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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n Nov 01. 2024

영화는 자기 돈으로 만드는 거 아니다


내가 동민을 난니맨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평상시처럼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왜?”

“니가 전화했잖아? 부재중 전화 와 있던데?”

“그랬나? 아~ 맞다. 뭔 일 있었어? 전화기도 꺼놓고?”

“배터리가 다 떨어졌어. 어디야?”

“지금 나가려고. 넌?”

“난 장례식장이지. 빨리 와. 그래도 우린 감독님 새끼들인데 먼저 와 있어야지.”

“그런데 감독님은 어떻게 돌아가신 거야?”

“그것까진 안 물어봐서.. 자살이라는데 어떻게 자살했는지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래.. 굳이 물어보진 말자. 말해주면 몰라도.”

“당연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임 감독은 그 누구보다 자살로 인생을 끝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어떻게 자살했는지 자꾸 궁금해졌다.


검색해보니 장례식장은 서울 변두리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다. 지하철 역 앞에서 버스를 탈까 했지만 배차 간격을 확인해보니 15분 쯤 기다려야 해서 그냥 걷기로 했다. 도보로는 20분 정도 걸렸지만 그게 마음이 편했다. 


한참을 걸어서 병원 정문에 도착한 후 또 한참을 구불구불 안쪽으로 들어가자 장례식장 입구가 나타났다. 조문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바로 뒤에 야산이 있어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조의금은 얼마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로비 구석의 소파에서 쭈그린 채 자고 있는 동민이 보였다. 


가까이 가니 술 냄새가 폴폴 풍겨 왔고 배터리가 떨어진 이유가 짐작이 됐다. 밤새 술을 마시다 충천하는 걸 잊은 것이다. 아침에 다시 충전을 한 다음에 나에게 연락을 했겠지. 애널맨 블로그에 올라온 저격글은 당연히 못 읽었을 것이고.. 허무했다.


“야 일어나 봐.”


조만간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작자 정동섭 대표님 때문에라도 조문객들이 올 텐데 그 전에 난니맨 문제를 끝내버리고 싶었다. 동민의 어깨를 붙들고 거칠게 흔들자 게슴츠레 눈을 떴다.


“어.. 최 감독 왔어?”


난 동민의 눈 앞에 ‘꼴리는 영화’의 관람평이 띄워진 스마트폰을 들이 밀었다. 애널맨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여주며 차근차근 간부터 보기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동민이 눈을 부비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고 나는 웃는 기색 하나 없이 돌직구를 던졌다.


“이거 너냐?”

“최경진 감독 직업 바꿔라. 아 짜증난다. 이걸 영화라고 찍었냐? 아우! 그만 좀 해라. 개봉한지 십년 넘지 않았냐? 이제 그만 보내줘. 니 영화 평점 검색도 그만하고.”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대답하는 동민을 보고 있자니 동민은 난니맨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습이라면 기습인 셈인데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자기가 쓴 글을 읽는 느낌도 전혀 아니었다. 정말로 처음 접한 문장을 읽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동민은 난니맨 용의자 후보에서 제외다. 


“아유 됐다. 감독 지망생이 감독님의 심정을 어찌 알겠냐.”


아픈 곳을 찔렀는지 동민은 말이 없다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어젠 잘 들어갔냐?”

“응.”

“별 일 없었지?”

“별 일 있었지.”

“뭔 일?”


동민이 정색하고 물었다. 눈에 살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잤다. 어쩔래?”


간밤에 혜나와 있었던 일을 곧이 곧대로 얘기했다간 정말로 살해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강한 긍정으로 더 쎄게 나가보았다. 그러자 동민의 살기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잤을까봐 걱정이었는데 정말 잤다고 하니까 뻥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야! 혜나씨는 배우야. 넌 감독이고. 말 조심해라. 누가 들으면 진짜인 줄 알겠다.”

“너 혹시 혜나씨랑 사귀냐? 웃자고 한 말에 왜 정색하고 그래?”

“아니. 우린 그런 사이 아니야.”

“사귀고픈 마음은 있고?”

“아니라니까.”

“그럼 알 필요 없잖아. 뭔 일 있었든. 잤으면 어쩔건데?”


동민의 눈가에 다시 살기가 돌았다. 농담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주라. 정말 잤냐?”

“야! 나 몰라? 나 최경진이야. 내가 여배우나 건드리고 다니는 양아치로 보여?”

“그건 모르겠고.. 솔직히 말해 봐. 잤냐? 잤지? 에이 잔 거 같은데?” 

“뭐라는 거야? 미친 놈이.. 당연히 안 잤지. 조만간 차기작 들어갈 텐데 발목 잡힐 일 있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 왔는데 잠깐을 못 참고 그걸 다 포기할 것 같아?”


동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보니 지난 밤에 혜나와 있었던 일은 무덤까지 가져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확실히 난니맨은 아닌 듯 했지만 혹시나 해서 마지막으로 확인 사살을 해 보았다.


“아 참. 너 혹시 애널맨 블로그 들어가봤나? 간만에 웃기는 글 올라왔던데?”
 “아니. 그 딴 블로그는 노관심.”

“왜? 니 블로그 ‘혼자 영화보는 남자’의 라이벌 아니야?”

“노관심이라고! 애널맨이 한 물 간지가 언젠데.”


