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키워드, 성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일본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의 인터뷰 영상이 떴다. 전날 영지 소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의 수려한 외모가 가장 먼저 시선을 끌었지만, 그의 얼굴만큼 인상적인 건 썸네일이었다. 깔끔한 흑백 컬러에 차분한 표정, 그리고 하단에 큼지막한 글씨로 쓰인 질문.
주저없이 영상을 클릭했다. 단편 영화 같기도 하고 비주얼 아트 같기도 한 화면에 순식간에 빠져 들었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관한 질문이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이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들도 있어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도 인터뷰에 집중했다. 7분 30초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기다리던 질문이 나왔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는 걸 믿어요?" 그는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랑에 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녹아 있는 답변이었다.
"저는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고는 믿지만, 사랑은 변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략) 그 색깔이라든가 무게라든가 질감이라든가. 어떤 소재로 돼있을까. 형태도 그렇고. 정말 다양한 모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중략) 제대로 소중히 여긴다면 분명 점점 더 자신을 확실히 채워준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랑을 해봤길래, 이런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건가요. 오랜 시간 덕질을 하며 느꼈던 감정들, 분명 이건 사랑인데, 사랑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인데, 자꾸만 다른 이름을 붙여주려는 세상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는 답답함, 알듯 말듯하면서 이건 어떤 형태의 사랑일까, 이게 사랑일까 망상일까 나조차 헷갈려하던 날들의 기억이 의식의 수면 위로 하나둘씩 떠올랐다.
나비효과인가? 그날 저녁, 문득 영화 <타이타닉>이 보고 싶어졌다. 나의 인생 영화 목록에 제일 먼저 놓일 작품. 초등학생 때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몇날 며칠을 공상 속에 빠져 지냈다. OST에도 제대로 미쳐서 <My Heart Will Go On>이 수록된 셀린 디옹의 카세트 테이프도 샀다. 아마 처음으로 산 해외가수의 음반일 거다(당연히 돈은 엄마가 냈겠지만). 막 스무살을 넘겼을 땐 친구와 술 한잔 하고 이런 이야기도 했다.
"야, 너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어?"
"... 음.. 슬픈 사랑?"
"뭐야, 왜 슬픈 사랑이 하고 싶은데?"
"... 그게 가슴 절절한 사랑이 뭔지 느껴보고 싶어서. 마냥 좋기만 한 건 진짜 사랑이 아닌 것 같아."
".... (대충 신기하다는 눈빛)"
이때 머릿속으로 떠올린 '슬픈 사랑'은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의 사랑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내게 사랑의 어떤 원형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봤을 때, 오랜 시간 이 영화를 봐 왔음에도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장면이 눈에 들어 왔다. 바로 로즈가 미국에 도착한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압축해 보여주는, 할머니가 된 로즈의 침대 옆에 놓여진 사진들이었다.
이제야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을 제대로 마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끝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잭의 희생으로 로즈가 살아가는 모습이 불러 일으키는 강한 정서적 충격, 이를 테면 가슴 아픔, 슬픔, 애통함 등으로 표현되는 감정에 압도되어 나는 '슬픈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렀던 거다. 하지만 지금 보니 할머니가 된 로즈도, 사진 속의 로즈도, 비가 내리는 항구에서 쓸쓸하게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던 로즈의 눈빛에서조차 절망은 없었다.
사랑하는 이는 또한 성실해야 한다.
성실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표현할 수가 없다. 혹은 성실하게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 김겨울, <아무튼 피아노> 중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보다 성실한 행위가 있을까. 타이타닉 호 갑판 위에서 “미국에 도착하면 남자들처럼 다리를 벌리고 말을 타겠다”던 로즈,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사랑하는 이를 자기 손으로 떠나보내며 살아남겠다고 다짐하던 로즈. 그리고 백발 할머니가 되어 잭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로즈. 그렇게 시공간을 너머 잭의 사랑이 확장되는 순간. 그래서 마지막에 블루 다이아몬드를 바닷 속에 버리지 않았을까. 이제는 그 보석이 없어도 세상이 잭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단 걸 알았으니까.
아이돌과 팬은 "영원하자"는 약속을 주고 받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팬들은 아이돌과의 사랑에서 '영원'을 꿈꾼다. 나는 이게 덕후들이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사랑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이돌 팬들이 365일 늘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덕후의 사랑은 일상이다. 열정만을 앞세워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일부 팬(사실 이들을 팬이라 부르고 싶지 않지만)도 존재하지만 그들은 정말 일부일 뿐이다. 내 욕심을 채우려 상대를 다치게 하는 사랑을 나는 오히려 현실에서 더 많이 봤다.
