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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Aug 19. 2022

과거로 돌아간 초능력자

재발과 도피





나에겐 초능력이 하나 있는데,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과 비슷한 종류다. 예를 들면, 월급이 들어온 내 통장을 월급이 들어오기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되돌린다든지, 저녁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친 후 누워서 TV를 보다가 남의 집에서 흘러들어오는 라면 냄새에 위장을 저녁 식사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그런 능력. 누구에게나 익숙한 능력이지만, 능력의 희소성 유무를 떠나 어쨌든 어떤 것을 ‘과거의 상태로 되돌린다’라는 측면에서 현실의 물리법칙을 위배하고 있지 않은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처럼 초능력은 원치 않을 때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병원에서 새로 배웠던 훈련과 이완 요법 등이 빠르게 잊혀 갔다. 기적처럼 좋아진 것 같던 나의 상태도 다시 치료 전 과거로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었다.


 

병원 치료로 완치되는 건 아니다. 단기간의 효과는 대부분 약의 효과다. 약으로 증상을 줄이면서 동시에 행동 교정을 하는데, 치료 이후에도 당시 배웠던 감각과 훈련을 꾸준히 단련시키고 유지해야 한다. 결국 치료 효과 유지는 나의 ‘노력’에 달려있다. ‘노력’은 내게 ‘시간여행’보다도 더욱 불가해한,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하위 능력으로 ‘인내, 끈기, 반복, 지속’ 같은 엄청난 것들이 있다. 평범한 사람보다 ‘반복’이나 ‘지속’에 취약한 나란 인간은 과도한 금전 출혈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통장의 희생이 무색하게 모든 것을 초기화시켰다.






실업급여가 끊기기 직전이라 겨우 숨을 이어가던 통장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잔액을 확인한 내 눈 역시 생기를 잃었다. 부모님은 ‘이제 상태가 좀 나아졌으니 뭐라도 슬슬 하겠지’라고 기대하는 눈치였고, 그 눈치에 염치가 없어 밥을 후다닥 마신 후 취업사이트에 접속했지만, 막상 마음에 맞는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각종 회사 소개서에서 전 회사의 환영을 보는 것 같은 단어들을 제외하고 나니, 갈 데가 없었다.



| 제외한 단어 |

열정

회사와 함께 커나갈 야심 찬 인재

교통비 제공

간식 항시 구비

휴게실 제공

주말 근무 수당 제공



저 단어들의 행간은 이러했다.



열정(페이)

회사와 함께 커나갈 야심 찬(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진, 그러나 사장은 절대 될 수 없는) 인재

(겁나 잦은 야근) 교통비 제공

(정신력 소모가 심한 일을 맡은 당신을 위한) 간식 항시 구비

(매일 과로로 피곤할 너를 위한) 휴게실 제공

주말 근무 수당 제공(이건 말 안 해도 뭐)


 

과로가 정신이 망가지는 데 일조를 한 것 같아서 힘든 회사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을 구하는 곳은 대부분 혹독한 환경이 예상되는 곳이었다. 사실, 회사의 악조건보다 회사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정신과를 다니며 쉬었던 공백기를 면접관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구원의 손길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누나, 나랑 광고대행사 할래?”






창업 역시 쉽지 않았다. 끊임없이 제안하고 반려되고, 또다시 제안하고, 또다시 반려되고. 밤을 새워 경쟁 프레젠테이션에도 참여했지만, 수입은 원래 받던 월급의 반도 안 되었다.



스타트업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면접과 발표 등이 잦았는데, 앞에 나서는 모든 일을 대표인 동생이 처리했다. 전화 업무, 서류 업무, 기획 등 동생은 사람과 접하는 일들을 도맡으면서 정신없이 바빠졌다. 나는 주로 디자인 제작을 맡았는데 어쩔 수 없이 개인적으로 배당을 받은 업무는 광고주와 직접 소통해야 했다. 이전처럼 전화 통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한 번 전화를 걸 때마다 다섯 번 이상 핸드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나마 광고주 미팅을 하러 갈 때는 동생과 함께라 불안감이 덜어지기는 했으나, 상대가 나에게 말을 걸면 바로 얼굴이 붉어지며 뇌와 혀의 연결이 끊어졌다.



지원사업 경쟁 프레젠테이션 날, 동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호소력 강한 목소리로 발표를 했다. 그도 나 못지않게 긴장했을 테지만, 드러나는 표정과 행동에는 여유와 침착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무대 뒤 객석에 앉아 나와는 너무 다른 인간의 발표에 감탄하면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냈다.



결국 우리는 지원사업에 붙었다. 들뜬 남매는 초기 창업자들이 늘 하던 패턴 그대로,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에게 빙의해 성공적인 벤처를 만들 것처럼 떠들었다. 기대와 달리, 사업은 계속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고, 나는 클라이언트의 현실감 없는 요구에 지쳐갔다. 사람과 끊임없이 접촉해야 하는 광고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싫다 한들, 더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돈을 벌려면, 마땅히 고객이나 클라이언트, 아니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거지도 ‘사람’에게 손을 벌린다. 냉혹한 사회에서 내쳐지자 동생이 ‘가족기업’이라는 탈출구를 뚫어줬고, 망설임 없이 냅다 동생 뒤에 숨어버린 마당에 이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사회 불안증이 발병했던 6개월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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