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고개를 들자 창밖으로 학교의 붉은 외벽이 가까워졌다. 두 팔을 벌린 넓이보다 좁은 폭의 창문이었다. 천장 가까운 곳에 작게 나 있어 언뜻 보면 환풍구 같았고 실제로 한쪽 창문엔 푸른색 날개가 달달 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창밖은 경사진 도로로, 바깥의 풍경은 조금 기울어져 보였는데 그래서 이곳이 반지하에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계절마다 봄에는 꽃가루가, 가을에는 낙엽이 번갈아 가며 창문 안쪽으로 들어왔다. 반쯤 뜯어진 방충망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였고, 순전히 호기심이라는 것을 이유로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허락도 없이 내부를 들여다보고 가곤 했다. 그런 짓거리를 할 만한 건 오직 인간뿐이었다. 마네키라면 명령이 아니고서야 이곳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이곳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인공사과를 만드는 일을 했다.
우리는 주로 사과를 하지.
사장이 첫날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니까 인공사과는 먹을 수 있거나 어디에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사람들에겐 기념이 되는 것으로서, 직접 구매하긴 아쉽지만 한 번 손에 들어온 이상 버리기도 아까운 장식품 같은 역할을 했다. 마네키들과 나는 그런 일을 했다. 업체에서 받아온 플라스틱 포대를 작업장까지 실어 나르는 일, 작업장 한쪽에 쌓아둔 포대를 열어 재료들을 바닥에 늘어놓는 일. 그중에 재활용이 불가능한 재료를 골라내는 일. 컨베이어 벨트 위로 살아남은 재료 중에 또 버려야 하거나 망가진 것들을 골라내는 일. 마네키는 주로 힘을 쓰거나 명령에 맞게 단순한 작업을 했고, 나는 그들이 제대로 된 동선에서 엉키지 않게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이런 곳에도 인간은 필요했다.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심심할 때마다 마네키에게 오늘 먹을 점심 메뉴라던가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보았던 비둘기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에는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마네키는 내가 어떤 질문을 할 때마다 가끔 재치 있는 답을 돌려주곤 했는데 그것은 마네키의 생각은 아니었고, 마네키와 기억을 공유하는 인간이 입력해 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나는 마네키가 된 준우를 바라보았다. 준우는 내가 저를 보든지 말든지 바닥에 콜라가 조금 남아 있는 페트병의 병뚜껑과 몸체를 분리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대답이 없는 준우에게 코를 푼 휴지 같은 걸 내밀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준우는 그런 마음엔 관심도 없으면서 내 쪽으로 투박한 손을 또 뻗었다.
학교는 45분 주기로 한 번, 그리고 15분 주기로 한 번씩 종이 울렸다. 쉬는 시간이 되면 조용했던 학교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나보다 몇 뼘이나 키가 작은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거나 실없는 주제로 떠드는 소리였다. 우리는 4시간에 한 번씩 쉬었다. 점심을 먹을 때 한 번, 그리고 저녁을 먹을 때 한 번이었는데 자유롭게 쉴 수 있다는 작업장의 방침과 다르게 물리적으로 쉴 수 있는 틈이 없었으므로 학교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려댈 때마다 나는 습관적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경사로에 높이 솟은 학교 건물 중 일부가 보였다. 나는 종종 나를 대신해 학교에 가 있을, 비닐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나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마네키’로, 내가 태어나던 해에 정부에서 시험적으로 먼저 지급해 온 것이었다. 원래 용도대로라면 내가 아닌 그것이 작업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맞았다. 그것이 나를 대신해 돈을 벌고 기술을 익히는 동안 나는 학교에서 수업일수를 채우면 되었다. 그것이 배워 온 기술은 메모리를 통해 또다시 나에게 입력될 것이므로. 그러니까 나는 기술도 배울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십 대 시절에 그것과 나의 삶을 바꾸었다. 그것을 학교에 보냈고 내가 작업장에 출근했다. 마네키가 벌어온 돈으로는 당시 생존해 있던 보호자와 단둘이 살고 있었던 집의 생활비가 되지 못했다. 정부에서는 지원금 대신 마네키를 통해 고용주와 고용인, 그리고 지원이 필요한 이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네키는 몸에 금방 상처가 났고, 인간은 상처가 나더라도 스스로 회복해야 했으므로 월급을 주는 대부분의 사장들은 제 자본을 들여 손상된 마네키를 수리하는 것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인간을 고용해 더 높은 보수를 주었고, 인간을 선호했다. 실제로 마네키가 돈을 벌어오는 것보다 내가 직접 돈을 버는 것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므로 나는 일찍이 공부를 하는 쪽보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쪽을 택했다.
