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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Aug 20. 2021

고등어를 먹을 때마다 바다가 울컥한 이유

고등어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엄마는 종종 나를 업고 시장에 가셨다.


나는 포대기에 업혀서 시장에서 장을 보던

어린 날 엄마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다행히 아직 남아있다.


엄마 등에 업혀서 등에 귀를 대고 있으면

시장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고


그 따뜻한 음성과 따스한 햇살에 나른해져서

등에 업힌 채 어느새 잠이 들곤 했다.


등 뒤에서 들을 때 엄마는 시장에 갈때마다

고등어가 얼마인지 물어보셨다.


그 시절엔 고등어를 통으로 두세마리씩 묶어서 팔았고

지금 처럼 소량의 진공판매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티로폼 박스 안 얼음위에 놓인 생선을 고르면

백년 정도 산 듯한 크기의 

사람의 하반신 높이의 동그란 나무 도마 위에서


에이포 용지를 반으로 접은 듯한 크기의 네모난 칼로

퍽퍽 소리를 내며 머리와 꼬리를 잘라서 

까만 비닐봉지에 담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남들이 사가는 고등어를 바라보시고는

고등어를 사지는 않으셨는데 그것은 아마도

아빠와 형과 내가 고등어를 잘 안 먹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난 고등어 잡는 퍽퍽 소리에 엄마 등뒤에서 잠이 깨어

살짝 실눈을 뜨고 고등어가 손질되는 광경과 

고등어가 얼마인지 물어보는 엄마의 목소리만 듣고 

싱겁다는 듯 다시 잠이 들었다.


.


시간이 지나 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두 아들들이 집 밖에서 밥을 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어머니는 고등어로 만든 반찬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드시면서

본인의 어린시절에 아버지가 소금에 절인 고등어를 사오시는 그날은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말씀 하셨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오래된 최고의 기억을 떠올리시며

내가 아주 애기였을 때부터 매번 시장에서

고등어 가격을 물어보셨나 보다.


더욱이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통통하고 푸른 고등어가 어머니께 주는 기억은

더 슬프고 그리운 애잔한 기억이었을 게다.


어쨌든 어머니가 그 동안 고등어를 요리할 수 없으셨던 것은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는 생선을 차마 

혼자의 추억을 이유로 드실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어에 대한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다음부터는

난 내 자식들이 내 등에 업혀있을 정도의 아기때부터

따듯한 좋은 기억들을 많이 남겨주려고 노력한다.


아무것도 기억 못할것 같은 어린아이였던 나도

엄마 등에 업혀서 보고 들었던 

고등어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등어의 겉은 푸르지만 속은 하얗고

첫 맛은 짭쪼름 하지만 속살은 부드럽고 고소하다.


푸르고 짠 바다의 모습이 고등어의 겉 모습이듯

어머니는 남들이 보기에 거센 파도와 수 많은 생명들을 품은 

바다처럼 억척같이 살아오셨을 테지만


난 하얗게 부드럽고 고소한 고등어의 속 살과 같은

포근한 어머니 등에 업혀서 따뜻한 음성을 듣고 자랐다.


고등어를 먹을 때마다 

바다 속 가슴 한켠이 울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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