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독인가 약인가
'보여주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말뿐이고 실천은 전혀 없는 '보여주기'식 정치 공약에 지친 사람은, 이 단어를 들으면 부정적인 감정부터 들 것 같다. 선거철에만 반짝 전통시장에 출몰해 서민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는 연기를 하고, 당선이 되면 나 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찬 경험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중요한 발표를 앞둔 신입사원에게는 '보여주기'만큼 무게 있는 단어는 없으리라. 이제 갓 입사해 자신의 업무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첫자리이다. 자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는 한편, 막중한 부담감도 느껴진다. 이들에게 '보여주기'는 회사 내 생존을 위한 필수 능력일 것이다.
지난 몇 달간 '보여주기'에 대한 내 생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우선 '보여주기' 능력치 만렙인 동료의 행동 때문에, 그 단어만 들어도 소름 끼칠 정도로 싫은 감정이 올라온다. 지난 글에도 언급했던 그는, 새로 온 상사에게 딱 붙어 온갖 '보여주기' 스킬을 시전하고 있다(현재 진행형이다). 자신뿐 아니라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고해바치고, 진실 10%와 MSG 90%가 섞인 거짓뿌렁 보고를 일삼는다. 대부분의 보고 내용은, 자신은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남들이 잘 못해서 이 조직이 문제라는 메시지다. 여기에는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그러나 비즈니스에는 꼭 필요한 고객의 불만사항이나 자신이 못한 점은 쏙 빼놓는 것은 기본이다. 하루종일 방문 앞에서 미어캣처럼 상사의 동태를 살피며, 자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탐색한다. 쉬는 시간마다 같이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전화하며, 좋은 사람 흉내를 내기 위해 동료와 친한 모습도 연출한다. 상사의 말에는 무조건 예스를, 동료의 말에는 무시를 일삼는 쇼맨십 가득한 사람이다. 이런 식의 보여주기를 상사는 왜 도대체 눈치채지 못하고,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까.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이 던진 의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그의 추가 면접관으로 들어갔을 때 나 역시 그가 좋게 보였기 때문에 할 말이 없어진다. 화상회의로 진행된 면접에서, 그는 나에게 링크드인 일촌 신청을 해서 잘 알고 있다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와 화법으로 어필했다. 그의 면접 답변을 들어보니, 전략적인 사고를 잘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는, 서글서글하고 업무 능력도 좋은 한 명의 인재로 보일 뿐이다.
사실 그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보여주기보다는 내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줄곧 믿는 사람이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일하지 말고,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라며 팀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성과였더라도, 만약 그 과정에서 잘못한 점이 있었다면 그건 잘한 일이 아니라고 꾸짖었다. 내가 그런 성향의 팀원들만 뽑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들 보여주기보다는 일을 어떻게 더 잘할지에 집중했다. 가끔 이런 내 성향을 잘 아는 팀원들이, 우리도 보여주기라는 걸 해야 된다고 설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안으로 파고들어 일의 완벽만을 추구했을 것 같다. 지난달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콘셉트로 진행한 콘퍼런스가 있었는데, 우리 팀이 엄청나게 노력해 좋은 성과를 냈다. 그중에 한국이 가장 잘 해냈고, 아시아뿐 아니라 여러 글로벌 리더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보여주기에 취약한 나는, 인트라넷에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사실도 까먹고 다른 업무를 하기 바빴다. 팀원들이 글과 사진을 정리해 직접 포스팅하지 않았더라면, 이 성과도 다른 나라의 동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리라. 이에 대해서도 나는, 우리 팀이 잘 한 걸 직접 눈으로 보고 갔는데, 굳이 그걸 시간 아깝게 정리해서 다른 나라에 알릴 필요가 있나 싶기는 했다. 나에게 보여주기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업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최근 조직의 연말 평가 회의에 참석하며, '보여주기'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팀장들이 각자 자신의 팀원이 얼마나 잘했는지를 설명하고, 그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숫자로 딱딱 떨어지는 명료한 결과가 있는 영업팀들과는 다르게, 우리 팀은 잘한 것을 증명할 방법이 많지 않았다. 나름 철저하게 그동안 잘해왔던 업무에 대한 증빙 자료를 준비해 보여주며 설명했지만,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평소에 '보여주기'를 잘했더라면, 주어진 이 시간에 이토록 어렵게 증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열심히 일만 했지, 평소 보여주기에 소홀했던 나를 반성했다. 비단 상사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하는 자리였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성과에 대한 인정은, 정량적인 방법뿐 아니라, 정성적인 노력으로도 얻어질 수 있었다. 회사 생활에는, 능력과 성과를 진정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꼭 '보여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팀원들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보여주기'라는 단어는, 원래부터 그렇게 부정적인 뜻만을 가진 단어가 아니었다.
결국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게 행동하는 '표면적 보여주기'만 지양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싫어한다고 믿었던 보여주기는, 바로 이 표면적 보여주기였다. 그러나 나는 단어 뜻을 잘못 해석해해, 모든 보여주기에 부정적 의미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직원들의 성과를 진정으로 증명하기 위한 '진정한 보여주기'는 앞의 보여주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구별하지 못했다. 이 두 가지는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그 동기와 결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첫 번째 보여주기의 동기는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라면, 두 번째는 내가 했던 일과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첫 번째를 잘못하면 손가락질받지만, 두 번째를 잘못하면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일한 만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무튼, 나는 오늘 이 두 번째를 입증할 무언가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할 것이다. 이제라도 깨달아 다행이다 싶다가도, 이걸 직장생활 17년 동안 몰랐다는 미련함이 참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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