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를 막을 묘안을 말씀하시는 원장님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초롱초롱, 두 귀는 쫑긋 섰다.
"그게 뭔가요?"
좋은 관리를 받는다 해도 생활 습관이 잘못되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관리하는 보람이 없을 테다. 어느새 내 고개와 상체가 원장님을 향해 앞으로 숙여졌다. 해주시는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세를 취했다. 원장님께서는 "먼저~"라며 입을 떼셨다.
"머리를 자르시는 걸 추천합니다. 지금 모발 상태로는 머리가 길면 엉키거나 당김으로 더 빠지게 돼요."
청천벽력이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길러 온 머리인데. 이유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얼굴 표정은 가슴 한참 아래 길이까지 길러온 머리를 매만지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어, 어디까지요..?"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어느 정도 길이까지 잘라야 하는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한... 이 정도까지는 잘라야겠죠?"
어깨 바로 아래쪽에 희고 고운 손을 '한 일자(一)'로 가져다 데시는 원장님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헉!"
지금보다 25cm는 넘게 잘라야 하는 길이였다. 탈모 중기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2차로 똑 단발행 권고까지 받았다.
"선생님, 꼭 잘라야만 할까요? 머리를 묶고 다니면 괜찮지 않을까요? "
그는 말없이 미소만 지으셨다. 원장님께서는 가늘어진 머리카락과 탄력 잃은 모공 때문에 당김 빠짐이 일어나고, 머리가 길면 머리를 감거나 빗을 때에도 빠지는 경우가 빈번해서 탈모 중기인 나에겐 전혀 도움 될 리 없다고 말씀하셨다. 합당한 논리였다. 원장님은 그 밖에도 탈모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습관, 머리 감을 때 두피에 해주면 좋은 행동, 새싹처럼 모발을 쑥쑥 자라게 해 줄 영양소와 음식 등 탈모 예방에 도움 되는 단비 같은 정보를 알려주셨다.
하나도 빠짐없이 부지런히 받아 적었다. 신문 기자라도 된 듯 원장님이 말씀하시는 탈모 방지 관리법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으려 애썼다. 양 손가락을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나갔다. 또한 그동안 찾아봤던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검색한 탈모 관련 정보에 대한 궁금증도 여쭤보고 정확한 답을 들었다.
이런 내 모습에 잠시 중, 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꾸벅거리며 졸던 내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 그 많은 선생님의 수업을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을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절박해야 움직인다.
새해가 밝고 며칠 지나지 않은 이 시점,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또 다른 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래, 상념이 많아서 내 비록 학업은 놓쳤다만, 기필코 탈모만은 막아보겠어!' 비장하게 결의를 다졌다. 원장님의 말씀을 타이핑하며, 지난날 머리를 대강 관리하던 나를 반성했다. 그때 원장님이 갑자기 호랑이처럼 불호령 하셨다.
"받아만 적는다고 머리털이 나는 게 아닙니다."
강단 있는 어조와 사감선생님 같은 카랑카랑한 목소리. 일순간 유격 현장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움찔했다.
"네?"
너무 놀라 얼떨결에 학생처럼 대답했다.
"적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정말 실천하셔야 해요. 그리고 관리하셔야 합니다. 치료하는 관리 없이 정보를 알고 대강 실천한다고 탈모가 개선되는 게 아니거든요. 이번 주부터 딱 2주간만 새해 프로모션을 시작하는데, 12만 원짜리 VIP 관리를 31,000원에 할 수 있어요. 그거라도 1회 체험해 보고 가세요. 확실히 달라질 테니."
솔깃했다. 말씀대로 새해 프로모션은 탈모 클리닉을 방문한 1월 3일 수요일 경, 아직 탈모클리닉 벽면과 상담실 그리고 안내 책자 그 어디에도 전혀 홍보되어 있지 않은 '원장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프로모션'이었다.
원장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머지 조언들도 다 받아 적었다. 집에서도 열심히 관리해 보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새해 프로모션을 1회 받아보기로 했다. 원장님의 진심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여성 직원분을 따라서 관리실로 향했다.