마네키의 꽁무니에는 주먹만 한 리더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리더기는 일정한 주기로 새 메모리로 교체해야 했는데, 그것은 사람으로 치면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리더기는 내 왼쪽 사타구니에도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굳이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마네키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메모리에 저장해 오면 일을 마치고 온 내가 그것을 내 몸에 입력하면 되는 것이었다. 마네키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어떤 것은 가로 폭이 두툼한 것이 바람 빠진 풍선 같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납작해서 만들다 만 의자 같기도 했으며, 돈을 좀 들인 것은 그럴듯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외모가 어찌 됐든 나를 대신해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였다. 마네키는 나에게 모든 것을 빠짐없이 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네키와 내 기억을 결코 나누지 않았다.
나는 학교를 두 번째 다니고 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나 대신 마네키를 보냈다. 첫 번째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1년이 조금 되지 않았을 무렵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마네키가 근처에 있던 괴한인지 까불이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대단한 행사가 있는 날도 아니었고, 주번도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마네키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나는 마네키가 늦게라도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몸을 쓰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한밤중에 마네키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다음 날 마네키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늦잠을 자 허겁지겁 작업장으로 달려가던 나는 집 앞 하천에서 바람이 빠진 채 흐느적거리며 쓰러져 있는 마네키를 발견했다. 정확히 목덜미에 한 번, 가슴에 한 번, 그리고 사타구니 부근에 다섯 번 정도, 흉기에 휘둘린 흔적이 있었다. 리더기를 살펴보자 마네키의 기억을 담은 메모리가 유실되어 있었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마네키는 아무런 말도, 생각도 하지 않으며 하천 위로 난 작은 다리 위에 엎어져 있었다. 만약, 마네키를 습격한 것이 진짜 괴한이었다면, 그리고 마네키 대신 내가 학교에 갔더라면, 당시 노인이었던 보호자보다 먼저 죽었을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마네키를 둘둘 말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오래도록 그것을 꺼내 보지 않았다.
이제 마네키는 상용화가 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제 이익을 위해 여러 개의 마네키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제 자식의 교육을 목적으로 보호자가 장만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것을 다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새로 장만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전에 지급받은 것보다 더 허접했다.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 얇은 비닐이었지만 특수소재로 공업용 화학 약품에도 상처가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작은 흠집이 나더라도 제 몸을 늘여 상처를 메꿨기 때문에 쉽게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 마네키가 될 그것과 어깨동무를 한 채 씨익 웃어 보이던 가게의 주인이 말했다. 그는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소중한 무엇이라도 되듯 내 앞에서 거드름을 피워댔지만 내가 그에게 마네키의 값을 치르자마자 언제 봤냐는 듯 등을 돌렸다.
*
이따금 나는 준우를 주눅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실수였다. 점심을 같이 먹지 않겠냐며 제 소개를 해오는 준우가 나는 정말로 자신을 주눅이라고 소개하는 줄 알았다. 준우는 끝까지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며 그때만 생각하면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그날 준우는 자신을 나에게 주눅입니다, 라고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주눅입니다.
준우는 십 대 시절을 보호자 없이 보냈으며, 그 이후에는 월셋집을 얻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처음 준우의 집에 갔을 때, 나는 한 사람이 웅크려 자기 좋을 만큼의 공간을 집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놀랐다. 준우의 집엔 부엌도, 화장실도 없이 그저 방 한 칸이 전부였다. 부엌과 화장실은 공용이었는데, 그마저도 40가구 중에 겨우 두 개 있는 데다가 수압은 약하고 변기는 퍽 하면 막혔다.
