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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Aug 20. 2021

나이가 들어 나훈아가 좋아지는 이유

나훈아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아빠의 노래는 반박자 정도 늦었다. 

중학교 시절 아빠가 소주를 두병 정도 드시고

​거나하게 취하시면 다같이 노래방을 가자고 하셨다.  

그러고서는 아빠는 항상 내가 모르는 노래를 부르셨다.

​그 중 빼놓지 않고 부르시던 노래는 나훈아의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였다.


노래방 반주가 먼저 가사와 함께 흘러가면 

매 마디마디 마다 반박자 정도 늦게 가사를 따라 읊으셨다. 

​​

'간간히 너를 그리워하지만 어쩌다 너를 잊기도 하지' 하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시작했다가는

'초저녁 작게 빛나는 저 별을 나처럼 보면서 울지도 몰라' 하며

하소연 하는 목소리로 애원을 하다가는


'루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 하며 

우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바닥을 보고 배를 쥐고 소리를 치셨다. 

특히 '루루루 루루~' 구간은 마지막에 끝난 듯 하다가

다시 한번 구슬프게 울어줘야 노래가 끝이 났다.  

삼류 시집에나 나올 법한 가사를 읊는 아빠를 보며

아빠는 왜 맨날 노래방에서 똑같은 노래만 고르고,

왜​ 저렇게 신나지도 않는 노래만 부르실까 궁금했다. 

그리고 난 노래방 브라운관에서 나오는 

자연의 동물들 영상 앞에서 배를 쥐고 노래 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본체 만체 하며

선곡책 맨 마지막에 붙어있는 이달의 최신곡을 뒤적였다.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아빠는 역시나 

아빠가 부르는 나훈아 노래처럼 

노래 박자보다 반박자 정도 어긋나게 박수를 짝,짝 치시다가는 

내가 부르는 노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애꿎은 탬버린 머리만 역시나 엇박으로 흔드셨다.

.

나이가 드니 언젠가부터 듣던 노래만 듣는다.


​내가 듣던 최신곡들은 내 학창시절에 멈춰서 있었고

최신차트의 이름도 모를 가수들의 노래는 

도대채 무슨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 젊은 가수들이 멋있다기보다 귀엽게 느껴지는 순간

그 때부터 내 플레이리스트의 업데이트는 멈춰버렸던 것 같다.


새로 나오는 노랫말이 이해가 안 되는 반면

시간이 갈 수록 점차 부모님 시대 가수들의 노랫말이


이해가 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나도 내 부모님처럼 나훈아의 '테스형!'을 들으며

노래말이 마치 내 삶 같아서 애원하며 눈물 짓고 있었다.


최신곡이 멈춰섰다는 것은

이제 나에게는 젊음이 멈춰서 버린 것 같고


옛 노래를 찾는다는 것은

이제 나에게는 늙음이 다가오는 것 같다.


그렇게 슬퍼도 굳이 나훈아를 찾게 되는 것은

나훈아 목소리 안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이 있고,

그렇게 느끼셨을 감정들을 나도 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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