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과 전업맘의 시작
어느새 워킹맘 생활이 익숙해진 듯했지만, 사실 매일이 전쟁 같았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분주한 준비와, 머릿속에서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수많은 생각들이 엉켜있었다. 일터에서의 책임과 아이에게 주고 싶은 사랑이 서로 충돌하면서, 나는 그 중심에서 매일 조금씩 흔들렸다.
회사에선 전처럼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지배했다. 업무 중에는 잠시라도 아이 생각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애썼지만, 문득문득 스쳐 가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동료들이 웃으며 저녁 식사를 제안할 때도, 나는 늘 ‘이 시간에 집에 더 빨리 갈 방법이 있을까?’ 생각하며 모임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는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줬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회사에서의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가끔은 아이와의 시간이 부족한 걸 아쉬워하며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있나?’ 자책하곤 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미안함, 그리고 일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자책감. 워킹맘으로서 매일을 버텨내며 분투하던 나는 결국 커다란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 매일 아침 눈물로 나를 붙잡는 아이의 손을 떼어내고 출근하는 것이, 일터에서는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더는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갈림길에서 가정을 택하기로 했다.
2019년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나니,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던 짐이 풀리는 듯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맞이한 평온한 일상은 마치 오랜 시간 바래왔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동안 일터와 집을 오가며 늘 시간에 쫓겼던 내가, 이제는 천천히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길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업맘으로서의 삶은 매일 새로웠고,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잔잔한 행복으로 가득 찼다.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거리조차 내가 가장 바라는 시간이 되었다.
그해 여름, 나는 둘째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기다림과 불안 속에서 어렵게 만난 둘째는 내게 또 다른 기쁨과 안정감을 주었다. 둘째의 작은 손을 잡고 있을 때면, 세상이 멈춘 듯한 평온함이 마음을 채웠다. 두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만하게 느껴졌고, 매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나의 삶에 새로운 빛을 더해주었다.
아이의 성장과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이제는 그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출근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아침, 아이들을 정성껏 챙길 수 있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서 보냈던 하루와는 완전히 달랐다. 하루의 시작은 아이들의 웃음과 눈빛으로 가득 찼고, 늘 바쁘게 돌아가던 회사의 일상 대신 아이들과 천천히 보내는 시간이 주는 안정감이 나를 감싸줬다. 아이들의 일상 하나하나에 더 깊이 관여할 수 있었고, 그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내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그 어떤 성취감보다도 소중했고, 특히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모든 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작은 손으로 교과서를 펴고, 서툰 글씨로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 둘째와는 매일 산책하며 자연을 함께 느끼고, 작은 웃음 속에서 깊은 유대감을 쌓아갔다.
하지만 가끔은 내게 물어보곤 했다. “이 선택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한 것일까?” 지금 이 시간 속에서 발견한 내면의 평온과 안정이 내게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간이 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균형 잡힌 삶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다독이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워킹맘으로서 겪었던 불안과 긴장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하며 얻은 평온함을 통해 나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선택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음 여정에서 마주할 새로운 나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