준우의 몸에는 태어날 때부터 리더기가 없었다. 나는 리더기가 몸에 있는 것조차 선택받은 것이라는 것을 준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준우와 섹스를 할 때면 준우는 자꾸만 나의 왼쪽 사타구니에 부착되어 있는 리더기를 만지작거렸다. 준우는 리더기에 심어져 있는 메모리를 빼내어 보고 싶어 했다. 메모리가 없어도 나는 준우를 기억할 텐데 준우는 마치 내가 자기에 대한 기억을 메모리에 저장해 놓고는 그게 없으면 자신을 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건 마네키 같은 것만 해당되는 거야. 나는 마네키와 달라.
땀에 절은 이불 위에 누운 채로 나는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것을 가리켰다. 마네키는 투명한 비닐로 만들어진 사람의 형태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네키의 속을 부풀리는 공기는 오래전에 죽어 버린 마네키의 모터를 그대로 달아놓은 것이었다. 푸쉬식- 준우는 나와 나란히 누워 잘 때면 입으로 그 모터 소리를 따라 하곤 했다.
준우도 나처럼 사과를 만드는 일을 했다. 전에는 버려진 현수막이나 고철로, 비둘기나 올리브나무 같은 것들을 만드는 일을 했었다고 했다. 준우와 나는 대각선 방향으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 우리가 일하는 곳에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준우의 방향에서 창문이랄 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계라거나 달력 같은 것도 없었다. 그곳엔 준우와 나 외에도 최소한의 돈을 마련하기 위한 아이들이 마네키를 대신 보내었고, 작업장에서 준우와 나만이 유일한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까.
그것을 알고도 내 마네키를 그렇게 끔찍하게 찢어 놓았을까.
준우는 살던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아예 짐을 챙겨 우리 집에 들어왔다. 준우는 내 집을 자꾸만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야, 여긴 우리 집이야. 준우에게 단호하게 이곳은 엄연히 내 것임을 밝히려는 데 나도 모르게 나온 ‘우리 집’이라는 말에 웃음이 터져 바보처럼 웃고 말았다. 준우는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준우의 짐은 고작 배낭 하나였고, 준우가 우리 집에 왔다고 해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준우는 단지 속옷과 양말, 그리고 옷가지 몇 개와 씨앗 한 줌을 챙겨 왔다. 이름도 없이 약봉지 같은 봉투 안에 담겨 있던 것이었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씨앗, 이라고 준우는 말했다. 한 달 전에 길에서 어떤 판촉물과 함께 받았다고,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는데 챙기고 보니 있더라고 준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 보였다.
이 집엔 흙이 없는데.
내가 내일 밖에서 가져올게. 이 동네 널린 게 흙이다.
화분도 없어. 식물은 햇빛도 필요하고.
좋은 생각이 있어.
다음 날 준우는 아침 일찍부터 흙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창틀에 꾹꾹 흙을 눌러 담았다. 창문을 닫을 수 없다고 불평하는 나에게 준우는 꽃을 보여주겠노라고 말했다. 너, 학교에서 공부한 거 맞아? 이미 내 머릿속엔 창틀 청소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물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흙도 씨앗도 썩어버릴 것이다. 준우는 두고 보라며 3일에 한 번씩 창틀에 물을 주었다.
햇빛도, 바람도, 물도 모두 주었는데 씨앗은 좀처럼 싹이 나지 않았다. 나는 준우보다 더 자주 창틀을 들여다보았다. 매일 창문을 열고 있으니 그 틈으로 거미가 들어와 한쪽에 거미줄을 쳤고 흙은 축축한 채로 악취를 풍겼다. 젖은 흙이 풍기는 냄새는 마치 며칠 동안 머리를 감지 않은 준우의 정수리에서 나는 냄새 같았다. 맡을 때마다 눈을 찡그리게 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킁킁거리게 되는 이상한 냄새.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누구도 창틀에 씨앗을 심은 적이 없었다. 준우는 이미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린 지 오래였다.
