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직한연필 Jun 04. 2024

아들의 조언

엄마, 최고의 호신술이 뭔지 알아?

표준국어대사전

호신술(護身術)     

: 몸을 보호하기 위한 무술, 태권도, 유도 따위가 있다.      


대부분 호신술이라고 하면 맨몸이나 맨손으로 타인의 공격을 방어하고 제압하기 위한 기술을 떠올린다.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관절을 꺾고 급소를 공격하는 식의 무술, 무력이 필요할 경우에는 발차기와 격투 기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자기 몸을 보호하려면, 먼저 자기의 실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백 가지 호신술을 익히는 것만큼 중요한 기술은 자기의 실력을 아는 것이다. 호신술은 말 그대로 ‘몸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이다. 그런데 내가 화려한 호신술을 갖고 있다고 한들 상대가 나보다 훨씬 힘이 세고 월등한 기술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 호신술 믿고 덤볐다간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 번을 싸워도 승산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말은 본래 중국의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百戰不殆)’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이 표현을 ‘지기 지피(知己知彼)’로 바꾸어 사용하였는데, 아마도 장군은 적을 아는 것만큼 나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진정한 승리란 싸워서 이기는 데 목적이 있기보다 오히려 최대한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를테면 ‘이겨놓고 시작하는 전쟁’이 되는 셈이다.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단순히 탁월한 전투 전략이나 배를 만드는 기술력, 박식함만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에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한 시간들, 지독하게 고독하고 힘겨웠던 시간들을 견디면서 쌓아 올린 그의 일기(매일의 기록과 자기 성찰), 바로 ‘나를 아는 힘’이 이순신의 저력이 아니었을까.      


고등학생인 아들이랑 TV로 UFC 경기를 보고 있었다. 시합이 시작되고 두 선수가 서로에게 펀치를 날리며 격렬한 경기가 진행되었다. 나는 시합의 룰이나 격투기 스킬을 잘 모르는데, 아들이 옆에서 저 기술은 뭐고, 저 선수는 뭐가 대단하고... 설명을 보태었다. 그때 어떤 맥락에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평소 아들이 하도 UFC에 관심도 많고 어릴 적에 태권도, 무에타이 학원에 다닌 적이 있어서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경기 말고 실제로 저렇게 덩치 큰 사람이랑 일대일로 붙게 되면 어떤 기술을 써서 상대를 제압해야 돼?”     


아들의 대답이 가관이다.     


“그러면 무조건 도망쳐야 돼.”


나는 처음에 아들의 대답이 하도 엉뚱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엄마, 상대 체급이 나보다 높으면 무조건 도망쳐야 돼, 싸움은 체급이 같아야 할 수 있는 거야. 체급이 다른데 어떻게 이겨.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달려야지.”     


그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박장대소를 했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예리한 통찰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최고의 호신술은 ‘달리기’인 셈이다.


영화에서 마주하는 일대일 혈투, 백병전은 그야말로 코너에 몰렸을 때 직면해야 하는 최후의 선택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그러나 ‘싸우지 않을 수만 있다면 최대한 싸우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싸울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싸우지 않아도 될 일이 커져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전쟁터와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어쩌면 이 치열한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자기를 잘 알고, 상대를 잘 파악하며, 때론 숨이 차도록 달리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이다.      


아들의 말이 재미있지만 뭔가 설명하기가 어렵게, 조금 슬프다. 왠지 나는 자주 달려야 할 것 같다. 오래 달리기를 위한 체력부터 길러야겠다.      


최고의 호신술은 '달리기'니까.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스 내성 키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