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이에요
백설공주 이야기는 슬프고도 먹먹한 이야기다.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고 영원히 잠들어 버린 백설공주. 가장 슬퍼한 이들은 일곱 난쟁이들이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백설공주의 신분 회복을 위한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일곱 난쟁이들의 이야기였다. 왕자가 되지 못한 일곱 아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백설공주는 원래 일곱 난쟁이 중 한 명과 결혼해야 했다. 마법에 걸린 왕자를 찾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공주가 정말로 일곱 난쟁이와 결혼하고 싶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외모와 신분은 언제나 중요한 법이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왕이 마녀를 보내어 공주를 죽이려 했다. 자기 딸을 죽이려는 왕이라니,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웃 나라의 왕자는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백설공주를 구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입만 열면 모든 매력이 깨지고 말았다. 백설공주는 자신을 마법에서 깨운 왕자를 바라보며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모른다. 일곱 난쟁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왕자와 공주는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까?
얼마 전 중앙도서관에서 백설공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백설공주는 1800년대 독일에서 시작된 이야기였고, 그 당시 제목은 '슈네비첸', 즉 눈처럼 하얀 소녀였다. 일곱 난쟁이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고, 월트 디즈니가 1937년에 이들을 추가했다. 디즈니는 선천성 조로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난쟁이들의 숫자가 일곱인 것도 디즈니가 좋아했던 숫자가 7이었다. 백설공주는 디즈니의 첫사랑을 닮았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조로증에 걸린 디즈니가 만들어낸 일곱 난쟁이와 첫사랑의 모습. 그런데 왕은 왜 백설공주를 죽이려 했을까?
"솁, 이러다 늦겠어, 빨리 가."
내 질문에 은하는 다그쳤다. 종종 차가 끊겨 별이 빛나는 밤을 무수히 걸어야 했다. 시를 적었고 편지를 썼다. 그렇게라도 걷지 않으면 벅찬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수유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려면 여기서 나가는 막차 152번 버스를 꼭 타야 했다. 마지막 종착역은 사당이었다. 사당에서는 집까지 또 걸어야 했다. 연인들 사이의 사랑이 그렇듯이 우리도 그랬다. 애틋했고, 잠시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다. 그때 함께 있는 시간만큼 행복한 일도 없었다. 문장 속 낱말들이 '함께', '우리', '너와 나', '보고 싶어', '사랑해', '영원히' 같은 말들로 가득 찼다. 둘을 묶을 수 있는 단어라면 세상에 없는 말까지도 쓰고 싶었다.
나는 휴일이면 대형 서점에 종종 들렀다. 그날은 날이 너무 좋아서 룸메이트도 없는 방에 혼자 있기 싫었다. 집에서 대형 서점까지는 꽤 멀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서울은 상상 이상으로 큰 도시였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은 가벼웠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하는 일이 흔해진 요즘, 나는 대형 서점에서 온종일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언젠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면 책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이야기 없는 세상, 텍스트로 가득 찬 세상이 없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게 그럴 일인가 싶지만.
서점에 가면 가장 먼저 인기 없는 철학 코너로 갔다. 복잡한 서점 속에서도 그곳은 언제나 조용하고 거룩한 공간이었다. [언어로의 도상에서]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것인지 책은 완벽하게 새것이었다. 종이 페이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밀어 넘길 때 나는 새 책 특유의 소리와 냄새를 느꼈다. 그때는 하이데거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글자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충격에 오기가 생겼다. 한글로 쓰인 책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 책도 그랬다. 가지고 간 커피가 바닥을 보일 즈음, 공복감에 졸음이 밀려왔다. 어깨는 뻐근해지고 엉덩이는 배기기 시작했다. 서점이 지하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피곤해서인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불렀다.
"점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스물한 살의 은하였다. 개운한 바깥공기 냄새와 은하에게서 나는 향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감색의 더플코트와 검은 머리카락이 은하의 하얀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아직 이른 봄꽃향기 같았다. 나른했던 몸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은하는 바닥에서 일어나려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날 처음 은하와 손을 잡았다. 시원하고 깨끗한 손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을 만난 적이 없다. 한때는 그런 손을 찾으려 했던 적도 있었다. 은하는 언젠가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특별한 날 없으면 종각에 있는 영풍문고에 가.' 그 말을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고 한다. 전공 서적을 살 겸, 혹시 점장님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했다. 은하는 그런 순간들이 어쩐지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나를 만나게 된 것을 아주 좋아했다. 나도 그 순간, 백설공주가 마법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녀와의 만남이 특별하다고 느꼈다. 입만 열지 않는다면 완벽했다.
사실 백설공주의 아버지는 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와 어린 시절 친구였다. 그에게는 일곱 왕자가 있었다. 왕비 루이제가 갑작스럽게 죽고 난 뒤, 카를 아우구스트는 아이들을 돌볼 보모를 데려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아이들은 자라지 않았다. 이를 백설공주의 아버지였던 작센-마이넹겐의 베르하르트에게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어떤 마법에 걸려 있다고 했다. 이 마법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루이제의 혈통에서 태어난 소녀여야 했다. 백설공주가 그 소녀였다. 루이제의 여동생이었던 루이제 베르하르타, 그녀가 백설공주의 어머니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체적인 딸을 다루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야기대로라면 백설공주는 일곱 왕자를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설공주는 왕자를 구하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독이 든 사과 덕분에 입만 열면 깨는 왕자와 조금은 불행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한편, 카를 아우구스트는 분노에 차 백설공주를 죽이려 했다. 아버지 베르하르트는 딸에게 저주를 걸어 영원히 하얀 눈꽃 소녀로 살게 했다. 이렇듯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비극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날 은하가 오기 전, 나는 멋진 구절을 찾기 위해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고 있었다. 반쯤 잠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사실을 추구하는 이과생들에게는 진위를 가릴 사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과생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다.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 속에 살아간다. 사건의 중심에 있길 원하며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를 찾는다. 사랑은 하나의 사건이다. 어떤 이름이 내 이름 옆에 붙어서 일어나는 사건. 그것은 새로운 언어다. 그 언어가 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진다. 가끔 진위를 가려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를 정말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나 혼자서 사랑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사랑은 누군가의 언어로 침투하는 것이다.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너의 이름 옆에 내 이름을 적어 넣는 일이다.
그날 그녀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다 먹었던 것 같다. 처음 듣는 낱말이 많았다. 색이나 촉감마저 낯설었지만 좋았다. 계절은 꽃을 피우지 않고도 이렇게 열매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그녀는 청춘의 순수한 생동감이었다. 김경주 시집처럼 또렷하게 내 기억에 박히게 되었다.
'너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한동안 이 세계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계절은 이 세계는 몸과 마음을 갈아입었다. 그런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난 나는 몰래 핀 곰팡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나를 인식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그 괴로운 일을 의식하게 되면 줄곧,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를 만나고 나서 달라졌다. 그녀의 세상에는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있었다,라고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나라는 계절이 있었다. 2월, 서울은 유례없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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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_김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