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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Aug 25. 2023

알잖아, 우리 아들 당신이 많이 필요한 아인 거...

전업주부 종료선언


"나는 이제 '나'를 찾기로 했어"


나는 사표를 냈다. 10년 차 전업주부를 그만하기로 한 것이다. 남편에게 '나'를 찾아 나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 남편반응은 예상한 대로 시원치 않다. 나는 진지하게 얘기 중인데 남편 시선은 핸드폰으로 향해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고는 있는 것일까. 열심히 내뱉는 나의 말들은 힘없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이내 날 선 아내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남편은 고개를 든다. 멋쩍은 듯 '씨익' 웃더니 내 눈치를 살핀다.


"왜 그래 갑자기"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어. 너무 마음이 힘들어. 애도 많이 컸고, 나한테 좀 집중하고 싶어."


"일을 하겠다는 소리야?"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일도 하고 싶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어."


"좀 있으면 애도 초등학교 입학 할 텐데 현실적으로 힘들잖아. 도와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아. 그래서 당장 취업하겠다는 게 아니라 뭔가 내 길을 찾아보겠다는 거야."


"알잖아, 우리 아들 당신이 많이 필요한 아인 거... 왜 그래 요즘. 여행이라도 갈까. 당신 생각은 존중하는 데 애가 좀 더 크면 일을 다시 해보든가 하는 게 어때."


아들이야기가 나오니 말문이 막혔다. 좀 전까지 호기롭게 '전업주부 종료선언'을 했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아 그렇지, 아직 내 아들은 내가 많이 필요하지...'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틱장애'를 지니고 있다. 기질적으로 예민하긴 했어도 별 탈 없이 자랐었는 데 6세 무렵부터 시작된 '틱'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엄마와의 분리불안도 심하다.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지만 여전히 유치원 등원길에 눈물을 훔치는 아이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쩌지. 어제도 엄마생각이 나서 울었어. 오늘 1등으로 나 데리러 와야 해."


아침 등원길마다 듣는 아들의 '단골 대사'다. 다행히도 유치원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잘 지낸다고 한다. 유치원은 꼭 다녀야 하는 곳이라고 인식은 하는 것 같은 데 학원은 '예외'다. 잘 다니던 태권도도 3개월을 못 채우고 그만뒀다. 이유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애가 금방 끈기가 없어지는 것도 같고, 강하게 키우고 싶어 태권도는 계속 보내려고 했는 데 실패했다. 억지로 보내다 보니 '틱'이 급속도로 심해진 거다.


"엄마, 나 이제 태권도 진짜 안 다녀? 그럼 나 유치원 끝나면 엄마랑 노는 거야? 그럼 같이 놀이터도 더 많이 가고 하겠네. 신난다. 엄마 나 너무 행복해."


태권도를 그만두던 날, 너무나도 행복하게 웃던 아이의 모습이 조금은 슬펐다. '아이고, 우리 아들 아직도 엄마바라기구나.'


살던 동네에서도 떠나 새로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까. 나의 아이는 새로운 유치원, 새로운 친구들과 적응하는 데,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어른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긴장을 하니 애들은 어떠할까.


남편이 아이의 불안정한 상태를 다시금 인지 시켜줬고, 우리 가족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꼬집었을 때 할 말이 없었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를 두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칼퇴를 하는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야근은 필수고 때로는 주말근무도 하는 직장만 다녀왔다. 도우미를 구하자니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가 견뎌낼 리 만무하다. 내년이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까지 한다. 워킹맘들이 가장 퇴사나 육아휴직을 많이 한다는 초등학교 입학을 두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워졌다. 갑자기 내가 전업주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봇물 터지게 나왔다.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당장 직장생활을 할 계획은 아니었지만, '일'이야말로 나를 찾는 과정에서 필수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케어하는 일도 무엇보다 값진 일이란 것도 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하루라도 빨리 가사노동이 이 아닌 '나만의 밥벌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해진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일을 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게 때문이다. 그런 행위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현모양처'를 꿈꿨던 시절은 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댔다. 한 번 생긴 욕망은 절대 그냥 혼자 소멸하지 않는다.


나를 찾아 나선다고 선언한 지 하루 만에 큰 장벽을 만났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인생을 다 갈아 넣어 아들이 행복하기만 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행복은 뒤로 한 채 가족만 위해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 건 내 오만이었다.


과연 '나의 전업주부 탈출기'는 성공적으로 끝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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