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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Aug 25. 2023

이렇게는 못 살겠다

엄마의 욕망

'이렇게는 못 살겠다'


열심히 문지르던 막대걸레를 내려놓았다. 아침 일찍 아이 유치원 등원을 끝내고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던 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청소를 끝낸 후, 광이 나는 우리 집 거실을 보며 흡족해했으리라. 평소와 다르게 한숨만 가득했던 그날, 나의 주부생활에 위기가 찾아온 것을 직감했다.


나는 현재 결혼 10년 차 전업주부, 7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내 삶에 정작 '나'는 없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아이가 제법커서 시간이 많아져서일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도 여유가 생겼다. 남편은 열심히 일한 덕에 직장에서도 안정을 찾았다. 우리 가족은 얼마 전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해 생애 첫 자가도 마련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는 데 나의 욕구불만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질투와 불안인 걸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빛나게 성장하고 친구들이 최고가 되고 있다. 언젠가 내 품을 떠날 거라는 신호가 분명하게 온다. 남편은 승진도 빠르게 하고, 월급도 늘었고 탄탄대로다. 원만한 성격덕에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주변에 찾는 사람이 많다. 반면 나는 어떤가. 내 세상에는 가족이 전부다. 아내, 엄마 외에 나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손만 뻗으면 넘쳐나던 친구들은 온데간데없다. 이제 거의 랜선친구가 되어버린 이들은 나와 같이 본인 가정 챙기기에 바쁘거나, 미혼인 친구들은 직장 생활하며 그렇게 다들 골프를 친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너랑 결혼해서 정말 다행이야. 너처럼 알뜰한 여자랑 결혼해서 이렇게 내 집 장만도 빨리한 것 같아. 네 덕분에 내가 편하게 사회생활도 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거야.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여보."


새 집, 새 식탁에서 아내가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은 기분이 꽤 좋았던 것 같다. 흡족해하며 립서비스를 날리는 남편이 이상하게 얄미웠다. 평소 같으면 참 고마웠을 텐데 말이다.


나는 워낙 가족을 챙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남편은 직장생활 외에는 전혀 신경 쓰게 하지 않았다. 은행업무, 보험청구, 가구조립, 운전 등 온갖 잡스러운 일상의 숙제들은 내가 대리해 주고 있었다. 바깥에서 힘들 게 일하는 사람이니 집에서는 편히 쉬게 하고 싶었다. 남편들이 흔히 하는 분리수거마저도 내가 했다. 그게 좋았다. 내 몫이라 생각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충성심 과한 비서가 따로 없었다.


남편이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라고 하는 데 울화가 치밀었다. 천하태평한 남편에게 화가 났다. 내 속에 이미 욕망의 태풍이 불어온 상태였기 때문이겠지.


사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내게 남편이 '태클 아닌 태클'을 걸어온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친정, 시댁 모두 육아에 도움을 주기 힘든 상황이었고, 남편마저 더 바쁜 부서로 옮길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평일은 물론, 주말마저 독박육아가 당첨된 거다. 남편은 자기가 일을 더하고 더 많이 벌어올 테니, 나는 하던 대로 육아와 살림에 집중하길 바랐다. 현실적으로 그게 우리 상황에 맞았다.


'욕구불만' 상태가 계속되자 내 속은 더 시끄러웠다. '나는 누구지. 나란 인간은 어떤 사람이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나를 당연하게 정의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 데, 희한하게도 나는 속 시원하게 나를 설명하지 못했다. 화가 났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감도 없다는 게 자존감을 깎아 먹었다.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내가 어떤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를 지웠구나. 안락한 가정 안에서 엄마란 이름으로 아내란 이름으로만 살고 있었구나. 나를 꺼내며 살지 않았구나.


그래서 난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그리고 결심했다.


'나를 세상에 내놓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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