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들렌 Sep 05. 2023

빛과 어둠

편리함과 불편함

며칠 전 아침이었다.  

출근준비를 다하고 나가기 전, 은비에게 깨끗한 물 한 사발을 주고 가려고 싱크대 앞에 서서 발판을 눌렀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고? 욕실로 가서 수도꼭지를 열어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하!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마저 나가버렸다.

이건 또 무슨 일이고??

전력 소모가 많은 저녁도 아니고, 아침에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온 뒤로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린 적이 2번 있었는데, 2번 다 5분 이내에 복구가 되었다. 그래서 조금 늦더라도 물을 준비해 주고 가려고 왔다 갔다 하였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뒤돌아보니, 자동급수기의 물도 더 이상 쪼르르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밝은 귀를 가진 이 녀석은 미세한 전기소리가 거슬렸는지 평상시에도 투명볼의 물을 더 선호하였는데...

어떡하지?

전기 포트에 남아있는 식지 않은 물을 그릇에 부어 손가락을 넣어 보고는 이거라도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커다란 투명 볼 가득 물을 부어놓고서 은비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은비야, 이 물 꼭 먹어야 해, 알겠지? 그리고 집 잘 지키고 있어, 일찍 올게!

야옹~

바쁘게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데, 이건 또!!

엘리베이터가 먹통이네. 전기가 나간 상태이니 작동이 안 될 수밖에...

9층에서 지하 1층까지 걸어내려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쁘게 내려가면서 내 집이 21층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려가는 길에 만난 3층의 입주민은 다리 수술 후라 몹시 힘겹게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야! 

지하 주차장은 온통 어둠에 싸여 있었고, 순간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평상시보다 늦어져서 마음은 급한데, 통로에는 얌체 같은 큰 차가 양쪽 주차를 해 놓은 상황이라 나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서 평상시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다른 쪽 출구로 향해야만 했다.

그런데, 반대편의 차가 경적을 울리며 손짓을 하여 창문을 내려보니, "이쪽 출구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으니, 차를 돌려야 해요."라고 알려주었다.


이런 젠장!

뒤에 따라오던 몇몇 차들에게도 이런 상황을 알려주면서, 갈길을 재촉하였다. 양쪽 주차를 해 놓은 차가 아니었다면,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다행히 다른 쪽 출구는 한쪽이라도 열려있었고, 관리실의 아저씨가 수신호를 해주어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어둠 속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헤매다가 빠져나온 바깥세상은 정말 환하고 밝았다! 순간 영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의 한 장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ㅋㅋㅋ...


이런 것이 전기의 힘이구나!

평상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전기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바쁜 출근 시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나는 혼비백산하였고, 안전한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빨리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안정을 찾고 나서야 나는 몇 년 전에 있었던 일 하나를 떠 올렸다.

주일 미사 참례를 위해 성당에 갔다가 순간 정전이 되는 바람에 50여분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전기가 나가는 일은 참 드물었던 터라 '불편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출근 후,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하여 언제 전기가 들어왔는지 확인을 해 보았다. 두 시간 정도 뒤에 복구가 되었다고 하는데, 한편으론 다행이지만 이런 일이 언제 또 발생하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왜에? 전력이 모지레나? (부족하나?)




등화관제(blackout)


아주 오래전, 대략 1980년대 중반이었던가? 

<등화관제 훈련>이라는 게 있었다. [전쟁 중 적기의 야간공습에 대비하고 그들의 작전수행(탐지+공격)에 지장을 주기 위하여 일정 지역의 일반등화를 일정시간 동안 강제로 제한하는 일. 적에게 상황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또한 야간 공습 또는 야간 포격 등의 목표가 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었다(위키 백과사전 참조)]


MZ 세대들에게는 정말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그 당시에는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야간 훈련이었다. 사이렌이 웽~ 하고 울리면, 빨리 소등을 하고 훈련이 종료될 때까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어야 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때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형제들과 소곤소곤 그날의 사건사고(?) 들을 나누기도 했었다.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긴장된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세계가 놀라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사회적·문화적으로도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덧 문명의 편리함 앞에서 어렸을 때의 기억은 추억 속에서나 남게 되었고, 어쩌다가 부모님 세대의 어릴 적 추억 한 조각이 소환되어 들려지게 되면, 아이들은 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시절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문명의 이로움과 편리함 속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다가, 잠깐 끊어진 서비스에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편리함’과 ‘쉬움’에 익숙해져 있다가 보니, 그날처럼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될까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도 전기가 없어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제품은 없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은비를 위해서 생수도 구입하게 되었다.


에너지 대란이 일어나서 전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펼쳐지게 될까?                

이전 09화 은비의 마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