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또 주변에 좋아지는 일이 생기더라고
제목에 적은 문장, 듣는 순간 그저 무조건 믿고 싶어 졌던 이 문장은 내가 한 말은 아니다. 광국 씨의 이야기다.
2018년 봄쯤이었던 것 같다. 신혼 시절에 남편이 인간극장 제주 부부 편을 같이 보자고 제안했고, 당시에 나는 '와~ 제주도에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하며 그저 재미있게만 봤었다. 제주도는 유년 시절부터 자주 가서 참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매년 한 번 씩은 꼭 가고 많을 땐 두세 번도 갔었다. 임신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아직 한 번도 못 갔다. 나중에 아이와 함께 다닐 곳들을 상상하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나는 그간 여러 글에서 쓴 것처럼 최근 2~3년 사이 삶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스스로를 잘 알게 되고, 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삶이나 일을 바라보는 태도도 점차 바뀌게 되었다. 일부러 바꾸려고 한 것이 아니라 놓인 상황과 여러 일들을 겪어 오면서 서서히 변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물론 지금도 조금씩 바뀌어가는 중이고. 점진적으로 변했지만 변한 결과만을 놓고 보면 극적으로 꽤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인간극장 제주 부부 편을 다시 보게 됐을 때, 와 예전에 처음 볼 때와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너무 달랐다. 일단 그때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연두가 그저 귀엽기만 했는데(아이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 이 생각마저도 그저 한두 번), 이제 보니 그 아기는 어떤 상황에서든 너무 잘 자고 있다(!!). 믹서기 돌리는 소리 등 이런저런 작은 소란 속에서도 아이는 끄덕 없이 항상 잘 자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로 귀여웠다.
더불어 처음 볼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이 부부의 육아방식이나 육아 태도가 눈에 들어왔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는구나, 아이도 마음이 편안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산으로 인한 응급수술에 코로나(완전 초기라 실체를 몰라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까지 겹쳐서 상당한 긴장감 속에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기를 돌봤었다.
첫 아이의 신생아 시절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라도 평소의 자신보다는 더 긴장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한층 더 긴장 속에 아이를 돌봤었다. 그랬던 시절을 떠올리니, 이 제주 부부는 참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고 있는 나의 마음도 편해지고, 이제는 모든 것이 한 차례 폭풍처럼 지나가고 난 이후이니 그래도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돌보자하는 생각도 들고. 뭐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광국 씨의 얘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귀에 들려왔는데 정확하게는 귀에 꽂히는 것이었다. 처음 볼 당시의 나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빴고, 막연한 무언가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에 늘 쫓기고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나 자신에 대해서 지금처럼은 잘 몰랐고. 회사에서 보내는 하루하루에 매일 긴장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소모되고 잊히고 있는지 모른 채 그 역할에 상당히 몰입해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고집스레 꽉 차 있어서 다른 관점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던.
퇴사 이후(휴직과 퇴사, 그 이후 생각의 변화에 대한 흐름은 나의 다른 글들에 담겨있다)에 이 영상들을 보게 되니 그의 얘기가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이상주의나 그저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야 좋겠지,하는 속 편한 남의 얘기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으로 공감이 갔다. 이미 나도 모르게 어딘가 겹쳐지는 마인드로 살고 있는 부분들도 발견되었다. 처음 볼 때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다. 광국 씨는 어떤 면에서 선각자 비스무레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2010년에 벌써 저런 생각을 하고 적극적으로 삶의 궤도를 수정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인간극장 특유의 소박한 에피소드들, 그들의 작은 삶, 제목대로 날마다 소풍 같은 삶을 보면서 사실 지금 내가 꿈꾸는 삶의 결도 큰 틀에서는 비슷한 곳을 향하고 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디테일이야 당연히 다르겠지만. 다행히 남편도 삶에 대해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적당히 소유하고 가족과 함께 내밀하게 '많이 누리는' 삶. 높은 생활 수준보다는 삶의 질을 택하는 삶. 가족 구성원 모두가 보다 나 자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기꺼이 응원하는 삶.
그러다 광국-정은 씨 부부가 유튜브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남편은 바로 구독을 눌렀다. 두 부부는 여전히 제주에 살고 있고 100일 아가였던 연두는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 자그마한 것들을 한 화면 가득 크게 담아내는 줄 아는 시선, 빠른 편집과 강한 필터로 눈길로 사로잡기보다는 잠시 멈춘듯한 느린 장면과 편안한 색감의 화면이 참 좋았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 역시 가만히 들리게 하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집에서 티비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닌데 남편과 술 한잔 하며 TV멍을 때리고 싶은 밤에는 이 영상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틀어 놓기도 한다. 그러다 “이런저런 두런두런” 에피소드(대략 3개쯤 올라와 있는 것 같다)를 발견했는데 와 이게 정말 보물 같은 것이다. 광국 씨와 정은 씨의 대화가 중심이고, 주로 광국 씨가 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광국 씨는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통찰력이 있다. 불안이나 자존감 등에 관한 그만의 관점과 사고방식은 내게 여러 생각을 해보게 했다.
제목에 적은 '말'은 약 1년 전쯤의 이 이런저런 두런두런 에피소드들 중에서 나온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살면 그게(그 영향으로) 또 주변에 좋아지는 일이 생기더라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살아본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나만' 좋아하는 것, 내게만 좋은 것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래도 되나 싶을 때가 있다.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알아가는 게 지금의 과제(어쩌면 그걸 알아가고 있는 과정 자체가 현재의 내가 좋아하는 일 일수도 있고)라서 그걸 '실행'하는 것 까지는 나아가진 못한 단계이긴 하지만 한편에 이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면, 그걸 마음껏 해도 되는 걸까? 진짜로 괜찮은 걸까?라는. 그래서 저 문장이 더 믿고 싶어 졌는지도 모른다.
(* 어떤 대화에서 한 문장만을 발췌할 경우, 전체적인 맥락을 듣지 않고서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저 문장도 딱 말 자체만 보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물음표가 생긴다면, 아로와. 아로와나. 두에서 영상을 찾아보면 내가 옮겨 쓴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될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라는 건 절대 손에 닿을 수 없는 성역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찾고 이를 ‘마음껏 하는’ 삶을 살다 보면 나의 행복하고 즐거운 기운이 주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광국 씨는 경험 혹은 직관에 근거하여하는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이는 그간 독서해 온 책들에도 자주 등장하는 얘기였다.
특히 이 생각이 배우자인 정은 씨와 자녀인 연두를 향한 것이기도 한 부분이 참 좋았다. 배우자에게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거, 이게 쉬운 일만은 아님을 안다. 그럴 수 있는 여지를 서로에게 충분히 주는 삶을 살고 싶다. 아이에게야 두 말할 것도 없고.
연두네는 그때도 지금도 말한다.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노는 건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자신에 대한 감각을 찾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날마다 소풍 같은 삶. 인생이 어찌 매일 소풍 같을 수야 있겠냐만은, 한 번뿐인 인생 소풍 나온 마음으로 사는 건 적어도 내게는 아주 솔깃한 생각이다.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더 찾을 아이디어를 발휘해 보려고 한다. 오늘 하루를 마감하며 나도 조용히 끄적여본다. 오늘 하루도 자알 놀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