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날 무렵 질문하는 친구가 있다. 운동장을 향해 가던 아이들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지고, 한숨과 눈총이 교실을 메운다. 질문은 배움을 위한 기본적인 행위지만, 드러내 놓고 묻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수업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을 때! 좀 똑똑한 친구들은 조용히 선생님을 따라가서 목적을 채운다. 질문은 물어보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 간의 관계가 필요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교실에서, 회의실에서, 강의장에서… 질문은 언제나 공개됐다. 누군가 묻고 누군가 답하면, 지켜보는 수많은 눈이 있다. 질문은 때론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불편한 일이었고, 답하는 사람에게는 도전받는 느낌의 불쾌함이었으며,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귀찮은 시간이다. 질문은 해야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AI, 질문의 익명성을 보장하다.“
AI에게 질문하면 보는 눈이 없어서 좋다. AI는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도 관심 없다. 나는 세상의 많은 질문자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가상공간에 AI와 나 둘만 있다. 나는 이런 독립성과 익명성이 좋다. AI가 익명성을 보장하며, 질문은 자유로워졌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더 쉽게 알려달라고 몇 번이고 보채도 AI는 친절하다. 가끔은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질문이 구체적이고, 인터넷에서 찾은 다른 정보를 제공하면 AI는 금세 제자리를 찾아온다. 익명으로 쌓아 올린 질문은 시도하기조차 버거웠던 주제들을 관심의 영역으로 끌어당겼다.
자유로운 질문과 AI의 제약 없는 답변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질문이 이상한 건 아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궁금한 것이 떠오르면 AI에게 묻는다. “이 개념은 왜 중요해?”, “다른 예시를 들어줄 수 없어?”, “두 개의 차이가 뭐야?”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답을 듣고 또 질문이 생기고, 외우지 않아도 지식은 스스로 자란다. AI와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녹는다. 예전 같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에 금세 지쳐서 덮어버렸을 책도, 사진 한 장 찍어서 AI에게 설명해 달라고 하면 책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까지 연결해서 내용을 풀어준다. 답변이 주는 보상에 나는 즐겁고, 때론 재미있는 전자오락을 하는 것 같다.
“질문이 습관이 되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말싸움하다 질 것 같으면 텔레비전에 나온 이야기라고 우기면 되었다. 텔레비전과 전문가의 이야기는 정보에 믿음을 주는 보증수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였던 정보 중에는 합리적인 근거를 가진 정보도 많지만, 부풀려지고, 의도가 있고, 한쪽 의견만 강조된 정보도 있다. 과거 백 년 전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왜곡된 정보,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 가짜뉴스를 걸러내야 한다.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 손해 없는 투자를 위해, 정직한 사회 발전을 위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른 관점을 탐색하고, 스스로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만원 지하철에서 밀쳐지는 것처럼, 밀려드는 정보가 우리의 시선을 한쪽으로 고정하려 할 때,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Post-It, 비아그라, 전자레인지 같은 우연과 창의로 내가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ChatGPT를 사용하면서 습관처럼 몸에 익숙한 질문은 유튜브, 신문, 텔레비전에 쏟아지는 정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예전 같으면 의심 없이 받아들일 정보를 ‘정말 맞는 이야기일까?’하고 정보에서 제공되는 근거들을 AI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질문은 주체적인 삶의 시작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과 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을 넘어 나 스스로 생각과 결정, 선택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과거 자신의 결정과 믿음이 현재를 구성하듯, 현재의 결정과 믿음이 미래를 결정한다. 과거 나에게 수동적으로 주입된 정보와 선동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질문의 자유가 주어진 시대에 내 미래의 결정권자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