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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현 Mar 11. 2021

19. 부러진 색연필 앞에서



요즘 아기자두의 취미는 종이인형 만들기고,

아기호두의 취미는 아기자두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우리 아기호두, 아기자두가 만들어 놓은 종이인형의 팔을 빨간색 색연필로 칠해놓고는 "잘했지?" 하며 헤헤 웃습니다.  

자두가 보기에는 빨간 장갑을 낀 것 같아 나쁘지 않은데, 아기자두는 영 화가 납니다. 자기 것에 마음대로 색을 칠했다며 울먹거리기까지 합니다. 이런... 주인이 싫다는 데 어쩌겠습니다. 자두는 아기호두에게 사과를 하라고 합니다.  

잘했다 소리를 들을 줄 알았던 아기호두도 마음이 상해 성의 없는 사과를 툭 던집니다. 아기자두는 빨간색을 지워내라고 고집을 부립니다. 결국 화가 난 아기호두가 옆에 있던 색연필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지릅니다. 미안하다고 했는데 아기자두가 계속 지우라고 한다고요.

 
색연필을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단단한 케이스 안에 있던 심이 부러져 자두 앞으로 날아옵니다. 이제는 자두와 아기호두의 대치 상황이 됩니다.

던진 것들을 주워오라고 하니 민망한 표정으로 싱글거리며 싫다고 하는 아기호두.

주워 와, 싫어, 주워 와, 싫어, 주워 와, 싫어… 서로 꼿꼿하게 같은 말을 대여섯 번 반복하고는 결국 아기호두가 부러진 색연필을 자두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자두 : 너 또 이렇게 던질 거야?

아기호두 : 아니.

자두 : 그럼 앞으로 안 던질 거야?

아기호두 : 응.

자두 : 왜 앞으로 안 던질 거야?

아기호두 : (분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트린다) 그걸 왜 말해야 돼?

자두 :  그걸 말해야지. 너 지금 안 던진다고 대답한 건 엄마한테 혼나서 그런 거잖아. 왜 안 던질 건지 진짜 네가 생각해서 말해야지.

아기호두 : 그걸 왜 말해야 하냐고!

자두 : 흠... 아직 왜 안 던져야 하는지 생각이 안 난 거면 저기 의자에 앉아서 생각하고 다시 와.

아기호두 : 엉엉엉. 싫어!

자두 : (단호하게) 가서 생각하고 와.

아기호두 : 내가 안 던지려고 하는데, 그냥 던져졌단 말이야!

자두 : 그게 무슨 말이야.

아기호두 : 내가 안 던지려고 하는데, 그냥 던져졌다고! 내가 안 던지려고 했는데, 엄마가 던졌다고 혼내니까 나는 너무 속상해! 엉엉엉.

자두 : …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 되는 거 배우는 너도 참 힘들 거야.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 되는 거 배우는 나도 참 어렵거든.

아이를 키운다는 것, 사람을 하나 키워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늘 고민하게 돼. 그래서 유명한 육아 선생님들의 말씀도 찾아보곤 한다. 그런데 말이야, 육아의 답은 언제나 너에게 있더라.

부러진 색연필을 앞에 두고 너에게 물어야 했던 말은 ‘앞으로도 던질 거냐, 말 거냐’가 아니었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색연필을 던졌을 때, 화를 다스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엄마는 지금도 그게 참 힘들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다.

나도 화를 내고 너도 울어버렸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아기호두야, 우리가 나눌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줘서 고맙다.

언제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사람 되는 일, 엄마 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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