무슨 글이 올라왔는지 궁금해하지조차 않는 걸 보니 동민은 애널맨 블로그에 관심이 없었다. 애널맨의 정체도 마찬가지. 더 이상 물어봤다간 역효과가 날 것 같아 말을 돌렸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거야?”

“어제 저녁부터. 넌 언제 왔어? 사모님은 만났고?”

“방금 왔어.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고.. 몇 호실이지?”

“5호실. 같이 들어가자.”


5호실 입구에는 한 때 잘 나갔던 영화사 이름과 누군지도 모를 감독들의 이름이 붙어 있는 화환 서너 개가 쓸쓸히 조문객들을 맞이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 때 충무로 최고의 흥행 감독인데 조문객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방 안쪽에는 임 감독 리즈 시절의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 때 충무로 최고의 흥행 감독이었으나 연이은 흥행 실패 이후 사재까지 털어 자기 영화를 제작하다 패가망신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임문호 감독. 특별할 것도 없는 흔한 충무로 스토리였다. 영화는 자기 돈으로 만드는 거 아니다. 투자가 안 되는 영화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5호실 내부는 한적했고 빈소는 임 감독 딸 은조 혼자 지키고 있었다. 동민은 은조에게 목례 후 조문객들이 있는 방으로 먼저 들어갔고 나는 임 감독의 영정 앞에서 두 번 절을 한 후 은조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은조와는 수 년만의 재회였지만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


“영화 잘 봤어요 오빠. ‘꼴리는 영화’요.”

“그.. 그래. 고마워.”

“오빠가 그런 영화로 데뷔할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모텔 씬은 진짜 웃겼는데..”

“웃겼다니 다행이다. 더럽다는 의견도 많더라고.. 그나저나 사모님은?”


내가 만든 영화지만 이런 자리에서 입에 올리기엔 부적절한 듯 해서 얼른 은조의 입을 막았다. 사모님은 몸이 안 좋으셔서 안 쪽 방에서 쉬고 계시다고 했고 난 사모님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동민에게 갔다. 


“야.. 얼마 했냐?”

“세 장.”


30만원은 무리다. 잠깐 고민 후 10만원으로 결정했다. 솔직히 지금의 나에겐 10만원도 거금이다. 그리고 예전에 임 감독 시나리오 집필을 도와주고 못 받은 돈이 수백이다. 그 돈이랑 온갖 잡일들 도와주고 못 받은 돈까지 합치면 최소 천만원은 될 것이다. 은조 대학 입학 선물로 노트북도 사줬다.


10만원이 담긴 봉투를 조의금 함에 넣은 후 동민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가자 맞은 편엔 선배 조감독 해원이 소주를 스트레이트로 목구멍에 들이붓고 있었다. 나를 임 감독의 연출부로 소개시켜 준 해원은 감독 데뷔를 영원히 포기해서인지 나를 볼 때마다 감독님 감독님 하면서 깐족거렸다.


“아이고 최 감독님 오셨어요?”

“오랜만이에요 형. 잘 지내셨죠?”


원래 이렇게까지 삐뚤어진 형은 아니었는데 수년 전에 모니터를 부탁한 시나리오에 솔직하게 직언을 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는 만날 때마다 항상 적개심에 가득 차 있어서 될 수 있으면 피하는 사이였는데 하필 여기서 마주치다니.


“그래도 살아는 있구나? 하도 연락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지.”

“죽은 거나 마찬가지에요.”

“장례식장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앗.. 죄송요.”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기사 봤니? 그래도 우리 감독님 마지막 가시는 길 서운하진 않으시겠더라. 명감독이래 왕년의 명감독. 허허.”


해원이 나에게 들이민 스마트폰을 보니 포털 연예란에 임 감독의 부고 기사가 떠 있었다. 임 감독의 유작이 되어버린 ‘유언’에 대한 작품 소개도 있었는데 사재를 털어 제작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는 정보까지 알뜰하게 담겨 있었다. 굳이 저런 실패담까지 올릴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고 기사가 뜰 정도면 완전히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어도 부고 기사가 뜰까? 글쎄다. 저예산 19금 떡 영화로 데뷔와 동시에 은퇴한 폭망 감독의 죽음은 기사 가치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혹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들었어?”


옆에 있던 동민에게 묻자 동민은 주변을 살피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좀 아까 들었어. 거기 알지? 감독님 가끔 가던 펜션있잖아.”

“응 있지. 종종 집필하러 가시던.”

“거기서 목을 매셨대.”

“목을? 이상한데? 감독님이 그렇게 가실 분은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너라면 살고 싶겠냐? 영화는 쪽박에 가족에게 버림받고.. 에휴.. 그 놈의 영화가 뭔지. 영화는 역시 악마의 예술이었어.”


동민과의 대화가 해원에게 들리는 게 신경쓰였는데 해원은 우리의 얘기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혼자서 묵묵히 소주 잔만 비워댔다. 시종일관 죽상인 걸 보니 감독 데뷔에 실패했다는 상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마주보고 있으려니 나까지 우울해져서 다른 테이블로 옮기려고 주변을 돌아 보았지만 도찐개찐이었다. 


임 감독 영화에 종종 출연했던 단역 배우 몇 명과 친척들로 보이는 중장년 대 여섯이 전부였다. 그래도 한 때 잘 나가던 감독님의 마지막이 이 정도라면 나의 마지막은 정말 가관이겠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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