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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책하긴 아쉬워서,

첫만남

by 릴라 Mar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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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과 10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정말 결혼하는데 오래도 걸렸다. 그 10년동안 변하지 않고 남편에게 부탁했던게 있었는데, 바로 강아지를 키웠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엔 남편은 그다지 내켜하지 않아했다. 그러나 집을 서울 외곽으로 이사하고, 내가 일을 그만 두게 되니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시간날 때마다 산책을하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산책을 혼자하긴 너무 아까웠다.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고 있을 많은 강아지를 다 구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단 한마리라도 구해 같이 신책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그러다 남편도 이제 집도 커졌겠다, 산책할 장소도 확보됐겠다, 싶었는지 드디어 입양에 동의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매일 포인핸드 어플을 보며 우리에게 맞는 강아지를 찾기 시작했다. 어플을 보며 충격적이었던 것은, 생각보다 버림 받는 강아지가 많았다는 것. 하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안락사 당하는 강아지도 많다는 것.

볼때마다 다 살리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금방 입양이 가는 예쁘고 어린 품종견들 말고 나이가 그래도 좀 있는 믹스견을 데려오자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다 발견한 이 강아지. 포인헤드를 보다가 눈길을 끌어서 남편에게 보여주니 처음으로 내 핸드폰까지 가져가서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저 은은한 미소를 봐. 코도 촉촉하고. 꼬리도 흔들고 있는 거 보니 꽤나 성격이 좋아보여. 이 강아지면 좋을 거 같은데, 아직 시기는 아닌 거 같아.”


라고 했다. 남편은 12월부터 2월까지 일을 쉬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12월부터 데려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빠른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얘는 아닌가, 하고 있었는데 계속 이 사진을 들여다보던 남편은 11월 5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강아지가 맞는 거 같다며 연락해보라고 했다. 내일이면 공고기간이 끝나고, 그럼 이제 입양을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다음날이 되어 바로 전화를 해보니 이미 누가 데려갔다고 했다. 아, 이럴수가. 우리 강아지가 아닌걸까?


미련을 가지고 계속해서 포인핸드를 드나들었다. 정말 엄청난 미련을 가지고. 그랬는데 댓글이 달린게 보였다. 어떤분께서 강아지를 구조를 했으니 임시보호자가 필요하다고. 당장 연락을 해서 사정을 알고보니, 앞에 있던 대기자들이 강아지가 입질을 하고, 사람을 엄청나게 무서워한다는 것을 안 순간 다 입양을 포기해서 데려오셨다고 하셨다. 대기자들이 다 포기해버리면 무조건 안락사 처지가 된다는 것을 안 순간 구조자 선생님께 너무너무 감사했다.

중성화를 하고 보내신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면 사람을 더욱 무서워할 거 같다는 생각에 우선 우리가 한달 정도 데리고 있다가 중성화를 하면 안되겠냐고 부탁드렸고, 흔쾌히 허락하셔서 다음날 당장 데릴러 가게되었다.


강아지를 데릴러 가는 길은 설렘을 넘어서 고통에 가까웠다. 가슴이 두근거려 겨우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어서 보고 싶었다. 실제로 내 품안에 강아지가 들어와야지 안심이 될 것만 같았다. 들떠 있는 건지, 아님 불안한 건지 모를 상태로 둘다 이해가 안될만한 헛소리들만 늘어놓으며 부천까지 운전해서 갔다.


아직까지 초보티를 벗지 못한 남편과 네비게이션을 잘 보지 못하는 나의 조합으로 인해 몇 번이나 길을 잘못들었다. 둘다 침착한척을 했지만 둘다 심장은 이미 튀어나와 무릎에서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럴것을 예상해 두시간이나 일찍 나온 덕에 10분이나(!)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원래는 1시간 거리)


겨우겨우 도착해 구조자분께 연락을 하니 아직 도착 전이라 하셔서 밑에 카페에서 정신 차리기 위해 커피 한잔씩 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한번에 들이켰지만 속이 차가운지, 더운지도 알 수 없었다. 강아지 한 마리 데릴러 가는데 이렇게까지 긴장한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직접 데릴러 가기 전까지 그랬으니까. 혹시나 우리가 그 강아지를 못데려올 만약의 사태와, 강아지가 우리를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도 긴장했는지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구조자 선생님이 곧 도착한다고 해서 미리 동물병원에 들어가 있었다.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자마자 후다닥 일층으로 내려가서 같이 강아지를 데려왔다.


강아지는 생각보다 작았고, 또 생각보다 훨씬 완벽했다.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 없이 자꾸 눈길이 갔다.


그치만 사람을 무서워해서 만지기 어렵다고 하셨던게 정말 사실이었다. 케이지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자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안아주고 싶었다.


검사 결과 강아지는 몸에 크게 이상은 없다고 했다. 나이는 추정결과 4-5살 정도된다고 했다. 예방주사를 맞고, 드디어 집으로 출발했다.

구조자분께서 병원 오는길에 엄청나게 짖고 낑낑거렸다고 걱정하셨는데, 우리차에 타자마자 잠에 들어서 너무너무 고마웠다. 평생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이름은 고민하다가 남편이 쵸비라고 지어주었다.

“먹을 걸로 지어야 오래산대.”라고 하자 무조건 먹을걸로 지어야한다면서 쵸코비, 엔쵸비, 비쵸비의 쵸비로 지겠다고 했다. 나도 만족하고 남편도 만족해서 강아지 이름은 쵸비로 지어졌다.


쵸비야, 가만히 불러봤다. 자신의 이름이 될 것이란 걸 알았는지 가만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착 직후, 추울까봐 입혀주신 옷은 당연히 벗길 수 없었고(ㅋㅋㅋㅋ)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저렇게 거실 한복판에 누워버렸다. 그래도 숨으려고 하지 않고 저렇게 거실 한가운데 누워버리는게 신기했다. 지금 보면 정말 꼬질이지만, 그때는 남편과 나, 둘다 완벽한 강아지라고, 정말 너무너무 귀엽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조금만 큰소리를 내도 깜짝 깜짝 놀라고 숨어버리는 탓에 정말 조용히 지내게 되었다.

이불을 깔아주니 자기 자리인 것을 아는 건지, 저러고 자기 시작했다. 유기견들은 보호소에서 뜬장에서 지내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제대로 된 집에 오면 정말 하루종일 잔다고 하던데, 저렇게 자는 것을 보니 마음이 정말 아팠다.

강형욱 유튜브를 보니 집에 처음 데리고 온 날엔 절대 목욕은 시키지 말고(물릴까봐 어차피 못 시킴) 밤에는 같이 자는게 좋다고 한걸 봐서 한 일주일간은 같이 잔거 같다.


나도, 쵸비도, 남편도 정말 오랜만에 한번도 깨지 않고 푹 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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