준우는 씨앗 대신 마네키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일을 마치고 올 무렵이면 마네키는 이미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준우는 마네키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준우는 이렇게 똑똑한 마네키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마네키는 내가 과거에 등록했거나 학교에서 저장한 것들을 토대로 대답을 했으므로, 두 사람의 대화 중 내가 모르는 것은 없을 것이었다. 어느 날엔 화장실에서 발을 닦고 나오는데 준우와 마네키가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준우에게 마네키를 충전 중이니 떨어지라고 말하며 신경질을 냈다. 준우와 수다 따위나 떨고 있으라고 달아놓은 스피커가 아니었다. 오래 전의 그날처럼, 습격을 당할 때 제 몸을 지키라고, 누군가가 너를 망가뜨리려 할 때 살려달라고 소리라도 질러 버리라고 일주일 치 점심값을 아껴 달아 둔 것이었다. 나는 수건으로 발가락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닦으며 그것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마네키는 준우에게 융통성도 없이 정답만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느 날의 준우는 나보다 마네키를 더 우러러보는 것 같았다.
내 몸에도 리더기를 달 거다. 모아둔 월세로 다음 주에 수술을 받기로 했어. 나도 마네키를 살 거야. 네 것보다 더 튼튼하고 좋은 걸로.
그날도 준우는 내 리더기를 만지작거리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준우도 마네키가 생기는구나,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준우는 무의미한 것들을 마네키에게 다 맡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무의미한 것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창틀에서 썩어가는 씨앗을 떠올렸다.
그날 이후 준우는 나를 떠났다. 준우의 짐 역시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 어디에도 준우의 흔적이 없었던 것처럼, 준우는 그렇게 사라졌다. 준우와 나는 헤어지지도 않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시 준우를 만나게 된 것은 한 달쯤 지난 뒤였다. 한 해가 막 바뀌는 시점이었고, 준우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내 앞에 나타났다. 정확히는 삐걱거리며 작업장에 걸어왔다.
사장은 그것이 준우라고 말했다. 길고 얇은 것과 굵고 짧은 것이 절묘하게 사람의 형태를 한 나무로 만든 마네키였다. 준우의 마네키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자세히 보니 내 것과 다르게 머리에 작은 화면이 달려 있었다. 준우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내가 보는 것은 준우가 아니었다. 아니, 준우와 나는 마주 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나 혼자 준우를 보고 있었다. 준우가 하는 일은 생각도, 판단도 필요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나는 더 단순해진 준우를 볼 때마다 묘하게 심통이 났다. 준우에게 무의미한 일들이란, 어쩌면 나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에서 내내 준우를 기다렸지만, 준우는 이제 집에 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집에 돌아오는 것은 내 마네키 뿐이었다. 나는 신발장 앞에 앉아 있는 마네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느 날엔 창틀에 담겨 있던 흙을 모두 퍼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준우는 어디에 있을까, 이따금 준우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했으나 나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루는 일이 끝나고 준우의 마네키를 따라가 볼까 싶어 기다렸지만 마네키는 일이 끝나자마자 작업장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심통이 나 다리를 발로 차버렸다.
나쁜 자식.
나는 그것을 준우 대신 주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작업장엔 새로운 사람이 왔다. 사장은 인력 보충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쨌든 마네키가 허튼짓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니까. 사장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떠난 건 준우 한 사람인데 보충된 인력은 두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둘 다 십 대였고 이름은 해주와 수빈이었다. 한 명은 남자였고, 한 명은 여자였는데 둘 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내가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자 다시 말이 바뀌어 돈을 벌어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정정했다. 사장이 두 사람의 등을 나에게 떠밀며 말했다.
너도 언제까지 마네키들과 함께 있을 순 없으니까.
나는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계속해서 이곳에서 일을 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적이 없었으니까. 스스로 현재의 상태에 대해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이후로도 사장은 가끔 메모리를 교체하기 위해 작업장으로 찾아오는 나의 마네키를 이야기하며 어딘지 불쾌한 내색을 비추곤 했다. 그리고는 마네키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어릴 적 어른들이 꾸역꾸역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재촉하던 것처럼 물어왔다. 그때마다 나는 아무것도요, 하며 그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는데 사장은 그것이 내가 그에게 내 계획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 나름대로 단정 지어 버리곤 했다. 나는 어쩌면 나보다 마네키가 더 꿈이 있는 존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마네키가 나보다 더 배운 것이 많으니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는 나보다, 매일같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마네키가 더 세상에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정말 그렇다면 사장은 내가 아닌 마네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준우가 나무가 된 뒤로 좋은 점은 담배를 피우러 같이 갈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의 준우였다면 나 혼자 나갔다 오라고 했을 텐데, 새로운 준우, 그러니까 주눅은 군말 없이 나를 따라나섰다. 주눅은 비록 담배 연기를 맡을 수도, 피울 수도 없었지만 가만히 내 옆에 서서 떨어지는 빗물이나 주변을 맴도는 날벌레 따위의 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나는 이전에는 준우에게 하지 않았던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이를테면 요즘은 사는 게 너무 지겹다거나, 가끔 일을 하다 창밖의 학교를 가만히 바라보곤 한다는 그런 것들. 그때마다 주눅은 아무 말없이 내 옆에 서서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정말 기다리기만 했다.
