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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망 Dec 17. 2019

비자 연장, 성공적

학생비자 연장 받고 온 날

" 언니, 축하주 한 잔 해. "


처음 독일에 올 때는 무비자였다. 무모하기도 해라, 여기에서 어학비자를 받을 확신도 자신도 없던 나는 무작정 독일에 입국하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90일 무비자 날이 끝나기 전에 미리 서류를 준비해서 어학비자 신청을 하러 갔더니 슈페어콘토를 만들어 오라더라. 당시 슈페어콘토 1년 기준 금액이었던 8700여 유로(정확히는 8670유로였던 것 같다)가 말이 쉽지, 천만원 목돈을 단숨에 뚝딱 준비하기에는 엄마 아빠에게 등록금 없는 독일에 가서 최소비용으로 공부를 더 하고 오마고 큰소리 떵떵 친 내가 멍청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친구들 다 경제적 독립을 하나 둘 이루는 마당에 공부 더 하겠다고 의견을 낸 것도 모자라 생활비로 일년에 천만원을 웃도는 돈을 요구하는 건 생각보다 많이 미안하고 힘든 일이었다. 다행히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부모님 덕택에 별 어려움 없이 슈페어콘토를 준비하긴 했지만 다달이 빠지는 슈페어콘토 수수료도 아깝고, 무엇보다 목돈을 일년 단위로 묶어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어서... 비자 준비는 나에게 학업을 제외하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물론 독일에서 유학하시는 모든 분들께, 그리고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똑같이 스트레스일 것이다. 




무비자에서 픽치온을 받고 슈페어콘토를 만들고 여차저차 우니에서 DSH 준비반 입학허가를 받고 1년치 비자를 다시 받고... 2019년, 그러니까 올해 3월에서야 나는 제대로 된 비자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한은 2020년 1월까지여서 미리 연장신청을 받기로 했다. 2월 중순에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그 전에 비자 문제가 끝나지 않으면 머리 아플 일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학생 비자 연장을 위해 미리 암트에 들렸다.


비자를 받기 위해 준비해 간 서류들 - 집에 있는 종이란 종이는 다 챙겨가세요! 


이넨슈타트로 이사한 뒤 담당 Ausländerbehörde가 당연히 바뀌었기에 Innenstadt로 갔다. 룸메이트 H가 지지난 주에 다녀와서 똑같이 서류를 준비했고 여권용 사진은 직접 찍어서 포토샵으로 손을 좀 본 뒤 가지고 갔다. H가 받을 때는 굉장히 친절하고 깔끔한 사람이었으며, 슈페어콘토를 따로 준비하진 않았으나 적당한 금액의 Kontoauszug과 증명서들을 미리 챙겨갔더니 모든 게 잘 준비되었다며 비자를 2년 연장해주었었다. 나도 그런 행운을 바라며 아침부터 일어나 부랴부랴 암트로 향했다. 독일의 겨울은 아주 어두워서 8시가 되어도 요즘은 해가 뜨지 않는다. 8시 30분이 지나면 슬슬 밝아지고 오후 4-5시경 다시 어두워지는, 밤이 아주아주 긴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아무튼 내가 도착했을 땐 7시 45분경이었고, 4층의 외국인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스무 명 이상이 내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원래는 제일 처음 온 사람부터 Wartenummer를 담당자가 배부해주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각자 알아서 기계에서 뽑아가는 식이었다. 내가 받은 건 19번. H와 같은 방이 걸리길 내심 기대하며 왔으나 그 방에는 애초에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이런, urlaub인가 보다. 


그렇게 일찍 갔건만... 19번이 어디야


8시 정각에 EG의 건물 문을 열어주는데 올라가서 Wartenummer를 뽑는데도 꽤나 걸렸고 줄이 길어서 19번을 받았다. 한 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정말 운에 달렸다는 거다. 먼저 온 사람도 줄이 꼬이면 뒤로 밀릴 수 있는 게 이 곳의 섭리...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8시경 대기번호를 뽑고 바로 커피를 한 잔 하러 근처 카페로 나갔다. 여권사진도 뽑아가야 했고. 며칠간 넷플릭스로 인크레더블 1, 2와 뮬란, 라따뚜이, 몬스터 호텔 1, 2 그리고 디즈니의 마법에 빠진 공주까지 보느라 새벽 3시- 4시에 잠들곤 했어서 아침 8시는 나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 크로와상 하나, 그리고 도와준 당신에게 코코아를.


