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훈희 Aug 15. 2021

외식 때 부모님께서 드시던 것들

외식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아빠가 회사에서 보너스를 받은 날은

가끔 외식을 했다.


외식이라는 것의 의미는

근사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보다

그저 집 밖에서 밥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운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주로 영등포 가는 길목에 있는

푸른색 간판의 대원횟집 이란 곳을 갔다.


횟집 창가 자리에 앉아서 

까만색 책자로 된 메뉴판을 들고 먹고 싶은 것을 골랐다.


그렇게 형과 나는 신나게 앉아서는

메뉴판 맨 뒷페이지에 있는 

항상 같은 음식을 골랐는데


난 매번 김밥을 시켰고, 

형은 매번 유부초밥을 시켰다.


예쁜 접시에 담겨나온 김밥과 유부초밥은 

낙교 두세알과 함께 속살을 보이며 교태를 뽐냈다.


우리는 마치 어른들이 비싼 광어회를 먹는 것처럼

앞접시에 회간장을 따라놓고 김밥을 콩콩 찍어 먹었다.


흰색 요리사 모자를 쓴 주방장이 주는 김밥을

창밖에 움직이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보며 먹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두 아들이 허겁지겁 요리를 즐기는 동안

엄마는 외식하면 설겆이 안해도 되니 좋다고 하셨고

아빠는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좋다고 하셨다.


아빠는 몇일 출장을 다녀오면 

회사에서 보너스를 주신다고 하셨고

그렇게 아빠가 집에 몇일 못 들어오신 날 이후에는

어김없이 우리 식구, 나는 김밥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아무리 그 당시의 생각을 떠올려봐도


형과 내가 신나게 외식을 즐겼던 그 시간에

엄마 아빠는 어떤 메뉴의 음식을 드셨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


이제 우리는 더이상 

아버지께서 몇일 집에 못들어 오시고 

보너스를 타오지 않으셔도

김밥을 사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살고 있다.


심지어 어린시절 김밥을 입에 물고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만 볼수 밖에 없었던

광어회와 새우튀김까지 사먹을 수 있을 정도의 부자가 되었다.


어느날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들과 외식을 갔다.

근사한 뷔페에 자리를 잡고 여러가지 음식을 떠왔다.


내 어머니는 아직도 먼저 본인 밥을 드시기 보다는

내 아들을 위해서 반찬을 작게 잘라주시거나

매운 것들을 물로 씻겨서 먹여주신다.


이제 우리가 할테니 편하게 식사하시라는 말에

아버지는 눈치를 보시며 소주를 시키시고

어머니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잘게 쪼개며 말씀하신다.


평소에 애들 때문에 너희들 밥도 제대로 못먹으니

엄마 아빠 있을 때라도 편하게 먹으라고.


유치원생 아들이 접시를 들고 가더니 김밥 몇알을 가져왔다.

나 어린 시절엔 김밥 스스로도 메뉴였는데

요즘은 간편식 혹은 사이드메뉴 정도로 전락한 김밥을 바라본다.


아들은 아직은 입이 작아서 김밥을 한개를 한입에 먹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시고는 김밥을 풀어서

밥을 조금 빼고는 작게 다시 뭉쳐서 주신다.


철없는 내 아들은 할머니 젓가락 끝의 김밥만 바라보고는 

시금치랑 단무지를 빼달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내 아들의 접시에는 작게 만들어진 김밥이 놓이고

내 어머니 접시에는 김밥에서 빼놓은

김이 덕지덕지 붙은 쌀알과 시금치와 단무지가 놓인다.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시절 김밥을 맛있게 먹을 때

내 어머니는 무엇을 드셨을지......



▼ 조훈희 작가의 출간 도서 "밥벌이의 이로움" 찾아보기

https://bit.ly/2KUc0oe


이전 14화 고등어를 먹을 때마다 바다가 울컥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