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틈 레터: 인요가의 시간
컵을 좋아합니다.
일관되지 않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 뒤죽박죽 색깔의 컵 중에 그날그날 손이 닿는 곳의 컵을 꺼내 물을 마시곤 해요. 나름의 이유로.. 어떤 것은 손잡이가 뭉툭하고, 어떤 것은 속이 투명하게 비치게 만들어져있나 봅니다.
저희 집의 컵은 어떤 것도 두 개 있지 않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두 개가 똑같은 모양의 컵은 왜인지 과하게 느껴져요. 같은 모양의 컵은 언제나 하나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노트북의 즐겨찾기 목록은 대부분 편집숍이지만, 컵만큼은 오프라인에서만 사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 마시는 기분을 좋아해요.
수업을 하고 돌아온 어느 날, 손에 잡힌 것은 낮은 높이에 투박하고 짙은 녹색의 스타벅스 컵이었어요. 그것보다 더 작고 한 번에 마시기 딱 좋은 양의 물이 담기는 컵이 씻기기 위해 싱크대에 놓여있었고, 저는 그 두 개의 컵을 무심히 번갈아 보았습니다.
그날 수업에서 저는 사람들에게 인요가의 한 자세인 shoelace를 하게 한 후 마주 보는 사람의 모양을, 옆사람의 모양을, 그리고 자신의 모양을 보게 했더랬지요.
“어때요? 우리가 하고 있는 모양이 참 다르죠. 저는 똑같은 모양을 말했는데 우리는 왜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저랑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잘하는 거고, 무릎이 가까이 모이지 않은 사람은 못하는 걸까요?”
눈이 마주친 누군가가 다정한 눈으로 ‘아니요’하고 대답해주었어요.
“맞아요, 당연히 아니에요.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얼굴이 이렇게 다른 것처럼 우리 몸 안의 뼈의 모양이나 굵기나 위치도 실제로 조금씩 다 달라요. 어떤 것을 먹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는 우리가 어떻게 똑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을까요?
같은 모양 안에 몸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그 모양이 되지 않는다고 내 몸을 미워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버니 클락 선생님의 책 <유어 바디 유어 요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실상 모든 인간은 어떤 면에선 일탈자이다.” 정상도 없고 비정상도 없다.
당신이 가진 모든 고유성은 오직 당신만이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 고유성이 모든 생명체 중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올바르게 해야만 하는 것을 결정할 것이다.
모두가 정상이고, 모두가 비정상인 우리가 더 나아 ‘보이기’ 위해 애쓰는 것은 누구를 위한 걸까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고유성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원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당신을 당신답게(당신이라고 칭하는 것이 불쾌하지 않았으면 해요) 하는 것은 언제나 ‘이것만 아니었으면-’하는 당신(이렇게 많이 불러야 하니까요)의 아쉬움들이거든요.
작은(혹은 큰) 키일 수도 있고, 성급한(혹은 소심한) 성격일 수도 있고, 엄마를(혹은 아빠를) 닮은 눈의 모양일지도 모르겠네요.
요가를 해 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는 모른 체 했던 저의 아쉬움들을 마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같이 시작한 도반들에 비해 어딘가 엉성한 모양을 하는 아사나들 때문이었지요. 그저 수련이 부족한 탓이었는데, 왠지 억울했고 그때마다 쉬운 이유를 찾아냈어요.
‘키가 3cm만 더 컸어도!’
‘저 사람은 다리가 길어서 잘 되는 거야’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때로는 소리 내어 말하며 타고난 몸의 모양을 시샘하고 좌절했어요.
그렇게 한동안 요가가 재미없었더랬죠.
인요가를 만난 것은 그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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