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비형 인간

by 주원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안 맞는 우리 부부. 그중 내가 가장 남편에게 힘들어하는 부분은 그의 소비 습관이다. 내 기준에 남편은 물욕의 화신이다. 뭐에 꽂혔다 싶으면 산다. 그것도 제일 좋은 것을 산다. 못 사게 말려봐도 소용이 없다. 하루 종일 틈만 나면 왜 그 물건을 사야 하는지 그 물건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 설명한다. 너무 비싸다 싶어 좀 싼 게 어떠냐 물으면 내용을 좀 바꾼다. 이 물건이 아랫단계 물건에 비해 어떤 점이 좋은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나중에 불만족해서 다시 이 물건을 사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그렇게 되면 발생할 중복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침 튀겨가며 열변한다.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항상 고민은 배송만 늦춘다는 말이다. 참 명언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외식을 해도 남편은 조금씩 넘친다. 음식이 부족해 자신이 못 먹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우 신중히 주문한다. 나는 음식 남는 것을 싫어한다. 부족하면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되니 늘 조금 부족하게 시키려 한다. 살림하는 입장에서 늘 돈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가뜩이나 머릿수도 많은데 음식도 남게 시키면 그게 다 얼마냐 싶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한 번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평일에 배달 한 번 안 시키고, 콩나물 값 따져가며 아낄 수 있는 돈이 한 달에 기껏 5만 원에서 10만 원도 안돼. 이렇게 외식 한 번 하고 나면 다 나가는 돈이야. 내가 그렇게 아끼고 모은 돈을 주말 한 번에 다 쓰는 거 너무 허무하지 않아?"


"그게 왜 허무해. 당신이 평일에 아껴준 덕분에 우리 가족이 주말에 이렇게 외식할 수 있는 건데."


'응?' 생각해 보니 그럴듯하네? 아끼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라니 뭔가 약 오르지만 나름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른바 가성비 인간, 소식형 인간이다. 오죽하면 연애할 때 현 남편은 나를 '소금쟁이'라고 불렀다. 식탐도 물욕도 별로 없고 돈 쓰는 것보다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화장품이나 계절에 따라 바뀌는 옷은 논외로 하자. 그것은 생필품이다.) 그런 내 눈에 남편이 정말 신기하다. 사고 싶은 게 늘 주기적으로 생긴다. 핸드폰을 보며 집중하는 것만 봐도 안다. 비싼 품목일수록 집중도가 높아진다. 엑셀까지 띄워놓고 분석에 들어간다. 나는 쳐다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픈 것을 쳐다보며 신나 하는 남편은 아마 소비형 인간인 것 같다.



6년 전 쌍둥이가 초등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소비형 인간에게 큰 계시가 내렸다. 그는 이제 곧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자각한 후 아이들에게 공부방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엎드려 색종이나 접고 만화책만 보던 아이들이었다.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도화지를 바닥에 놓고 그릴 때, 도화지와 바닥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했다. 물론 벽에 대고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는커녕 책상과 의자에 앉을 일도 없을 게 뻔했다. 하지만 소비형 인간에게 타협은 없었다. 상의인지 싸움인지 모를 몇 번의 대화 끝에 그 (소비형) 인간은 고급 책상과 의자 책장까지 세트로 샀다. 언니들 책상세트를 보고 눈이 돌아간 막내 것까지 정말 거금을 들여 공부방이 만들어졌다. 하루 정도 앉아 학습지 몇 장 풀었을까? 예상대로 책상 세트는 고급 책가방 걸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바닥에 누워 지냈다. 4년 넘게 방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상세트는 헐값에 당근으로 팔려나갔다. (비싸기만 했지 좁은 우리 집에 쓸모가 없는 구성이었다. 책상세트가 방을 차지하는 바람에 그 방에는 거의 들어가지도 않았다.)


소비형 인간의 씀씀이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자면, 절대로 계획 없이 돈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음 달 카드대금까지 확인해 가며 박박 긁어 쓰는 계획적 소비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계획성 소비행태를 비난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나는 매번 같은 패턴의 공격에 당하느냐 이 말이다.


최근에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다시금 공부방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다. 그저 한 두 마디의 말이었지만 소비형 인간의 심금을 울렸나 보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소비형 인간은 다시금 계시를 받은 듯했다. 경건하게 컴퓨터 의자에 착석해 온갖 쇼핑몰을 뒤지며 물건을 검색했다. 이번에는 규모가 더 컸다. 책상세트에 침대까지 추가되는 구성이었다. 얼마 안 가 길고 긴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남편은 내게 함께 가서 물건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당근의 아픔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책상 의자라니! 한숨이 터져 나왔다. 소비형 인간은 그때는 명백히 실수였음을 인정하겠으나 이번은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주문서를 넣지 않겠으니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하라고 했다. 죽어도 독박은 못쓰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얼마 안 가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계획적 소비형 인간의 의지는 강력했고, 신은 이 인간 편이다.


'신이시여. 왜 하필 올해입니까!'


결혼하고 딱 두 번째 받는 남편 성과급이 통장에 입금되었다.


사진 출처: 모두 픽사베이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26화다자녀의 단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