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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Jul 22. 2021

김치전을 잊은 떡볶이의 슬픔

떡볶이 - 어른이되면 보이는 것들 중

태초에 김떡순의 '김'은 김밥이 아니다.

1호선 종각역에서 내리면 보신각이 있었고,

보신각 옆 빠이롯트 건물 부터는 포장마차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포장마차의 두꺼운 주황 비닐 속에는

젊은 연인들이 호호 거리며 떡볶이를 먹고 있었지만​

한손에 단어장을 펴고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계속 손목시계를 보는 YBM 수강생들도 있었다.

​더러 연세 있는 분 들은 파란 프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종이컵의 끝자락 보다 더 높게 차오를 정도로

꼴랑꼴랑하게 가득 담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종각역부터 종로3가까지 줄지어진 포장마차 개수는

어림잡아도 30개는 넘어 보였는데,

메뉴와 그 맛은 대충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탑골공원을 기준으로 종각역 방향은 무조건 김떡순이었다. ​

​ 

김떡순의 '떡'은 예상대로 떡볶이지만

'김'은 김밥도, 김말이도 아닌 김치전이었다.

튀김을 팔기 위해서 튀김 솥과 다량의 기름을 쓰는 것보다

부르스타와 후라이팬으로 대체된 바삭함을 주기 위함이었나보다.

또한 김떡순의 '순'은 순대는 맞지만

소금에 찍어먹는 우리가 흔히 먹는 순대가 아니었고,

매운 고추 양념에 깻잎과 같이 볶아진 순대볶음이었다.

이렇게 김떡순을 시키면 초록색에 흰색 얼룩이 있는

프라스틱 접시 위에 비닐을 깔고 대충 섞어서 내 앞으로 던져주셨다.

탑골공원을 기준으로 종로3가 방향은 메뉴가 퍽 다양했다.

김떡순에서 조금 더 진화한 닭발 볶음을 팔기도 했는데

이런 요리류 뿐만 아니라 8절 도화지 만한 쥐포도 있었으며

바다 어망의 대각선 무늬가 남아서 

오래 감지 않아 기름에 떡진 머리카락마냥 

새까맣고 말도 안되게 기다란 대왕문어 다리도 팔았다.  

건어물과 함께 후렌치 후라이의 조상 뻘 되는

가늘고 긴 고구마 튀김을

산처럼 쌓아놓고 파는 포장마차도 더러 있었는데

이는 종로3가에는 영화관 3대장인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 그리고 서울극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난 주로 신나라레코드 주변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김떡순을 먹었는데​

그 집을 찾은 이유는 맛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포장마차 위에 걸려 있는 자전거 바퀴에 바람넣는 것 처럼 생긴 호스 끝의 레버를 돌리면​

시원한 물을 눈치보지 않고 맘편히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김떡순의 김치전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처럼 

김떡순의 순대가

매운 볶음 양념을 씻어내는 것 처럼 

야시시한 샛주황 전구색와 비닐로 뒤덮힌 포장마차는 사라졌고,

깔끔한 떡볶이만 요리가 되어 프랜차이즈 상점의 메뉴 속으로 들어갔다.

더이상 새까만 후라이팬의 기름이 닦이기도 전에

다음 반죽이 올라갔던 김치전과 순대 볶음을 먹을 순 없다.

가끔 떡볶이 요리에 포크가 나오며,

발렛파킹까지 되는 식당의 떡볶이는

쭈꾸미 몇마리와 새우​

​그리고 서양의 피자처럼 늘어나는 치즈를 꼴 같지 않게 품고는

와인과 곁들이면 더 맛있고 고급지다며

상당히 높은 대가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난 아직 이렇게 격조 높으신

떡복이를 영접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퇴근길에 예전의 떡볶이를 찾아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가끔 사먹곤 하는데

정장에 서류가방을 들고 길에 서서 떡복이를 먹는 내 모습 역시

남들 보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난 아무래도 

나의 의식의 불편함과 

남의 시선의 불편함 사이에서 ​

오도가도 못하는 떡볶이를 물고

오도가도 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서있다. ​

그 사이 떡볶이는 김치전의 손을 놓고 말았고,

김치전은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렸다.

김치전이 그러하듯,

나 역시 불편함 속에서 눈치를 보다가

김치전 같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있나보다.

잊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그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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