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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Jul 21. 2021

반강제 은퇴한 축구인의 축구교실

축구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태어나서 축구경기를 3번 해봤다.


첫 축구는 국민학생 시절이었다.


그 당시도 난 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내 모습을 익히 본 친구들은 날 골키퍼로 배치했다.


나 역시 드넓은 땡볕 아래의 흙바닥 위에서

이사람 저사람과 몸을 부딪히면서까지

그닥 뛰고 싶지 않아서 대충 골대 앞에 서 있었다.


축구는 생각보다 뛰지 않아도 되는 경기였고,

흐뭇하게 팔짱을 끼고 먼산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 뒤로 여러번의 축구공이 스쳐 지나갔다.


골대 앞에 가만히 서있으면 된다 그래서 가만히 서있었는데

친구들은 축구공이 내 뒤로 스쳐 지나갈 때 마다 불같이 화를 냈고

그렇게 난 골키퍼로 필드에 데뷔를 하자마자 은퇴 했다.


두번째 축구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이때 역시 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번에도 친구들은 골키퍼를 권유했다.


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골피커는 상당히 욕 먹는 자리임을 알고 있었고,

그나마 책임이 덜한 수비수를 자처하고 운동장에 섰다.


호각이 울리자마자 상대 팀의 공격수는

엄청난 속도로 공을 몰면서 나에게 오고 있었다.


우리 팀 친구들은 그 공을 빨리 걷어버리라고 소리쳤고

난 그 공을 우리 골대 쪽으로 못 오게 하기 위해서 있는 힘껏 걷어찼고,

그 공은 멋지게 우리 골대 안의 그물망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난 수비수 포지션에서도 은퇴 했다.


세번째 축구는 군대 시절이었다.


계급도 낮은 짬찌가 군대 축구를 열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욱이 수 많은 간부들까지 참여한 그 경기에서

난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할지 깊은 고민을 했고

결국 난 자살 골 확률이 적어 보이는 포지션인

두개의 심장을 가진 미드필더를 선택했다.


저 멀리서 대령분께서 공을 몰고 내 쪽으로 오고 계셨다.

저 공을 보냈다가는 선임들의 욕을 먹을 것이 당연했다.


난 있는 힘껏 두눈 꼭 감고 공을 걷어 찼고,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대령님은 정강이를 부여잡고 연병장에 누워계셨다.


그렇게 내 인생의 마지막 축구경기는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끝이 났고

더불어 내 군대 생활과 축구 인생도 끝이 났다.


.


평생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살았다.


그날 이후로도 군대 전투체육, 회사 체육대회 등

축구를 해야만 하는 기회는 많이 왔지만

그때마다 멀쩡한 발목을 접지르거나


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경쟁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는 스포츠 경기에는

굳건한 내 신념에 따라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썰을 풀며 위기를 넘겨왔다.


문제는 두 아들이 크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치원 하교길에 학교 운동장에서

시간 때우기용으로 공을 차기 시작한 아들이

자꾸 공을 차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축구의 개념도 기술도 없이

공을 차서 골대에 넣는 것이 재밌는 아들은

자꾸 아빠가 축구에 참여해주기를 바랬고,


별 생각없이 한 두번 차 주기 시작한 축구공에

내 아들뿐 아니라 같이 하교한 동네 유치원생 열댓명이

갓 튀겨져 나온 꽈배기에 묻혀지는 설탕처럼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공을 차고 다니면

세상 신난 아들과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다니는데

이 경기는 아군도 적군도 없이

누구든 공을 차서 아무 골대에나 넣으면

다같이 행복하고 다같이 즐거운

세상 평화로운 축구 경기다.


제일 못하는게 축구라

평생 축구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다짐하며 살아왔는데

아들 덕분에 평생 하지 않겠다던 축구도 하고

제일 못하는 축구를 제일 잘 해주는 동네 아저씨가 되어간다.  


자식은 아버지에게

죽도록 하기 싫고,

죽도록 못했던 것들을

잘하게 하는 묘한 초능력이 있다.


선생님보다

군대보다

회사보다

더 큰 힘이

내 아들에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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