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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Aug 08. 2021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게된 이유

옛사랑 -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 중

슬픈 일이 있을 때 우린 '옛사랑'을 들었다.


이 노래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

학교 앞의 오래된 레코드 바를 참 많이 다녔다.


잔잔한 기타선율과 

이문세 아저씨의 담담한 목소리

가끔씩 타닥 튀는 레코드 판의 음색

그리고 어두운 벽면에 가득 꽂힌 레코드 판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루어질 때

갓 스무살을 넘긴 대학생인

우리의 마음은 촉촉하게 젖기 시작했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첫 소절에 병맥주 뚜껑을 치익 따고는

조용히 병목을 부딪히고 강냉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강냉이를 열심히도 털었다.


고백했다가 호되게 거절당한 이야기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

곧 군대에 가는 이야기

과제와 학점이야기

졸업 후 진로이야기

정치 이야기


그러다가 서로 울기도 자주 울었고

그걸로 놀리기도 참 많이 놀려댔다.


사장님은 우리의 푸념이 재밌는지

웃으며 바라보시다가 너무 울고 놀리고 있으면

신나는 노래로 바꿔주시곤 하셨다.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이었다.


이제는 모두 회사원 더하기 아저씨가 되었고

퇴근시간에 맞춰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방문했다.


철없던 대학시절 이야기를 

전채요리처럼 살짝 꺼내서 서로 입맛을 보았다.


한참 뒤 사장님은 겨우 우리 얼굴을 알아보시고는

오랜만에 왔다며 그 시절 매번 듣던

이문세의 '옛사랑'을 틀어주셨다.


예전과 똑같은 기타선율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옛사랑'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의 불타는 사랑과 고백의 열정,

입대의 두려움과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

그 어떤 것도 지금 우리에겐 없었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언가에 지쳐서 의자에 늘어진 채

옛사랑을 들으며 조용히 맥주만 마셨다.


'누가 울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노래가 중반에 접어들자 한 친구가 글썽였다.


우리는 놀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청승맞게 나이먹고 왜 우는지 물었다.

그 친구는 울먹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그 말에 우리는 더이상 

우리들의 눈물에 대해 서로 놀릴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는 옛사랑은 

잠시 사랑을 나눈 이성이 아닌 

평생 날 사랑해준 부모님이었다.


그 사랑을 부모가 되어서야 알았고

어른이 다 되고 인생이 중반까지 와서야

겨우 느낄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옛사랑이 되어간다.


아저씨의 눈물과 옛사랑은

청년의 그것보다 한참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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