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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Jan 04. 2024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머리카락이 빠지는 그대에게

프롤로그. 탈모를 스치듯 보낼 수 있는 법을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필자의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매주 발행하는 <탈모 탈피 생활 에세이>로, '머리카락'을 '머리'로 칭하는 한국인의 통상적인 언어문화에 기대어 집필합니다.




하나, 둘, 셋, 열다섯, 스물일곱, 마흔 하나...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비친 방바닥을 바라보니 여기저기 거뭇거뭇한 실오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눈만 뜨면 침대 옆 바닥부터 찬찬히 훑어본다. 오늘도 결국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내 긴 머리카락을 전부 헤아릴 순 없었다. 나는 '탈모 중기'에 놓인 사십 대 여성 작가이다. 출간 활동 후 8개월 만에 로그인한 브런치스토리에 '탈모'를 고백하며 브런치북을 시작하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몰랐다.




"자기야, 방바닥에 쿠키 털보다 자기 머리카락이 더 많은 거 같아." 

남편이 조심스레 내게 건넨 말 한마디에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나 역시 내 탈모를 반려견 덕에 발견한 거냐고? 아니다. 실은 진작부터 여러 부분에서 조짐이 보였다. 방바닥에 늘어가는 머리카락도 눈에 띄었다. 그럴 때마다 반려견 쿠키 털이 하얀색이라서 빠진 털들이 상대적으로 안 보이는 것뿐이라며 애써 떨어져 있는 내 머리카락 수를 외면해 왔다. 치졸한 부정이었다. 그렇게라도 내 탈모를 부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질질 끌었더니만, 이제는 타인인 남편까지 탈모를 눈치챌 정도에 다다랐다. 이제,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 


남편이 인지한 후로, 나는 잠에서 깨어나면 방바닥을 휙 둘러보고 머리카락을 눈대중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나만의 머리카락 검열인 셈이다. 이 습관은 한 영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본능적으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는 걸 느낀 때부터 탈모 관련 정보를 스멀스멀 찾아보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한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저는 샤워할 때마다 머리를 빗어 화장실 바닥에 머리카닥을 후드득 떨어뜨려요. 떨어진 머리카락을 뭉쳐서... 자, 이렇게. 화장실 벽에 툭 하고 던져요. 그러면 벽에 달라붙겠죠? 그렇게 제게서 떨어지는 하루 머리카락 양을 자가 측정해 볼 수 있어요. 간단하죠?"


솔깃했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흘려듣던 휴대폰 영상을 세면대 거울 앞에 바로 세워 놓고 제대로 보려고 응시했다. 그 순간 내 눈에 더 큰 것이 들어와 버렸다. "와. 머리 봐."  나도 모르게 양치하던 손길이 멈추고, 입이 벌어지더니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흰 플라스틱 약병을 손에 든 화면 속 연예인이 늘어놓는 열변은 일순 배경음 속으로 사라졌다. 내 두 눈에 들어오는 건 오직 그녀가 가진 풍성한 머리카락. 어깨 한참 아래까지 늘어지는 그녀의 기다란 파마머리는 볼륨감이 넘쳤다.

'어떻게 하면 머리 저 풍성해질 수 있을까?' 검정 뭉게구름 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그녀를 보자 나는 넋이 나간 사람마냥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 몽글몽글 피어오른 새까만 그녀의 머리카락은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부러웠다. 어느 새 내 두 눈은 거울 너머 서 있는 내 볼품없는 머리숱을 향해 있었다. 그녀가 아름드리 나무라면, 나는 새찬 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마른 가지 같았다. 상대적 박탈감에 사무치다 못해 딱해보여 가슴이 쓰렸다. 

'그래도, 탈모는 아닐꺼야. 우리 가족 중에 탈모가 단 한 사람도 없잖아.' 조부모님도 탈모가 아니셨기에 이런 과학적 사실로 아린 마음을 토닥였다. 영상 속 그녀가 말해준 방법대로 빠지는 머리카락 수를 가늠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화장실 벽면에 던졌다. 찰싹. 단음과 함께 머리카락들이 얼기설기 뒤엉켜 벽에 달라붙었다. 많다. 많이도 빠졌네. 이 정도면 탈모 아닌가. 불안이 엄습했다. 멈췄던 양치질을 다시 시작하며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정수리를 보았다. 정수리 부분에 뽀얀 두피가 제법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고개 내민 뽀얀 두피를 힘껏 노려보며 장시간의 양치질을 마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이렇게 실험적인 행동을 하며 내가 탈모인지 아닌지 고민하기를 반복하다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이 내게 머리털 이야기를 건낸 것이다. 외면하며 지내던 날들의 결과가 몇 개월이 흘러 물밀 듯 거세게 몰려들었다. 연이은 집필과 과도한 업무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 걸까. 이때까지도 뚜렷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갈급하다. 생활속에서 나를 옥죄는 여러 탈모의 정황 속에서 내가 점점 조급해지고 있었다. 다음 날, 휑해져 가는 내 정수리를 보며 다짐했다. 더는 내 머리카락 상태에 대해 방관하거나 소심하게 대응하지 않겠노라고. 




이 은 머리카과의 잦은 이별, 그리고 약한 두피와 잘못된 생활 습관으로 급기야 탈모를 맞이한 이야기로 시작해 탈모를 방지하는 생활 습관, 개선책 등으로 마무리되는 꽤 점진적인 이야. 또한 치열하게 산 대가가 고작 탈모인 거냐며 서러움에 홀로 눈물 훔치는 40대 여성 탈모인에게 건네는 노란 손수건이기도 하다. 당신과 나, 함께 이 한 시련 오붓이 이겨내 보자고 말이다. 우리가 맞이한 탈모는 반드시 스치 듯 우리를 지나갈 것이다. 나는 내일 아침도 전날 방바닥으로 낙하한 내 머리카락 수를 셀 것이다. 양손에 움켜쥔 그들과 직면하는 순간,

 바로 그때부터가 탈모 탈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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