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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살롱 Feb 07. 2019

우울에도 에너지가 있다

절망이라는 힘으로 마흔에 작가가 된 사람들

최근 회사를 관두고 떠난 휴양지에서 마신 모닝 맥주. 구름에 해는 가렸지만 이 여행에서 큰 동력을 얻었다.


여자에게 점은 뭘까? 우울은 뭘까? 

지난가을쯤 점을 보러 갔다.

“본인은 우울이 좀 있는 별자리예요. 그런데 그걸 발전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요. ‘우울아, 너 왔니? 그래 이번엔 한 달짜리니? 같이 놀아보자. 이렇게. 고흐나 헤밍웨이처럼. 예술을 하는 거야. 글을 쓰는 거야.”

‘그 사람들 다 자살했잖아요…’라고 속으로만 답했다.

점성술사는 왠지 더 신이 나서 “난 우울할 때 블로그에 별자리 운세 글을 써요. 그걸로 책을 낼 수 있을까?”라고 존댓말 반말 섞어가며 물었다.

‘이 양반 외로웠네. 지금 누가 누굴 상담?’


이 얘기를 듣고 3개월 뒤인 지금, 이렇게 뭐라도 끄적이는 걸 보니 왠지 저 점은 맞는 셈인가? 이곳은 다른 광고회사에서 한 차례 입소문을 탄 뒤, 팀 동료의 검증도 마친 곳이었다. 복채는 7만 원으로 다른 곳에 비하면 비싼 편(일반적으로 일하는 여자들이 답답해서 찾아가는 점집은 1시간 남짓에 5만 원 선). 그래도 납득할 만한 것이, 역술가, 점성술사가 정신과 의사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7만 원이란 딱 정신과 1회 상담료와 비슷한 금액이다.

종종 듣던 말이긴 했지만, ‘아 이제 정말 피할 곳이 없나? 쓰긴 써야 하나? 써야지만 이 복잡한 마음이 풀리는 건가?’ 하는 느낌이었다. 당시엔 곧 있을 회사 조직개편과 관련해 답답한 마음에 물으러 간 것이었으나, 벌써 연초부터 농담처럼 “마흔 병이 왔어.”라고 말하고 다니던 참이었다. 한 시간 반이나 듣고도 시원하다기보다는 숙제 검사받은 기분이 들었다. “왜 숙제 안 하니?”라고 혼난 느낌.

비슷한 상황이 한번 더 있었다. 일하던 잡지가 느닷없이 폐간하고, 원치 않는 계열사로의 인사발령을 기다리고 있던 병아리 기자 시절. 그때도 블로그에 끄적여놨다. 거창하다.


“타의에 의한 변화는 두렵고, 베스트는 아니었어도 평화로웠던 이전의 상황으로 돌리고 싶다. 해피 엔딩 따위 기대할 수도 없고, 이 거대한 토네이도가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

그러고는 회사가 망해서 작가가 된 사례를 덧붙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백 년 동안의 고독>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젊은 시절 <관객>이라는 신문의 특파원으로 로마에 나갔다. '콜롬비아 데일리'라는 지역신문의 기자였던 이전의 커리어로 보면 괜찮은 진로였다. 그런데 나가자마자 신문은 폐간을 했고 그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할 일이 없어진 그는 소설을 썼고 이때 쓴 작품의 히트로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마루야마 겐지는 스물두 살에 취직한 통신 회사가 부도가 난 상태에서 데뷔작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수상자가 둘이라 '혹시 상금이 반인 거 아니야?' 소심한 걱정을 하며 시상식장에 간 그. 다행히 상금이 온전히 한몫이라 안심을 하고는 그 돈으로 빚을 갚고 회사로 돌아가 야근을 했다. 그리고는 한 작품쯤 더 써도 되지 않을까 싶어 집에 와서 다음 작품을 썼다.”


인생은 독고다이 롱스테이

고독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호락호락하지 않게 생기셨다.

마루야마 겐지 이야기를 더 해본다면 그는 재미있는 작가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에서는 낭만만 가지고 귀농,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의 귓방망이를 때린다.

