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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로마치 Oct 26. 2024

무명번역가 3. 후일담


번역을 하지 않으니 참으로 편하다.
  

  번역가로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번역을 하고 싶은 사람, 번역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그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당연히 갖춰야 할 번역 실력과 글쓰기 실력은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내게 번역가로서의 삶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만큼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다. 번역이라는 일은 정신노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원서와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긴장된다. 여기에 독자의 가슴에 다가갈 문장을 만들어야 하니 더 힘들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의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선에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이런 번역가들은 충분한, 아니 ‘적절한’ 보상을 받을까?


  번역을 하면 대체로 ‘매절’, 즉 번역 원고 매수를 기준으로 번역료를 받게 된다. 도서 판매량에 기준을 둔 ‘인세’로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번역료를 안 받을 각오를 하고 책에 ‘배팅’을 건다고 보면 된다. 나는 초기에 내가 원하는 소설책을 번역한다는 기쁨에 무턱대고 ‘인세’로 계약한 적이 있었다. 결론은 한 푼도 정산을 받지 못했다. 이는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계약 당시, 출판사 사장과 편집자는 격하게 만류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패기만만했던 그때, 나는 내 책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을 그렇게 표현했고, 지금도 그때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하튼, ‘매절’로 받는 번역료는 책 두께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내 기억에 얇은 책은 2,3백만 원, 중간 부피는 5백만 원, 두꺼운 책은 1천만 원 이상까지 받았었다.


  스스로를 진짜 '번역가'라고 생각했던 6년 동안엔, 1년에 2,3권 정도를 번역하고 출간했다. 그 말은 내가 일 년에 버는 돈이 1천만 원 주위를 맴돌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 피식 웃을 것이다. 그 돈으로 산다고? 맞다, 나는 그 돈으로 살았다. 하지만 나처럼 일하면 안 된다. 안타깝지만, 내 체력과 능력은 그 정도만 감당할 수 있었다. 많은 출판사들이 나를 찾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물론 잘 나가는, 실력 있는 번역가들은 1년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번역하고 출간한다. 번역을 해본 입장에서 그들이 엄청난 수고를 기울인다는 것을 알기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학원들은 “번역으로 대기업 부장급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말로 번역가 지망생들을 유인했는데, 그것은 이들 소수의 번역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그들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번역에 쏟을 것이다.




  번역가의 삶에 대해 묻는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얼마나 버느냐’ 일 테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돈 이야기부터 꺼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번역하지 말라! 적당히 번역해서 살 생각이라면, 돈 버는 것은 포기하라! 그것이 내 대답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번역과 번역가의 삶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이 글을 떠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돈은 많이 못 벌어도 괜찮으니 번역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고생 끝에 낙이 올 거라 믿으며 묵묵히 번역가의 길을 걸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계속 이 글을 주시할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나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나는 경제적 보상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는 번역가의 삶을, 그럼에도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잠식당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돈’은 무기나 다름없다. ‘돈 없는 삶’은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서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끝까지 번역을 하겠다는 사람은 대책 없는 사람, 바보 같아 보인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 그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결국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은, 나도 그런 사람에 속하는 것 같다. 참으로 무모했지만, 그런 결연한 의지에는 세상이 정해놓은 것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 나만의 특별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세상이 정한 ‘안전한’ 길을 따르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기적을 이뤄내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사람들이 내 삶을 어떻게 평가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속세를 벗어난 도인처럼 세상이 모범답안으로 제시하는 삶을 전혀 추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도인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현실은,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쓸쓸함과, 언제쯤 내가 빛을 낼 수 있을지 모르는 답답함,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세상에 대한 원망 등으로 번뇌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번역가로서의 삶’은 성인이 된 내가 처음으로 맞이했던 ‘수행의 장’이나 다름없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스스로에게 ‘희망 고문’을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흔들리고 있으며, 내가 남몰래 바랐던 인생의 커다란 성취도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한, 계속 여정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그렇다면 목표했던 결과물을 얻는 것보다, 걷고 있는 발걸음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으며 기쁨을 찾는 것이 인생을 더 값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나는 번역가로 살았던 시간을 무 토막 자르듯 인생에서 통째로 베어내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다. ‘오역 논란’이라는, 나 혼자만 기억하는 단 한 번의 사건이 그토록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맞서지도 않은 채 도망쳐 나왔기에 그 시간이 더욱 치욕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과 사람들을 겪으며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번역가로 살았던 시간이 알게 모르게 내게 내공을 쌓아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단, 번역이라는 지적 작업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터득된 논리적 분석력과 통찰력은 나를 ‘박사’가 되는 길로 좀 더 수월하게 인도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좀 더 정돈된 문장을 구사하게 된 것 역시 번역이라는 강력한 훈련을 통해 단련된 결과였다.


  번역가로 살았기 때문에 취미생활을 영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일이 없어 주어진) 여유 시간을 책과 음악, 영화 등으로 채우면서 나만의 고유한 감성을 키울 수 있었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작품을 만들었고, 요가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그 시기 나의 취미 생활은 강박적인 것이었다. 번역을 잘하기 위해서, 번역 아닌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자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 삶을 ‘특별한’ 것으로 빚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번뇌와 불안으로 가득한 시간을 잘 견뎌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그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견뎌내는 힘’을 얻었으니까. 그것은 인내심, 기다릴 줄 아는 힘이었다.  


  글을 쓰거나 예술을 하는 이른바 ‘프리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내가 언급한 삶의 양식과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공감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언젠가 자신의 가치가 이 세상에서 빛나게 드러나기를 바라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 그러나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삶은 이미 완성형이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쫓지 않고 자기만의 ‘독자적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로 ‘구도자의 삶’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세상에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방사하는 빛으로 인해 세상에 ‘끌려’ 나오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크나큰 감동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내게 번역가의 삶을 물으셨던, 나보다 나이가 꽤 많으셨던 남자분이 생각난다. 7,8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세상살이에 익숙해 보이지 않는, 조금은 여리고 순수한 느낌을 자아내는 분이었다. 그분은 이미 많은 것을 알아보고 번역가로 진로를 결정한 상태에서 내게 한 번 더 문의하시는 것 같았다. 번역학원을 비롯하여 매우 구체적인 것들을 질문하셨는데,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우려되는 부분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했다. 잘 '팔리지' 않는 번역가의 실상도 언급했다. 통화 말미에는 그 힘든 길에 들어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직설적인 조언을 덧붙였다. 1년 뒤, 그분은 첫 번역서를 출간했다고 내게 연락을 하셨다. 축하드렸고, 앞으로도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지금 그분의 행보를 확인해 보니, 이후 두어 권을 더 번역하시고 최근 몇 년 동안은 번역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설사 번역을 내려놓으셨다 하더라도 그분만의 의미 있는 생활, 잔잔하게 빛을 뿜어내는 생활을 하고 계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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