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대해

by 박정훈

질문은 모난 돌이다. 모난 돌은 정을 맞는 대상이다. 모두가 옳다고 믿는 상식을 겨눌 때, 질문하는 사람은 비난과 억압을 받기에 사회는 매끄럽고 반듯한 돌을 선호한다. 정해진 체제와 시험에 순응하는 엘리트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전환점에 매끄럽고 반듯한 엘리트들이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천동설을 의심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창조론에 맞서 진화론을 제시한 찰스 다윈, 남성 중심의 과학 세계에 도전한 마리 퀴리. 이들은 모두 시대가 요구하던 ‘능력 있는 엘리트’이기 이전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 모난 돌이었다. 때로는 칼 마르크스나 레닌처럼 결과가 논쟁적이거나 퇴행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 덕분에 우리는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고민할 수 있었다. 역사는 질문에 희생을 요구하지만, 진보를 선물한다.


“4치 산업혁명은 질문이다. 질문혁명!”



천재들은 세상의 지식과 재산을 가상세계로 모으고,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보물들을 추론하고 있다. 광부들에게 호미하나 던져주고 금을 찾아보라는 악덕 채굴업자와 같이, 그들은 몇 줄의 대화를 입력할 수 있는 프롬프트 공간을 던져주고 ‘해보시든가!’ 하며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다. 가상의 광산을 파헤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별거 없네! 신기한데! 나하고 상관없어!”


사람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도구가 무엇인지 모른다. 호미인지? 삽인지? 굴착기인지? AI를 향한 자신의 반응이 곧 손에 쥔 도구이며 능력이다. 롤플레잉 게임에서는 자신의 능력치에 따라 가질 수 있는 무기가 다르다. 무기의 능력치가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괴물 숫자의 차이를 만들 듯, 질문의 능력치는 차이를 만든다. 농업혁명의 잉여생산 독점, 산업혁명의 부의 집중, 정보화 혁명의 정보화 격차를 기억하자. AI 시대 질문의 차이는 새로운 혁명시대에 잉여물을 독점하는 권력과 능력이다.

AI는 질문의 때깔을 판단한다. 때깔이 깔끔하고 풍부한 질문은 답변도 아름답다. 회계사의 질문과 일반인의 질문을 생각해보라! 재무제표에 대해 ChatGPT는 어느 쪽에 더 정확하고, 가치 있는 답변을 제공할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질문을 위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같은 땅이 주어질 때, 누군가는 금맥을 찾아내어 부를 쌓고, 누군가는 표면의 흙만 긁어내며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도구는 모두에게 주어졌다. 땅도 모두에게 열려 있다. 자신이 가진 도구가 무엇인지, 어떤 땅을 파고 있는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라!


“AI세상에서 능력치는 질문하는 만큼 정직하다.”


프롬프트 세상에는 사회적 계층도, 가진 재산도 무관한 경험의 세상이며, 자기주도적 호기심과 필요만큼 성장하는 노력의 세상이다. 몇 명의 천재를 제외하고 AI 세상에 아직 기득권의 깃발이 꽂히지 않았다. 경쟁은 시작되었지만, 경쟁 대상이 다르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남들이 아직 차이를 만들지 못한 열린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은 깊이가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AI를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다 포기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질문을 연습하며 자신의 능력치를 쌓아간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묻는 사람’의 세상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길은 닫힌다. 스스로 묻고 답을 찾는 사람에게만 길이 열리고, 그 길이 나의 영토이다.


“질문하세요! 답은 공짜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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