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교
최근에 미국에 살고 있는 친언니가 한국 나들이를 다녀갔다.
많은 망설임을 끝내고 날아와서 한 달이 조금 넘게 머물다가 가족들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가끔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안 계신 친정이라..., 장시간의 비행을 하며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하였다.
마음이 두 마음, 세 마음인 그런 언니에게, 장시간의 전화 통화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하였다.
"형제자매도 있고, 친구도 있고, 꼭 방문해 보고 싶은 곳도 있다면서? 늦둥이 키우느라 고생하였으니, 자신에게 휴가를 주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하면서 최면을 걸었더니 그제야 날아온 것이다.
대구에 살 때는 국내선을 갈아타고 왔지만, 내가 경기도에 자리를 잡으면서 공항은 훨씬 가까워졌고, 동생이 마중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언니를 안심시켰다. 사실 한국에서 산 날보다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훨씬 길었던 언니는 껍데기만 한국사람일 뿐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난생처음 운전을 해서 인천대교를 건너 공항으로 가는 길이 내게는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길고 긴~ 인천대교를 달리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설렘과 반가운 마음에 이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상황들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
[인천대교 : 한국에서 가장 긴 다리로 연결도로를 제외한 교량 길이 18.38km, 2005년 7월 착공 2009년
10월 완공함. 6차로 고속도로인 인천대교는 사장교·접속교·고가교 등 다양한 형식의 특수교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장교의 주교각 사이의 거리는 800m로 준공시점 기준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 (출처. 다음백과) ]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처음으로 내 핏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태평양을 건너 언니의 집을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그때 언니와 형부는 정말 반갑게 시카고 공항까지 마중 나와 주었다.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동생을 소개하였고, 동생들이 번갈아 가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도, 언니와 그 가족들은 진심으로 환대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국이 아닌 곳에서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계실 때에는 언니도 3~4년 만에 한 번씩 친정 나들이를 왔었지만... 그 후로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배처럼 한국에 가야 할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장시간 비행에 지친 언니는 내 집에서 열흘 정도의 시간을 보냈고, 은비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검은색 레트리버를 키우는 언니는, 고양이 은비가 행여나 예민하게 굴거나 자신을 경계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지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굿보이(good boy)'라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고, 은비 역시 뉴 페이스[new face]인 언니를 불편하게 하지 않아 이쁨을 듬뿍 받았다.
언니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였다. 모처럼 만난 형제자매들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실시간으로 카톡 사진을 내게 날려주었다.
나는 언니에게 [한국 나들이] 오기 전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가지고 와서 시간을 알차게 쓰라고 권유하였고, 언니는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부지런히 원하는 일정을 하나씩 실천해 갔고 마음 가득히 추억 쌓기를 하였던 것 같았다.
만나면 헤어짐의 시간도 있는 법.
알차게 한국 나들이를 마무리한 언니에게도 돌아갈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한 달은 너무 짧지 않나? 뭘 배우고 가려면 적어도 석 달은 있어야지?"
"내년에 또 보면 되지, 아니면 우리 하와이에서 만나는 건 어때. 거기가 딱 중간이잖아!"
어렵게 한국 나들이를 결심했던 언니가 어떤 계기가 있어서 내년을 또 이야기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약속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니를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 인천대교는 너무 길었고,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이 흘러내려서 슬펐다. 언니에게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쪼금 서둘러 입국장에 들여보내고 돌아섰지만,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한번 더 안아줄걸... 한번 더 웃어줄걸...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던 나는 참았던 눈물이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은비에게 이모가 갔다고 다시 한번 말해 주고 나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엉엉 눈물 흘리는 집사의 모습에 바닥에 잔뜩 웅크리고 앉은 은비는, 큰일이 난 것 같은 심각한 눈빛을 하고 한참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집사의 감정을 읽을 줄 알지...
너도 언니가 고향에 내려가고 없는 침실 앞에서 며칠 울었잖아...
언니는 왜 그렇게 멀리 가서 사는 거야... 하면서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었다.
조병화의 <만남과 이별>
만남의 기쁨이
어찌 헤어짐의 아픔에 비하리
나를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나를 슬프게 한 사람이나
내가 기쁘게 한 사람이나
내가 슬프게 한 사람이나
인생은 그저 만났다간 헤어지는 곳
그렇게 만났다간 헤어져가야 하는
먼 윤회의 길
지금 새로 기쁨으로 만났다 한들
머지않아 헤어져야 하는 슬픔
어찌 이 새로운 만남을 기쁘다고만 하리
눈물로 눈물로 우리 서로 눈물로
숨어서 울며, 웃으며 헤어져야 할
이 만남과 헤어짐
정이 깊을수록 더욱 마음이 저려지려니
이 인생의 만남을
어찌 그 헤어짐의 아픔에 비하리
다리(bridge)는 끊어진 것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다리를 건너갔지만, 돌아오는 길은 헤어짐의 슬픔을 안고 건너오게 된 것이다.
만남은 헤어짐의 시작이고,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의 약속이라고 하지.
자매의 시간이 그렇게 끝이 나고, 다시 은비와의 시간이 계속되면서 나는 좀 더 은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소파에 자리 잡고 앉은 내 옆에 은비도 자리를 잡는다. 손을 뻗어 무심히 쓰다듬어 보았다. 이내 은비의 따뜻한 체온이 내게로 전달되었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털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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