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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망 Dec 10. 2019

크리스마스 카드

왜 저렇게 유난이래?

크리스마스 마켓이 문을 열었다. 


11월의 마지막 주부터 노이막, 호이막을 비롯해 쾰른의 곳곳에 한껏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 마켓들이 눈에 들어오니 든 생각은 '벌써...'였다. 벌써 크리스마스 마켓을 여는 - 당시 11월 말 - 독일인들의 정성과 기대감이 새삼스러웠고, 또 벌써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이곳에서 맞이하는 게 놀라웠다. 우중충한 날씨와 반대되는 예쁜 조명과 따스함에 겨울왕국 2를 본 날 바로 마켓에 달려가서 글뤼바인을 한 잔 했다. 올해의 컵도 예뻐서 소장 욕구가 솟구쳤다. 엄마가 2014년에 레겐스부르크 마켓에서 사간 컵을 아직까지도 예쁘다며 잘 쓰고 있는 게 떠올라서, 제일 예쁜 컵 두어 개를 사서 한국을 방문할 때 들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Weihnachtsmarkt am Rudolfplatz - Nikolausdorf 


크리스마스 마켓뿐만 아니라 일반 서점이나 노점상에서도 예쁜 올해의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내놓고 팔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엽서를 보내는 독일 사람들의 아날로그 감성에 유난스럽다 싶다가 올해는 내가 그 감성에 동참하기로 했다. 물론 예수님의 탄생일을 축하할 만한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니고 나와 12월 25일이 가지는 접점이라곤 우리 가족 구성원 중 한 분의 생일이라는 것 정도... 하하. 그냥, 그걸 핑계로라도 먼 곳에서 가족들에게 남아 있고 싶었다.


가장 큰 서점에 가서 크리스마스 카드 코너에서 20분 정도를 보낸 것 같다. 엄마 아빠에게만 보내려 했는데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 여러 개를 사버렸다. 이건 동생네, 이건 오빠네, 이건 삼촌네... 어째 독일 사람들보다 더 유난스러운 나를 지켜보던 룸메이트 H도 어느샌가 이게 더 예쁘네 저건 별로네 하더니 자기 부모님 드릴 카드를 골라달라며 도움을 청한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카드를 고르고 나니 우리 둘은 참 다른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H는 조그맣게 메모만 적어서 보낼 수 있는 정사각형의 반짝이 팝업카드를 샀고, 나는 글을 쓸 공간이 많은 평평한 카드를 샀다. 팝업카드를 하나 사긴 했는데 그건 개구쟁이 초글링 사촌동생을 위한 거라서- 어른들에게는 새삼스레 오글거릴 멘트를 가득 채울 심산이었다. 


그런 말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멘붕이라는 말이 생긴 이후로 내 멘탈은 더욱 가루가 되기 쉬워졌고 오글거린다는 말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졌다고. 전자는 원래 쿠크다스였으므로 그냥 그런가보다, 아닐 수도 있지 하면서 보았는데 후자는 문득 깊이 공감되는 말이었어서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진지하게 댓글을 쓰면 오그라든다, 감성충이다 등의 반응이 객관적인 ㅋㅋㅋㅋㅋㅋ로 도배되며 공감받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머뭇거리게 된 요즘. 시간을 내어 오그라들더라도 다같이 오그라들어 보자고 한참을 고심해 고른 카드들을 열어서, 펜을 들고 달려들어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했다. 


Neumarkt Schildergasse의 Apple Store 와 거대한 트리


이번 주에는 이 카드들을 보내야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 해서 한국에 잘 도착할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우편/배송 물류가 최고조로 혼잡해지는 시기이니 말이다. 카카오톡 하나면 목소리도, 얼굴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독일을 핑계로-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오랜만에 내가 눌러 쓴 카드를 보내보려 한다. 엄마아빠에게 쓰는 건 수능 날 이후로 또 처음인 것 같아서 조금 설레기도 한다. 엄마가 수능 치고 온 나한테 편지 뭐 그런 걸 놔두고 가냐고 툴툴거렸던 게 갱상도에서 나고 자란 아지매의 '잘 받았다'는 표현임을 깨달은 건 얼마 전이다. 이번에 독일행 비행기를 타기 전 어떤 대화 끝에 아직도 가끔 그 편지를 보면서 그 때의 나를 떠올리곤 한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 편지를 괜히 썼다며 몇 년동안이나 묵혀두고 서운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녹아내린 기억이 난다. 


오그라들고 흑역사가 될지라도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 그래서 나는 유난인 그들 속에서 더욱이 유난을 떨어볼 예정이다. 그래서 이렇게 유난을 떠는 걸 유난스럽게 기록해두는 거다. 독일이 아니고 한국이었다면 그냥 하루쯤 쉬고 가는 빨간 날로 보내버렸겠지.


왜 저렇게 유난이래? 독일이니까, 크리스마스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 2019년 12월 10일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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