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대학생이 된 선배들이 후배들과 자신의 성공적인 입시담과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나누기 위해 학교를 다시 찾는 행사가 있었었다. 다른 선배들도 왔을 텐데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던 선배만 기억난다. 따뜻한 말씨와 미소 때문에 여릴 줄 알았는데 볼수록 강인한 내면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행정학과와 공무원은 내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나도 훗날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후배들 앞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이른바 성공한 선배로 금의환향하여 후배들 앞에 서게 되는 일은 올해 2024년 1월에 일어났다. 가볍게 시작한 공부가 갈수록 큰 열정이 되어 박사 학위 취득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그곳은 의지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의지가 변치 않아야만 졸업할 수 있는 학교였다. 그곳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전공 분야가 있는 명문 대학으로 이동하여 5년 만에 ‘박사’가 되었다. 석사까지 공부한 그 학교 학생들에게 나는 개척자와 다름없는 존재라고, 나를 강연자로 초대한 논문 심사 교수가 귀띔해 주었다.
한겨울 저녁, 친정과도 같은 모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 주제에 관한 특강을 하게 되었다. 8년,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은 학교에서 새로 부임한 젊은 학과장을 소개받았고, 나처럼 뒤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고 있는 후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특강 전에 배를 채우기 위해 불고기 집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나는 정가운데 테이블에서 교수들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렇게 있으니 나도 마치 교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강의실에 돌아오니 은사께서 와계셨다. 그는 여전히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지를 물으셨고, 수업 후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면 “집에 꿀단지를 숨겨놓았냐?”라고 농을 건네셨던 것도 기억하셨다. 교수님은 옆에 앉아있던 젊은 두 교수들의 눈치를 힐긋 살피시더니 강의하는 곳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러고는 이곳에서 강의할 수 있겠느냐고, 이곳 졸업생이라는 사실은 큰 이점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학위를 취득하고 반년이 지났는데도 어디 하나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지도교수님과 팀티칭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둘러댔다. 그러고는 이곳에서 강의할 수 있다면 크나큰 영광이겠다고도 말씀드렸다.
특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실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아프리카 대중음악과 사회현상”에 관한 학생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내 이야기를 열심히 필기하는 것이 신기하고 뿌듯했다. 예상보다 많은 질문, 심지어 날카로운 질문들이 줄을 이어서 학과장이 중단을 해야 할 정도였다. 거침없는 질문과 막힘없는 대답. 내 인생에 다시없을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지난 10년 간의 무용담을 펼치는 것이었나 보다. 그날의 수많은 질문 가운데 나에 대한 유일한 질문, “번역가로서 지난 삶과 학자로서 지금 삶 중에 어느 것이 더 행복하냐”가 뇌리에 남은 것을 보면 말이다.
과거,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던 질문자는 그때도 번역가로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었다. 스스로를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나를 기억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 질문은 내게 꽤나 민감한 주제였다. 힘겹게 ‘번역가’의 타이틀을 얻었으면서도, 번역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그 길을 극구 말리곤 했었으니까. 그녀도 그것을 알았을 테고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대답을 예상했으리라.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이제 시작하는 학자로서의 삶이 번역가로서의 삶보다 낫다거나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는, 자못 냉정하게 들릴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행사가 끝난 뒤, 아프리카학을 공부하는 동료들과 같이 만든 책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들에게 둘러 싸여 책에 사인을 하면서도, 내 눈은 은사가 조용히 강의실을 나가시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한 학생은 앞으로 내 강의가 개설되기를 바란다면서, 아프리카에서의 K-pop에 관한 논문을 쓰고 싶은 포부를 말했다. 강의실 밖으로 나오니 나를 강연자로 만들어준 교수는 보이지 않았고, 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젊은 학과장이 다가와 이렇게 질문이 많은 특강은 처음이라고 했다.
계단을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오니 저녁은 밤이 되어 있었다. 학과장은 다시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하고 재빠르게 교수동으로 향했다. 옆을 보니 나이 지긋한 후배들이 둘셋 짝을 지어 벌써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조교가 내 뒤에서 달려와 강의료 액수와 지급 방식을 멋쩍어하면서 알려주고 돌아갔다. 내 강의를 기대한다고 말한 학생은 내가 혼자이기를 바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다가오거나 앞지르지 않았다. 정류장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니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내일 당장 갈 곳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문득, 또다시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