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현 성당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진 날이었다. 서울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리고 비는 며칠째 거른 날이 없었다. 비가 오니 마음은 더욱 내려앉아 이대로 주저앉으면 하루가 무겁게 지날 것 같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10시 미사 시간에 맞춰 약현성당으로 향했고 서부역 쪽 입구로부터 언덕길을 한참 올라 성전에 들어섰을 때 바지는 모두 젖어 있었다. 뒷 쪽에 자리를 잡고 숨을 고르며 눈을 감는다.
마침 오늘은 보좌신부님이 새 임지로 떠나시는 고별 미사였다. 헤어지는 아쉬움과 새로운 축복을 기원하는 미사를 마치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 구석구석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약현성당은 명동성당보다 6년 빠른 1892년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여 건축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벽돌 교회 건축물(사적 제252호)이다. 1998년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서 성당 내부가 모두 전소되는 일이 있었고 그 후 원형 그대로 다시 복원하여 2000년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약현성당은 벽돌을 쌓아 올려 지은 건축물인데 건축사적 가치 못지않게 이곳을 쌓아 올린 벽돌의 유래가 더 큰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튼튼한 교회를 짓기 위해서는 좋은 벽돌을 만들어야 했고 좋은 벽돌을 만들기 위해 좋은 흙을 찾아야 했는데 그 당시 왕궁에서 사용하는 기와를 굽던 곳이 와서현(지금의 국군 중앙성당, 왜고개 성지)이었고 이곳의 흙이 가장 좋은 흙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님과 프랑스에서 온 베르뇌 주교와 여섯 분의 신부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하신 남종상 요한 성인, 최형 베드로 성인의 시신이 1900년 초 발굴될 때까지 묻혀있던 곳이었다. 그래서 순교 성인들의 살과 피로 세워진 성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문에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언덕이 꽤 가파른데 이곳에서 박해시대의 참형장이었던 서소문 밖 네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높은 고층빌딩들로 숲을 이루고 있지만 약현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서소문 형장은 바로 신앙 증거의 현장이기도 했을 것이다.
입구의 언덕길을 올라 오른쪽에는 서소문 순교성지 전시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약현성당의 역사와 서소문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있다. 그리고 당시의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어서 박해시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신앙의 선조들이 전하는 손길을 느껴볼 수 있었다. 전시장의 유도 사인을 따라 천천히 살펴보며 한 바퀴를 다 돌아 출구로 향해 갈 때 마지막 눈길이 닿은 곳에서 한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선영 신부님은 1923년 25세에 약현동 본당 출신 서울교구 사제로 서품 되었다. 신학교 교수와 보좌신부를 거쳐 1930년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선교사제로 중국에 파견되었는데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외국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되었고 '대리 주교'가 되기도 한 신부님은 신자들과 계속 머물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 정부가 주도하는 애국 교회가 세워졌고 김선영 신부님은 애국 교회 가입을 거부하면서 1951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다. 회유와 협박을 견디며 15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1966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져 8년 동안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병을 얻어 1974년 75세에 생을 마치고 수용소 인근 산에 죄수들과 함께 묻혔다.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 중국의 한 조선인 병원에 근무하던 수녀님이 한국의 가족과 연락이 닿으면서 우리 교회에 신부님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고 그 후 신부님의 유해를 모시기 위한 많은 노력 끝에 묘소를 발견하여 이 땅을 떠난 지 57년 만인 1987년 그리운 고국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거행한 후 용산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는데 그 당시 신문 보도에 의하면 장례미사를 촬영하던 사진기자도 울면서 촬영했을 만큼 모두가 신부님의 삶에 깊은 탄식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김선영 신부님은 근현대 순교자 명단에 오르고 2013년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었다.
교회로부터 단절된 그 외로움을, 희망이 보이지 않았을 그 고통의 시간을 견디게 하고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그 신념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긴 시간 동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련 중에 점점 희망을 잃으며 속앓이를 하던 중이었다. 처진 어깨, 힘없는 걸음걸음... '버티고 서야만 한다' 마음먹고 빗속으로 뛰어든 순례길이었다.
전시장의 마지막, 김선영 신부님의 사진 앞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고 이내 헉헉하며 속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견디셨어요"
" 견딜게요, 견디어낼게요... 희망을 희망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