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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 Aug 22. 2022

결혼식이 두려운 사람

사회 불안증 환자의 결혼식





우리는 마주한 문제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외향인과 내향인의 근본적인 갈등을 그저 지나가는 사랑싸움으로 치부해버렸고, 언어장벽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나를 보며 16개의 앞니와 분홍빛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웃던, 뙤약볕이 내리쬐는 삼복더위에 내가 야외 테이블에 앉는 걸 좋아한다는 이유로(여름에는 제일 싫어한다) 땀을 줄줄 흘리며 굳이 밖에서 생일 케이크를 잘라주던, 시시때때로 입을 들이밀며 뽀뽀하자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인사와 밤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주던 남자.



기복 없이 일관성 있는 남자의 태도와 애정 표현에 나는 처음으로 안정감을 느꼈다. 남자와 함께 있으면 외출을 할 때도 불안감이 상당 부분 줄었다. 둘은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만남을 이어갔다. 혼기를 지난 남자와 혼기가 지나가고 있던 여자는 양가 부모님의 강한 추진력을 업고 쾌속으로 결혼식장에 입장했다.


 

애초에 결혼식이나 드레스에 환상이 없던 나는, 시부모님이 꿈꿔왔던 장남의 결혼식에 동참했다. 결혼식장과 그 외 모든 것이 그들의 의견대로 정해졌다.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대형 교회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공간이 꽤 커서 부담스러웠다. 낯선 공간에서 눈에 띄는 흰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무대에 올라 얼굴도 모르는 남자 친구의 지인과 친척들의 시선을 받는 상상을 하니 아찔했다. 이걸 어떻게 잘 지나가야 하나 고민만 깊어졌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불가능했겠지만, 죽어도 연예인은 못 될 것 같았다. 아침부터 나와 예비 신랑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로 찍어대는 사람들과,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나지 않는 헤어 메이크업은 고통이었다. 대체 연예인들은 이걸 어떻게 견디는 걸까. 다행히 한겨울이라 그나마 땀을 덜 흘렸고, 한동안 함께 여기저기를 쏘다녀 충분히 의지할만한 사람이 된 내 예비 신랑,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여서 긴장은 약간 덜했다. 우황청심환도 미리 복용했기 때문에 약간 나른한 상태였다.



- 드레스 라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제발 호흡곤란이 오지만 않게 해 주세요.



간절한 요구가 농담으로 받아들여졌는지, 고통에 겨운 괴성을 들으면서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안간힘을 다해 나의 통통한 내장을 우그러뜨렸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토닥였다. 신부님, 이 정도는 조여야 합니다. 죽어가는 새처럼 가슴으로 달싹달싹 숨을 내쉬며 거대한 예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차 안에서 조용히 빌었다. 중간에 쓰러지지 않기를, 그리고 두 발로 걸어 나갈 수 있기를.






식은 길었다. 주례하는 목사님의 목울대를 치고 싶었다. 처음부터 조촐하게 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할걸. 때늦은 후회가 목 뒤를 뻣뻣하게 당겼다. 종아리 길이만 한 힐, 호흡곤란 드레스, 한동안 물을 마실 수 없어 사막화되어버린 나의 점막들은 내 남은 정신 줄을 끊을 기세였다.



1초 뒤에 실신하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었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쥐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가누고 있었다. 만약 결혼식이 여름이었다면, 그래서 이 상황에 땀까지 흘렀다면 아마 공황발작이 바로 와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발작이나 졸도 말고 다른 데로 주의를 돌려야 하는데, 딱히 시선을 끌 만한 것이 없었다. 그때 예비 신랑도 긴장한 듯 호흡을 가다듬었다. 입이 살짝 열리고,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우우. 내 코가 움찔거렸다.



나의 예민한 성정은 사냥개 같은 후각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탐정이 되었다면, 코로 범인을 잡았을 거라며 친구들은 나를 셜록 ‘코’옴즈라 놀렸다. 온종일 물도 마시지 못한, 나의 예비 신랑이자 예비 역류성 식도염 환자의 심호흡은 내 코를 강타했다. 고통을 고통으로 잊는 게 이런 것일까. 지독하게 현실적인 입 냄새는 실신이나 졸도 같은 비현실적인 공포감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남은 시간 내내 입 냄새와 싸웠다. 한 번 감지된 냄새는 내 후각신경에 남았다. 신랑의 콧바람에서조차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신랑의 숨, 그리고 예배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기도를 할 때 벌어지는 그의 입에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불쾌감이 나를 정복했지만, 불안감은 훨씬 줄었다. 신체적 고통이 정신적 고통을 밀어낸 셈이다.





    

“신랑, 신부 뽀뽀하세요!”



마지막 행진이 끝나고 끝인가 싶더니 고통의 끝판왕이 찾아왔다. 신랑의 입이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콧구멍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벌름거렸다. 억지로 웃는 입술에 경련이 일었다. 사진은 늘 그렇듯 그 순간을 아름답게 왜곡했지만, 현실은 구렸다.



어쨌든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다. 힘들게 치른 결혼식 사진은 우리 집 어디에도 걸리지 않았고, 누구도 꺼내어 보지 않았다. 기억에 남은 건 냄새뿐이었다. 시선 공포와 *예기불안을 쫓아낸, 아주 지독하고 신통한 냄새.     




*예기불안: 공황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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