필터커피를 한 잔 마시니 그제야 정신이 좀 들면서 괜찮아지더라. DM이 여는 9시까지 커피 한 잔과 크로와상으로 잠을 좀 쫓아낸 뒤 들어갔는데도 번호는 아직 9번대였고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10시 40분경 19번이 떴고 나는 드디어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들어간 방은 Chefin의 방이었다. 내가 비자를 연장하러 왔다니까 서류를 먼저 보자고 한 뒤 옆 방의 베암틴에게 가서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준비되었고 있을 게 다 있다면서 체크를 해 주더라. 이 때 나는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꼼짝없이 슈페어콘토를 또 만들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준비해야 할 것들을 미리 다 해 가고 Antrag도 심지어 미리 작성해 간 보람이 있었던 걸까, 나는 바로 옆 사무실로 안내되어 비자 연장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남은 비자 (1월 말) 기간 내에 카드 수령을 못 할 경우를 대비한 Fiktionsbescheinigung


무사히 연장을 마치고 - 중간에 왜 Meldebestätigung을 가지고 오지 않았냐는 질타를 받긴 했으나... 이건 확실히 케바케인 것 같다. H는 아예 멜데베슈태티궁을 보지도 않았었다. 물론 안 가지고 간 건 내 불찰이 맞다 - 받은 날짜는 내 여권이 만료되는 날짜까지의 비자였다. 여권 만료까지 2년 반이 남았으니 아주 넉넉하게도 준 편이다. 정말 행복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걱정의 80퍼센트는 날아간 것 같아 정말정말 행복하다. 이제 비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필요 없이 석사 생활에 집중하면 될 것 같다. 




한 숨 돌리고 돌아보니 큰 산을 꽤 많이 넘었다. 좋은 위치의 집으로 이사하고, 움멜덴을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자 신청까지 - 사실 학업에 관한 글을 쓰라면 밤을 며칠 꼬박 새도 모자라다. 학교 돌아가는 시스템이나, 우리 학과의 장단점 그리고 내가 지금 듣는 수업에 대한 리뷰... 또 나 스스로에 대한 고찰까지. 다만 지금 다행인 것은 향후 학업기간 중에는 비자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목표로 한 4학기 이내 모든 수업 이수, 시험 통과 그리고 5학기째에 마스터아르바이트 끝내기를 꼭, 꼭, 꼭 완료했으면 좋겠다. 


비자를 받았다는 소식을 알리기가 무섭게 이곳 친구들은 축하주를 한 잔 하자며 바쁜 하루 일과 중에도 기꺼이 나를 방문해주고 축하해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와인 몇 병을 사들고 와서 언제나와 같지만 오늘이 처음인 저녁식사를 하면서 항상 비슷하나 늘 새로운 대화를 하고 한 층 더 깊어지는 우리가 나는 좋다. 내가 잘 풀리고 잘 해냄에 누군가 이렇게 기뻐해주고 힘을 얹어주는 것은 정말 얼마나 큰 행운인지 이 곳 독일에서 절실히 느끼는 중이다. 축하할 일이라기엔 너무도 사소하지만 그토록 얻기 힘든 기쁨이고 성취했을 때 이렇게나 유난스러울 수 있는 비자. 그를 핑계로 잘 안 하던 와인을 몇 잔이고 마시고, 요즘 가라앉아 있던 기분을 조금이나마 들어올릴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제 남은 건 감사하게도 2주 - 나에게는 거의 3주 - 동안의 크리스마스 방학과 에세이 제출, 시험 하나, 그리고 종강 - 한국행이다! 물론 한국에 가서는 전공필수 소논문을 써서 제출해야 하지만... 나의 소중한 독일에서의 하루가 또 저물어 간다. 바람은 차갑고 날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흐린 하늘만 가득한 겨울이지만 그 속에서 쾰른을 찾고 나를 찾아 보람찬 나날이다. 내일은 아침 10시에 프랑스어 수업이 있다. 미뤄둔 숙제를 후다닥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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