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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Aug 16. 2021

라면을 잘 먹지 못 하는 이유

라면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난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형과 둘이 있던 어린 날에는

우리는 자주 라면을 끓여먹었다.


엄마는 건강에 안좋으니 라면을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 시절 라면은 참 맛있었다.


엄마가 안계셨던 그날도 형은 몰래

찬장에서 라면 봉지를 꺼내고 있었다.


주황색 S라면 봉지를 바스락거리면서

형은 나도 라면을 먹을 거냐며 반강제로 물어보았다.


형이 혼자 먹으면 내가 엄마한테 형이 또 라면을 먹었다고

냅다 일러 바쳐버릴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형은 나를 라면 면발처럼 꼬불꼬불하게 엮인 공범으로 만들고

흔적도 없이 다 먹어치우는 완전범죄를 꿈꾸고 있었다.


한사람당 라면 두개정도는 먹을 수 있다는 형의 과감한 셈범에

이미 4개의 라면이 냄비에 들어가서 끓고 있었다.


그렇게 푸짐한 라면이 완성되고 첫 젓갈을 들었는데

라면 면발에 왠 참깨가 맛있게 뿌려져 있었다.


참깨라면이 아닌 S라면에 왠 참깨인지 자세히 보는순간

그것은 참깨의 형상을 한 푹 삶아진 개미들이었다.


찬장의 개미들이 라면봉지를 뚫고 들어가서

라면 면발 안에서 개미굴을 만들고 살고 있었나보다.


난 도저히 개미라면은 먹을 수 없다고 소리쳤지만

형은 열심히 젓가락으로 라면의 개미를 골라내고 있었다.


형은 그렇게 개미를 다 건져내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너와 나는 이 S라면을 꼭 다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 몰래 라면을 끓인것도 문제인데

4개나 끓여서 남기기까지 했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사이 S라면은 불어서 우동 정도의 굵기가 되었고

국물까지 흡수되어서 아주 보기싫은 퉁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날 형제는 흐느끼면 개미라면을 다 먹어야만 했고

난 그날부터 성인이 될때까지 라면을 안 먹었다.


.


이제는 가끔 라면을 먹지만

아직도 내가 먼저 주도적으로 즐겨먹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라면을 잘 먹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뚱뚱한게 라면 잘 먹게 생겨서 특이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라면을 잘 안먹었다고 대답하면

고맙게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잘 살아서

유기농 음식만 먹고 라면먹는 습관이 들지 않은

청정한 사람으로 오해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라면을 먹는 상황이라면

사전에 개미를 확인할 수 있도록

라면은 내가 직접 끓이는 것을 선호하며

먹으면서 면이 퉁퉁불면 먹지 않는다.


그리고 S라면은 아직도 잘 못먹겠으며

더불어 억울하겠지만 참깨라면도 못먹겠다.


개미는 S라면에 참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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