해주는 재활용이 가능한 것들과 불가능한 것들, 더 이상 쓸모없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에 금방 적응했다. 반면 수빈은 일을 할 때마다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우리는 왜 하필 버려진 쓰레기로 사과를 만들어야만 하는지 같은, 쓸모없는 질문을 해오곤 했다. 처음 몇 번은 대답을 해주었으나 그중에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은 아마도 마네키가 보고 들은 것뿐일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것을 궁금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수빈은 그때마다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지 못했는지 답답한 얼굴로 일을 하다 말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허비했고, 해주는 다른 의미로 답답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는 수빈 몫의 일까지 꾸준하게 해내었다. 나는 가끔 주눅에게 수빈이 물었던 것들을 똑같이 질문하곤 했다. 주눅은 제 얼굴에 로딩 중이라는 창을 띄우더니 나에게 높낮이가 없는 기계음으로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이런 건 이런 거고, 저런 건 저런 거다. 그리고는 어느 날엔 내가 묻기도 전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해주라는 애 말이야, 너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주눅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듯 삐걱거리며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말없이 물건을 옮겼다. 나는 주눅의 말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어 멍한 표정으로 주눅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무엇을 단단히 잘못 먹었다고 생각했다.
밤 동안 속이 아프고 울렁거리더니 아침에는 적셔둔 물수건이 미지근해질 정도로 열이 끓었다. 나는 부엌까지 기어가다시피 몸을 끌며 겨우 물 한 잔을 마셨다. 물은 평소와 다르게 달고 끝 맛이 떫었다. 작업장에 나가기엔 몸 상태가 최악이었기에 나는 해주에게 연락을 해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으니 하루만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주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알겠다고 답을 했다. 사장한테는 말 안 할게요. 걱정 말고 푹 쉬세요. 해주의 말에 나는 대답 대신 통화를 종료했다. 평일 낮에 집에 있어 본 적은 오랜만이었다. 창밖으로 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왔고, 부엌으로 내리쬐는 햇볕 또한 가볍고 청량했다. 몸속에 오래된 기름이 낀 것 같은 주말의 휴일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네키는 학교에 갈 시간이 되자 현관문을 열고 나갔으나 그도 내가 집에 있음을 인식한 것인지 내가 누워 있는 방문을 평소와 다르게 완전히 닫아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있다 말고 문이 드르륵 닫히는 소리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 마네키는 이미 집을 나간 뒤였다. 반투명한 유리 밖으로는 아무렇게나 놓인 신발들과 부엌에 있는 배선들이 어지럽게 꼬여 있었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 동안 잠을 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깨어보니 머리맡에 약봉지가 놓여 있었다. 혹시 준우가 소식을 듣고 왔나 싶어 몸을 일으켜 집안 곳곳을 살펴보았으나 준우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문 앞에 앉아 있는 마네키가 얼굴도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엔 평소보다 더 일찍 작업장에 가기 위에 부지런히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었다. 꽃봉오리가 톡 터지기 시작하는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른 아침엔 해가 다 뜨지 못해 어둑했다. 현관문을 나서며 나는 마네키를 흘깃 바라보았다. 마네키는 푸쉬식- 소리를 내며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곧 종아리에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뒤를 돌아보니 마네키가 제 손으로 내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아직 몸이 아픈데.