다시 사카구치 켄타로의 말로 돌아와서, 그의 말을 정확하게 반영한 사랑이 있다. god와 fan god(god의 팬덤명)다. 다른 팬지(fan god의 줄임말)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god를 떠올릴 때 맨 먼저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은 그들의 찬란했던 영광의 시대가 아닌 그룹의 마지막을 직감한 순간이다. 2005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 god의 마지막 앨범이나 다름없었던 7집 수록곡 <하늘 속으로>를 들으며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하나 둘 셋하면 동시에 돌아서는 거예요
누구도 누구의 뒷모습 보지 않기
절대 돌아보지 말아요
이별은 한 적 없죠
사랑한 기억들만 있을 뿐
헤어진 기억은 없죠
행복한 추억들만 있을 뿐
god란 가수가 내게 준 가장 큰 이상(idol)은 그들의 '우정'이었다. 그들에겐 헤어짐이란 없을 줄 알았다. 끝이란 없을 줄 알았다. 멤버 한 명이 빠진 6집부터 god 노래를 듣기가 힘들어졌고(아이러니하게 팬들 사이에서 6집은 3, 4집 못지 않은 명반으로 통한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 소식이 들려와도 어쩐지 예전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앞으로 덕질은 다시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그들에 대한 마음도 지워졌다고 여겼다. 그런데 2012년, 갑자기 한 케이블TV 방송에서 윤계상과 나머지 god 멤버들이 재회하며 그동안 팬들도, 멤버들도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닌가! 그리고 2년 뒤, god는 기적처럼 다시 5인조로 재결합해 8집 앨범을 냈다. god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두 번째 장면은 당시 음악방송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하늘색 수트를 입고 대표곡 거짓말을 부르던 그들의 모습이다. 팬지들이 외치는 "천의 얼굴 윤계상"에 잔뜩 경직되었던 그의 표정이 스르륵 풀리며 미소짓는 얼굴을 보자마자 단숨에 알았다. 이건 지워지지 않는, 지워질 수 없는 사랑이구나.
아이돌과 팬덤. 한때 덕후는'빠순이'라는 멸칭으로 폄훼되었고, 덕심은 철부지 10대 여학생들의 광기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아이돌과 팬의 상호작용은 누가 뭐래도 사랑이다. 우리는 같은 이상을 꿈꾸고 마음 한 켠에 늘 서로의 자리를 남겨 둔다. 이 관계에서 시간은 우리의 추억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거짓말>을 들으면 TV음악방송 무대를 하나하나 녹화하던 2000년의 겨울로, <길>을 들으면 공개방송 현장에 가겠다고 여의도 KBS홀을 하루종일 뛰어다니던 2001년의 겨울로, <하늘색 풍선>을 들으면 잠실 주경기장을 하늘색 물결로 가득 채웠던 2001 드림콘서트 현장으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되니까.
2022년 12월, 2023년 11월 그리고 2024년 9월, 3년 연속 god 콘서트에 다녀왔다. 데뷔 26년 차에 평균 연령 48세인 그룹이 K-POP 아이돌들의 꿈의 무대라 불리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매년 전석 매진 공연을 한다. 게다가 이번 공연 무대는 360도로 트인 원형 구조였다. 작년 유닛 무대에 이어 올해는 개인 솔로 무대가 있었다. 심지어 팬들이 라이브로 듣고 싶어하는, 그간 방송이나 공연에서 잘 보여주지 않았던 앨범의 수록곡까지 불렀다. 하늘색 뽕이 찰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이 연차에(우리 쭈니형은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국민그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아이돌답게 팬덤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티켓은 팔릴 테고, 팬으로서도 히트곡만 불러줘도 감지덕지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이들을 사랑하고 이들도 우리를 사랑한다 확신할 수 있었던 계기는 "완성형이 아닌 성장형 아이돌이 되겠다", "계속 도전하겠다"와 같은, 성실함이 응축된 말들이었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응당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 해내고 싶어진다. 윤계상은 한 방송에서 콘서트를 이렇게 빗대어 표현했다. "내가 행복하면 이 사람들이 행복하고, 이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또 내가 행복해지는, 그런 어떤 세계에 갇히는 것 같다"고. 그렇게 god는 초등학생 팬이 30대 중후반이 된 지금까지 나의 이상(idol)을 지켜주고 있다.
"이건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가 아니야.
완전 새로운 패러다임이야!"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또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해체와 재결합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이 질문의 답이 더는 궁금하지 않다. 우리의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성실하게 존재할 테니까. 성실함은 삶을 살아내게 하니까. 살아 있는 한 이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