐다. 부산시는 빨리 반환받고 시민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부산시가 정화비용을 대는 것으로 결정하고 반환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2010년에 환경공단이 토양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지 전체 면적의 17.96%가 기름에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는 143억원을 들여 기름에 오염된 토양을 걷어냈다. 정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기지 내 오염 실태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처리되었다. 부산의 시민사회가 환경조사보고서 공개를 요구했지만 공개하지 않았고, 환경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해서야 위해성평가보고서가 공개되었다. 뒤늦게 확인한 위해성평가보고서 내용은 훨씬 심각했다.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Benzopyrene)과 비소(As)가 부지 내 각각 216개, 455개 시료에서 기준치를 초과했다. 그러나 당시 부산환경운동연합의 자료를 보면 부산시는 벤조피렌과 비소 정화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석면오염도 발견되었고 고엽제 매립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작성된 위해성평가보고서가 적절한 때에 공개되지 않아,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산의 시민사회가 한미 당국의 공식적인 환경오염 조사에 이런 실태들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고, 부산시의 환경정화 조치가 충분한 것인지도 검증하기 어려웠다. 결국 무수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환경 정화 조치는 끝났고, 2014년 5월 하야리아 기지 자리에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했다.

그런데, 2021년 5월, 부산 시민공원 내 국제아트센터 공사 중에 다시 심각한 토양오염이 드러났다.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허용 기준치의 5배 이상으로 발견된 것이다. 부산시는 기준치를 넘긴 유해물질이 함유된 흙 7만2천㎥를 걷어냈다고 밝혔다. 부산의 시민단체들은 시민공원 개장 전의 토양정화작업이 부실로 드러났다며 부지 전체의 토양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하야리아 사태는 용산미군기지에서도 반복될 우려가 크다. 용산 기지의 오염 실태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에서 주한미군과 정부당국의 합의로 반환이 완료되고, 한국 정부가 오염 정화작업을 하게 될 때, 충분히 오염을 정화할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오염 정화 규모가 클수록 투입되는 예산도 커지는 부담이 생기고, 이를 주한미군에게 받아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정화비용이 커질수록 비판 여론도 높아질 것이고 정치적 부담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방부와 환경부 등 정부 내 주무 부처들은 정화 규모를 가능한 한 줄이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누구에게 가겠는가. 용산 미군기지 터에 조성될 국가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건강 위협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염실태를 공개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하는 국가공원 조성 과정은 부산 하야리아 기지 사례처럼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안전하고 생태적인 시민공원을 만들고자 한다면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실태를 철저히 공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다. SOFA협정을 개정해서, 미군기지 환경오염을 미군 측이 인정하고 정화비용을 분담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동안 한국 정부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였다. 2018년도에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SOFA 협상단에 참여했던 민간위원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니, 미군 측은 치밀한 논리를 준비해오는데 한국 정부는 협상을 앞두고 정부와 민간위원들 사이에도 일체의 협의가 없고, 국방부와 환경부 등 정부 내 주무 부처들끼리도 협상 전략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없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니 미군 당국을 설득해서 환경 기준을 변화시키고 책임을 분담하게 만드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무조정실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2017년 이전의 10년 동안 주한미군기지 환경 협상을 위한 정부 내의 부처간 협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렇게 준비와 노력이 없는 가운데, 미군기지 오염 실태가 공개되어 여론이 나빠지는 것만 우려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주한 미군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도 오염실태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과 시민사회가 미군기지 오염실태를 알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질 때, 미군 측의 변화 움직임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1년 원주 캠프롱 기름 유출사고 당시 시민들의 강력한 항의 시위와 비판여론에 밀려 미군 측이 오염실태를 언론에 공개하고 정화비용을 부담했던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원의 잇따른 판결 취지가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 조사 보고서를 남김없이 공개하라는 것이었고, 여론 조사에 나타난 시민들의 생각도 90% 이상이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용산미군기지 터에 온전한 국가공원을 조성하고 시민들에게 제대로 돌려주려면, 이제라도 한국 정부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미군


환경오염


용산



이전 09화 죽음의 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