마네키의 말에 나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그 바람에 실수로 마네키의 팔을 밟았다. 마네키의 팔은 내가 밟은 그대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줄어들었지만 곧 모터에 의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마네키에게 ‘미안’이라고 했다가 얼굴도, 표정도 없는 마네키를 보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마네키는 나에게 자기가 대신 작업장에 가겠노라고 말했다. 약 먹고 하루만 더 쉬는 게 좋겠다는 양호실 선생님의 의견도 덧붙였다. 나는 마네키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 처음이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평소 준우의 마네키와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는 편이었으므로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나의 일부가 나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조금 기묘하고 낯선 것뿐이었다.
그날은 마네키가 작업장에, 나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나는 내내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 스크린 앞에 서서 혼자 떠들어대는 선생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자니 좀이 쑤셨다. 점심시간엔 양호실에 누워 있었고, 그 시간 외에는 턱에 팔을 괴고 앉아 책상 위에 손톱으로 낙서를 해대었다. 아는 친구도 없었고, 아이들은 나를 낯설게 대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마네키의 주인이 제 또래의 아이인 줄로만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날 마네키는 나보다 더 늦게 집에 돌아왔고, 구부정한 자세로 터벅터벅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하루종일 제 몸에 붙어 있던 먼지들을 씻어 내었다. 그리고는 창가에서 제 몸을 말리며 말했다. 오늘 배운 것들을 좀 알려줄래. 무슨 말이냐는 내 물음에 오늘 배운 것을 기억해야 내일 학교를 갔을 때 써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마네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들려줄 말이 없다고 했다. 말 그대로였다. 나는 오늘 선생의 말을 귀담아들은 것이 없었고, 온종일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마네키는 더 이상 대꾸가 없었으나 나는 마네키에게 한 마디 말을 더 해주고 싶었다.
넌 기억해야 하는 게 아니야, 저장해야 하는 거지.
*
주눅의 포지션이 바뀌었다.
주눅의 역할은 내내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것에 있었으므로 나는 주눅이 어째서 작업대에 앉아 불량품을 골라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틀을 쉬고 돌아가 보니 주눅은 내 맞은편에 앉아 말없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해주와 수빈을 번갈아 보았다. 해주는 귀찮은 표정으로 빠르게 포대에 있던 쓰레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수빈은 퉁퉁 부은 눈으로 해주의 옆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주눅아, 담배.
내 말에 해주는 하던 일을 멈추고는 주눅을 보았고, 수빈은 고개를 더 푹 숙였다. 주눅은 습관처럼 나를 따라나서기 위해 몸을 일으켰으나 아무리 작업대에 팔을 잡고 일어나도 다리는 꿈쩍을 하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다 말고 주눅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눅은 결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저벅저벅 주눅에게 다가가 다리를 살펴보았다. 주눅의 다리엔 깊은 금이 가 있었다. 나는 입술을 꽉 문 채 해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해주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고, 수빈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내가 없던 사이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사장은 그것을 ‘작은 사고’라고 말했다. 거래처에서 사과 표면에 칠해진 붉은 염료가 손에 묻어나는 것 같다는 것을 이유로 무작정 발주 취소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납품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했던 것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염료 위에 코팅을 두 번 입힐 경우 거래처가 제시한 단가에 마진이 남지 않기 때문에 한 번만 한 것이 원인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됐건 납품이 되지 않은 인공사과가 든 상자를 재료 포대와 한데 아무렇게나 쌓아둔 것은 사장이 그것을 위해 별도의 창고를 마련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천장 높이로 쌓여 있던 상자가 아이들을 덮친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빈은 무너진 상자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수빈은 눈을 질끈 감았지만 수빈을 덮친 것은 쌓여 있는 상자들도, 그 상자를 채우고 있던 사과도 아니었다. 해주의 옆에 있던 주눅이 수빈을 꼭 감싸 안 듯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눅 한 사람이 하중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수빈이 주눅의 품에서 안전하게 작업대를 벗어난 사이 수 천 개의 사과가 든 상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주눅은 곧 쓰러졌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마네키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전날 마네키가 평소와 다르게 그렇게 먼지를 많이 묻히고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네키는 그날 흩어진 사과들을 쓸어 담고 정리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마네키는 집에 돌아와서도 나에게 준우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네키는 준우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눅과 내 마네키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그저 스치듯 지나갔을 것이다. 몸이 부서진 건 주눅인데 수빈은 나에게 미안한 얼굴을 했다. 나는 수빈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해주는 수빈이 울음을 보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했다. 나는 그런 해주가 조금 얄밉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준우는 나에게 더 이상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준우는 더 이상 나를 지켜보지 않는 것 같았다.
