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훈희 Aug 18. 2021

보잘 것 없는 휴지 한장이 소중한 이유

휴지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다.


예전에는 공중 화장실도, 학교 화장실도, 지하철역 화장실도

휴지걸이만 있을 뿐 휴지는 배출하는 자의 셀프서비스였다.


어린시절부터 배변활동이 언제 진행될지 예측이 안되고

장 자체가 뇌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자유로웠던 나는

항상 아빠가 챙겨다주시는 주유소 휴지를 들고 다녔다.


특히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었던 경험이 많은 나에게

휴지는 상당히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난 이 귀중한 휴지를 최대한 아껴서 썼다.



코나 나와도 휴지를 쓰지않고 물을 썼으며

땀을 휴지로 닦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나는 항상 

휴지를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다.


솔직히 친구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그 족속들은

코가 나와도 휴지를 달라며 날 찾아왔고

뭘 조금 흘려도 휴지를 달라고 찾아왔다.


휴지 아까우니 그냥 물로 닦거나 걸레로 닦으라고 하면

치사하게 휴지 한장 가지고 그러냐며 토라졌다.


그렇게 휴지를 다 나눠주고 나면

남에게 간 휴지는 다시 돌려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

정작 화장실에 가서 내가 쓸 휴지가 없었던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에는 절대 빌려주지 않는 

나만의 신성불가침 휴지를 지정해서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다녔다.


신성불가침 휴지의 문제는 일반 배포용 휴지를 다 퍼주고

휴지가 없다고 한 이후 내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이 휴지 거지같은 족속들이 휴지를 숨긴 것을 용케 알아내고

거짓말을 쳤다고 윽박지르는데 있었다.


자기가 휴지만도 못하냐는 둥 

휴지도 못주는 쪼잔한 녀석이라는 둥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난 그렇게 아빠가 주신 소중한 휴지 한장을 지키기 위해 

피터지는 투혼을 불사르며 학창시절을 지냈다.


.


이제는 대부분의 공중화장실에 휴지가 있다.


그래도 학창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난 언제나 휴지를 소중히 지니고 다닌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내가 휴지를 좋아한다며

항상 주유소 휴지를 쓰시지 않고 모아서 주신다.


그 휴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 사소한 휴지 한장에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과

그동안 휴지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열정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만 몰래 휴지를 나눠주었던 

희생과 인류애가 녹아있다.


휴지처럼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사소해보여도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 들이 많다.

내 필통 속에 즐겨 쓰는 펜 한자루나

내 지갑의 천원짜리 한 두장이 그렇다.


이런 것들은 주로 아무렇지 않게 빌려쓰고

돌아서서 쉽게 잊을 수 있는 것들이다.


휴지를 볼 때마다 그 얇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힘들었던 예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남들이 가지고 있는 사소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자 노력한다.


내 휴지 한 장이 소중하듯

남의 휴지 한 장도 소중하고

내 돈 천원 한장이 소중하 듯

남의 돈 천원 한장도 소중하다.



▼ 조훈희 작가의 출간 도서 "밥벌이의 이로움" 찾아보기

https://bit.ly/2KUc0oe


이전 05화 라면을 잘 먹지 못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