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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letterpot Oct 26. 2021

아름답지 않을 권리

Listen to your body


샤워를 하고 나와 거울을 보는데 문득 내 얼굴이, 내 몸이 참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내가 마음에 들었을까.


팔뚝살이 빠지면 딱 좋을 것 같다거나 눈이 조금만 더 컸다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나는 패배가 분명한 나와의 전쟁을 끝낼 수가 없었다.


전쟁이 원래 그렇듯, 나는 계속 상처 입고 황폐해져 갔다.


더 큰 문제는 전쟁에 익숙해져 그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이 점점 잊혔다는 점이었다.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다니고 어디를 밟으면 지뢰가 터질지 몰라 아슬아슬한 상황이 나에겐 일상이었다. 나는 매일 나를 향해 총을 쏘고, 스스로를 망가트리고 싶어 지뢰를 숨겼다.



작년 여름, 외삼촌 장례식장에서 어릴 때 제일 좋아하고 따르던 사촌 언니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이런 일이 있어야 만나게 된다며 서로 머쓱하게 웃다가 또 울다가 언니가 문득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옛날에 외할머니가 너 살찔까 봐 그렇게 밥도 더 못 먹게 했는데, 이렇게나 말라서 어떡해."


맞다. 언니의 그 말에 잊고 있던 서러운 날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김치를 너무 맛있게 잘 담그셨다. 어린 나는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할머니의 김치와 갈비찜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고슬고슬 갓 지은 하얀 밥에 간이 딱 맞는 김치와 고기라니. 하지만 기다렸던 식사 시간은 언제나 아쉽고 처량했다. 할머니는 오빠들에겐 밥 더 먹을래, 고기 더 줄까 물어보시면서 언제나 나에게는 밥을 조금만 먹어라 말씀하셨다. 밥을 더 먹으면 살찐다고. 여자는 뚱뚱하면 안 된다고.


당시 나는 날씬하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보통 체격의 여자 아이였지만 늘 스스로가 약간은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미치도록 살을 빼서 할머니의 걱정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 나와 함께 점점 더 자랐다. 나는 밥을 좀 더 먹으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일 년에 겨우 한 두 번 있었던 식사 자리가 평생 치러낼 나와의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너무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그 옛날 프랑스 루이 7세는 수염과 구레나룻을 너무 말끔히(?) 깎았다는 이유로 영국의 엘레나 공주에게 이혼과 지참금으로 들고 온 토지의 반환을 요구당했고, 그 일은 무려 301년 동안 이어진 프랑스와 영국 전쟁의 시작이 되었다(믿거나 말거나).


 



사실 외할머니가 아니고서라도 사회 전반의 시선이 그랬다. 나는 어렸고, 주변의 말을 무시하거나 흘려들을 만큼 내 안의 힘은 강하지 못했기에 그 시선들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그리고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자는 뚱뚱하면 안 되고, 어떤 가치든 예쁜 몸 안에 담겨 있어야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 억울해도 반발할 수는 없었다. 매분 매초 스스로를 평가하고 타인을 판단했다. 일은 조금 못해도 예쁘고 날씬한 사람이 더 부러웠다.


외모가 나의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포기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살 빼면 제대로 해야지 하고 미루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나는 어느덧 "집에 어른 안 계신데요."라고 말할 수 없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사회에서 어른은 일 인분의 몫을 다 하는 사람을 말한다. 살이 찔까 일 인분의 밥을 다 먹지 못하는 나는 당연히 일 인분의 몫도 하지 못했다. 한심한 스스로의 쓸모에 골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집착하는 나의 쓸모가 날씬함이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쓸모 없어졌다는 것을.


더 이상 남의 시선을 빌려 살아가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나에게서 빼앗았던 권리를 돌려주기로 했다.



아름답지 않을 권리를.


누군가의 걱정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작은 마음이 바람을 가득 채운 풍선만큼 부풀었다가 구멍이 뽁 뚫린 채 프스스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슬플 만큼 허무했다.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그럴 거라 생각했었지만 바람이 빠진 모양을 보니 정말 더 그랬다. 눈을 뜬 심봉사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바친 공양미 삼백석은 내 인생이었다.


매 순간 날씬한 사람으로 살 필요가 없음을, 다른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인정받을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 뒤 전쟁은 자연스레 끝났다.


그저 몰랐을 뿐,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나는 폐허가 된 황무지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물론 때로는 노력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살이 찐다는 불안함을 달래고, 그래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다시 씨앗을 뿌리기 위해 나는 밥을 든든히 먹고 힘을 내야 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과의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위험 속에 몰아넣고 있다. '마른 몸'에 집착하는 한, 당신은 계속해서 쓸모 없어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시선이, 자라나는 어린아이가 가질 눈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아이는 그 눈으로 자신을 보고, 세상을 볼 것이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아름답지 않을 권리를 누리고, 나눌 책임이. 나와의 전쟁을 끝내고, 막막한 땅을 가꾸어 갈 책임이. 나는 이제 누군가의 더 먹으라는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밥을 먹는다. 일 인분의 몫을 해내기 위해서는 일 인분의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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