준우야, 너는 언제 다시 돌아올 거니.
잎사귀 모형이 비틀어진 불량품을 주눅에게 건네며 나는 물었다. 준우는 내 물음에 한동안 답이 없었다. 나의 물음은 해주도, 수빈도 들었고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준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눅은 한참을 대답 없이 플라스틱을 쓸어 담았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나는 준우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나는 준우에게 언제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다. 언제 와. 너는 언제 오니. 영영 안 올 거니. 왜 이곳을 떠났니, 같은 질문들. 준우는 그때마다 답이 없었고, 어느 날엔 더 이상 준우는 나 같은 것 하고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누나, 그만해요. 어쩌면 형이 여기 안 돌아오는 건 다행인 건지도 몰라요.
해주가 말했고, 그 무렵 수빈은 작업장을 떠났다. 수빈은 떠나면서 주눅의 수리비를 나에게 주었다. 사장은 나에게 주눅의 상태를 물었다. 쓸 수 있냐는 것과 계속 써도 되겠냐는 것. 괜찮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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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는 절대로 안 돌아갈 거야.
조금 일찍 점심을 먹고 작업장 밖 한 구석에 버려져 있는 소파에 앉아 깜빡 졸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에 털썩 앉는 느낌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체리색 가죽 소파는 유독 왼쪽 부분이 때가 타고 헤져 있어 이 동네를 지나는 사람들 중 아무도 앉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였으나 나만이 가끔 소파에 앉아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랬기에 그건 해주도, 수빈도 알지 못하는 오롯한 나와 준우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에는 콘크리트로 세운 높은 벽이 있었는데, 그 벽 위로 경사진 곳에 학교의 뒤편이 보였다. 학교 건물 때문에 그림자가 져 한낮에 달콤한 잠을 즐기기 좋았고, 항상 준우가 왼쪽에 나는 오른쪽에 기대어 앉아 졸음을 받아들이곤 했다. 준우가 떠난 뒤로는 그곳을 나 혼자 쓰게 되었다. 주눅과도 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날 내 옆에 앉은 것은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한 주눅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잠이 달아나 똑바로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나의 시선을 피하며 다짜고짜 나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돌아오지 않는다고? 무엇으로부터? 나는 그것이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종류의 사람이었을 텐데 어째서 준우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걸까.
세상에 마네키처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어.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주눅을 보았고 주눅은 딱딱하게 몸을 세워 다시 작업장 안으로 걸어갔다. 준우가 사라진 주눅은 여전했고, 어느 날엔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해주는 가끔 주눅의 말에 피식하며 웃음을 보였지만 나만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준우라고 믿었던 것이, 준우가 아니었다는 것.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네키가 문 앞에 앉아 있었다.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너 때문이지. 준우가 그러는 건.
내 목소리에 마네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으나 얼굴의 윤곽도, 표정도 없는 마네키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마네키는 준우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모든 행동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마치 준우를 학습한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네가 뭔데 준우를, 네가 뭔데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다분히 고의적인 태도로 마네키의 한쪽 발을 짓밟으며 또박또박 말했지만 마네키는 내 말을 듣고 있어서 가만히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말에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의 프로세스대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고 있는 것인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마네키에게 사실 준우를 좋아하고 있었냐는 물음 같은 걸 던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마네키에게 꿈이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쓸모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네키는 마네키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네키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믿을 수 없는 것 투성이지.
교묘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도, 준우도, 마네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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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네키를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마네키가 그것을 아쉬워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마네키는 나와 함께 작업장에 출근하고, 나와 같은 시간에 퇴근하곤 한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사과를 만들고, 마네키도 나와 같이 사과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비로소 마네키는 원래의 쓸모를 다하게 되었지만 나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즐겁지가 않다. 그런 이유로 나는, 마네키가 나에게서 도망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엔 조용히 눈을 감고 내가 마네키를 찾지 못하도록, 그것이 멀리 도망갈 수 있도록 기다려줄 것이다. 그렇지만 마네키는 도망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므로 결코 나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