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owletterpot Oct 27. 2021

당신의 몸은 문제가 없습니다.

Listen to your body


요가 강사, 그리고 여러 곳의 다이어트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몸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목이 어떻고, 허리가 어떻고, 종아리가 어떻고.. 세세하게, 때로는 막연하게 나의 몸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일했던 곳에서는 상담 신청한 사람들의 사진을 미리 받아서 체형 분석을 해주었는데 나는 그 일이 굉장히 싫었다. 그때 대표가 내게 요구했던 사항은 이러했다.


"작은 문제는 심각하게, 심각한 문제는 곧 죽을 것처럼."



내가 보기엔 별 문제없어 보이는 몸들이었다. 하지만 상담을 받는 그들은 부풀리고 쥐어짜 낸 문제들을 "맞아요, 제가 원래 그래요"하며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책했다. '정상 정렬'이라 부르는 선이 이리저리 자신의 몸을 가로지르며 당신은 정상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반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간혹 남성 분들도 있긴 했지만, 회원들은 주로 여성이었다. 직장을 다니든 육아를 하든 공부를 하든 나이와 위치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문제 앞에서 만났다.

성장기에 대부분의 여성은 가슴과 엉덩이가 발달하며 몸에 굴곡이 생긴다. 이때 밋밋한 또래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싫어 어깨를 웅크려 가슴을 숨기게 된다. 그렇게 다니는 것이 편해지고, 말린 어깨는 굽은 등과 거북목을 만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슴이 큰 편이었다. 작은 키에 큰 가슴이라는 언밸런스한 조화를 가진 내 몸이 너무 싫었다. 무거운 가슴을 달고 있으니 어깨가 자주 아팠고, 계주로도 곧잘 나가던 달리기와도 점점 멀어졌다. 가슴을 가리는 펑퍼짐한 옷만 입었고, 교복 대신 후드티를 입을 수 있는 겨울이 반가웠다. 졸업사진을 찍는 날, 교복 단추를 잠그기 위해 나는 가슴에 압박붕대를 둘러야 했다. 내 가슴은 짐이었고, 내 몸은 문제덩어리였다.



일을 하며 다양한 체형, 다양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한편으로 위안을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우리는 평생 문제덩어리인 우리의 몸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왔다.

잊고 사는 순간도 있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나 바로잡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살을 빼고, 시술을 하고,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실제가 어떻든 내 몸은 문제라고 느껴지고, 문제는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지긋지긋한 숙제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한 가지다.


문제 만들기를 그만두는 것.



문제는 없다.
내 몸도 문제가 없고, 당신의 몸도 문제가 없다.


문제를 없애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구구절절 스스로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지금부터 내 몸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마음 어딘가에서 "그렇지만..." 하고 반발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그럴 땐 그냥 무시하기 바란다. 우리의 뇌는 원시시대부터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선택하도록 진화해왔다. 그러니 새로운 생각이 나에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상관없이 그저 익숙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다. 아주 필사적으로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라고 규정짓는 한 우리는 몸을 해결하려 들거나, 포기해버리는 길 밖에 없는 끔찍한 미로를 계속 헤매야만 한다.


살이 조금 빠지거나, 운동을 매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끔은 문제를 해결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명명백백한 제자리걸음이다. 늘 다시 여기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나는 작은 문제를 심각하게, 심각한 문제는 곧 죽을 것처럼 말하게 하던 그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했다. 내가 내 몸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으며 겨우 풀려난 족쇄를 다른 사람에게 채울 수는 없었다.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을 찾고,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찾는 그들의 절실함을 알기에 더더욱 모른 척하며 썩은 동아줄을 내밀고 싶지 않았다.


문제 만들기를 그만두라는 말이 자신의 몸을 방치하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몸을 잘 알고 돌보아야 한다. 어떤 전문가도 나보다 더 내 몸을 잘 알지는 못 한다.

그러니 자신을 믿으라. 당신 스스로를 믿고 당신의 몸을 믿어 보라. 몸은 언제나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제와 해결에 몰두하기를 그만둔다면, 당신도 이제 들릴 것이다.


이전 01화 아름답지 않을 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