“외로움 피하려다 골병든다, 자원봉사하기 전에 자기 자신 먼저 도우라, 시골사람들은 윗사람이라면 껌뻑 죽는다, 시골은 범죄자가 많으니 날카로운 창을 준비해두라” 식의 실질적인 조언을 해준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더하다. “태어나보니 지옥이다, 부모를 버려라, 국가는 적이다” 같은 도발적인 메시지가 가득하다. 한 마디로 세계관 자체가 모던하다고 해야 할지, ‘독고다이’라고 해야 할지. 어찌 됐든 5, 6년 전쯤 나온 그의 산문집 내용이 요즘의 대한민국 정서와 맞닿는 부분이 많다(그즈음 일본도 우리나라 제주도 이주 열풍처럼 젊은이들의 오키나와 이주가 유행이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자립’이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는데 모처럼 생명을 갖고 세상에 왔으니
전부 보고 죽는 게 좋지 않은가


이거다. 단, 처음부터 기대는 하지 말고. ‘아무리 비참한 일이 일어나도 즐겨 주겠어’라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인터뷰에서 강조, 또 강조한다. 아, 역시 ‘고독의 작가’ 마루야마 작가님! 덧붙여서 “절체절명(絶體絶命)·고립무원(孤立無援)·사면초가(四面楚歌) 등의 궁지에 삶의 핵심이 숨어 있다. 그 안에서 몸부림치는 자신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자립한 인간이다.”라고 캡사이신 팍팍 뿌려 이야기했다. 현재 75세인 그는 이런 인생관으로 100여 권의 책을 썼다. 계속 쓰고 있다.


긍정만 힘이 있나, 부정(否定)에도 힘이 있다

인생에 달달한 거품 따위 없다는 마루야마 겐지에게 마흔은 어떤 나이였을까. 남들보다 서 너 개 부족한 것이 재능이고 그 결핍을 메우려는 분투에서 무엇인가가 된다고 말했던 그이지만 마흔에는 드디어 스스로를 인정했다. 작가가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아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방황하다 마흔 살쯤 단편을 하나 썼는데 초고는 쓰레기로 보였다. 그런데 일곱 번쯤 고쳐 썼더니 제법 괜찮은 작품이 되더라나. 그제야 자신에게 잠재된 문학적 능력을 인정하게 됐다는 ‘작가들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 물론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부정해서 만족할 때까지 업그레이드한 결과겠다.


남미 사람 특유의 낙천적인 미소가 먼저 보이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실직이 만든 또다른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도 마흔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콜롬비아, 프랑스, 멕시코의 잡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계속 내며 연재하던 글을 모아, 마흔에 낸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독재정권은 그의 지면을 빼앗고, 콜롬비아의 언론이라는 직업적 토대 자체를 없앴지만, 결국 개인으로서는 활동무대를 넓히고 평생의 직업을 얻었다. 그리고 2014년 87세로 타계할 때까지 뜨거운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두 작가는 공통적으로 평생 현역이고 현역이었다. 50여 년 이상 늘 '쓰는 삶'을 계속했다. 인생의 전환기, 마흔을 맞는 마음의 자세?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우울과 불안.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없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자고 일어나면 싸운 적 없이 진 기분이 들고, 하루하루 초라해지는 기분이 든다(나만 그랬을까?). 사실 마흔쯤 되면 점도 볼 필요가 없다. 이제까지 들어왔던 그 조언들, 그 모두를 실행만 하면 된다. 그걸 발전적으로 이용하라고 나 역시 점성술사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은 어차피 ‘독고다이’니까 아무리 비참해도 즐기자고 마루야마 겐지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혼자 겪는 고난은 지옥 같지만 같이 겪는 고생은 그래도 어드벤처 게임 같다며 서로 깔깔댈 수 있으니까.

인생을 보는 눈이 놀랍도록 차가워서 역설적으로 따뜻한 이 말을 나도 하고 싶다. 나와 우리에게. 인생은 독고다이 롱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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