상냥하게 안내해 주시는 그분이 오늘 내 두피를 관리해 주시는 선생님이셨다. 총 1시간 10분이 소요되는데 여섯 가지 관리를 받는다고 설명해 주셨다. 매 단계마다 낯선 기계를 하나씩 꺼내보여 주시고는 그 기계로 두피를 이렇게 저렇게 한다며 알려주셨다. 제법 뜨끈하고, 따끔하고 차가운 관리를 차례로 받고,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에 지났다. 관리 후 머리를 말리고서 다시 원장실을 향했다. 원장님은 내가 처음에 찍은 사진과 두피 관리 후 찍은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주셨다.
또다시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아주 깨끗했다.
두피 관리로 묵은 각질을 벗긴 두피가 말 그대로 깨끗해지기도 했지만, 뽀얗게 드러난 두피 때문에 줄어든 머리숱이 상대적으로 빈곤해 보였다. 게다가 비어 있는 모공이 훤히 보일 정도로 날것의 모습이었다. 모니터에 있는 내 두피 사진을 바라보니 벌거벗겨진 듯 움츠러들었고, 마음속까지 찬바람이 휑하고 들이닥쳤다.
'깨끗하다'라는 어휘는 참 좋은 표현인데, 너무 깨끗한 내 두피에 측은함이 생겨 눈물까지 나올 뻔했다.
"선생님, 저거. 오른쪽에 있는 저... 빈 구멍이요. 저거 설마 머리가 빠진 모공인가요?"
"맞습니다. "
기어코, 눈앞이 뿌예졌다. 짝을 잃고 비어있는 모공이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이런 못난 주인을 만나 내 두피 모공이 고생이 많았구나, 콧등이 시큰해졌다.
"어때요? 두피 스케일링과 관리를 받고 나니 두피가 깔끔해져서 아주 잘 보이죠?"
두피클리닉 센터에서 행하는 두피 관리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원장님은 나와는 사뭇 다른 온도로 계속 모니터를 응시하시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보통 사람은 두피에 있는 모공에서 1~2개에서 많게는 3,4개까지 머리카락이 나곤 하거든요. 한데 탈모가 시작되면, 이렇게 보시는 것처럼 한 모공에서 머리카락이 하나씩 나옵니다. 또는 비어있기도 해요. 영양분이 부족하기도 하고 안 좋은 생활 습관 때문이죠."
곧장 정신을 추스르고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선생님은 나를 보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물어보신 이 빈 모공은 머리카락이 안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어있는 거랍니다. 묵은 각질로 막혀 있기도 했고요, 방금 말한 그런 이유들로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서둘러 관리하셔야 해요."
빈 모공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울렁거리고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산 결과가 '탈모'라니. 살아온 숱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아 고개를 털었다. 어쩐다, 이제. 눈물을 훔치고는 내 두피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원장님께 허가를 구했다. 남편과 논의 후 관리를 받도록 힘써보겠다고 말을 남긴 채 상담실을 나왔다. 탈모 치료에 열정이신 원장님은 알겠다며 나와 인사를 나누셨다. 두 시간이라는 긴 상담이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너무나도 강렬해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탈모클리닉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눈 쌓인 거리가 꼭 모니터로 본 새하얀 내 두피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서는 내 두피 이곳저곳에 있던 텅 빈 모공 사진만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걷던 나는 너무 심각해지지 않기로 했다. 다행이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현실을 제대로 맞닥뜨리게 되어서. 탈모에 있어 가장 큰 적은 결국 스트레스와 걱정 아니던가. 거리를 걷는 초반 십여 분은 탈모 중기와 빈 모공에 대한 충격을 가시는데 들이고, 나머지 시간은 내 마음을 다잡는데 소요했다.
중간에 친한 동료 작가에게 전화해서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나 탈모 중기래! 푸하하." 라며 실없이 웃기도 하고, 커피숍에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며 지나가는 행인의 머리숱을 구경하기도 했다.
"오, 머리숱 많다."
이젠 사람 얼굴이 아니라 그들 머리숱만 눈에 들어왔다. 넋 놓고 타인 머리숱 구경을 하다가, 창가에서 시선을 뗐다. 자세를 고쳐 앉고는 '난 원래 어렸을 때부터 머리카락은 얇았어' 라며 자위했다. 곧 원장님 조언을 받아 적은 메모장을 펼쳤다. 그리고 정독했다. 내 이번 생애에서 탈모만큼은 막아보리다.
앞으로 내가 갖추어야 할 생활 습관을 중얼거리며 읽었다. 실천해야 할 것과 주의해야 할 것을 구분하고, 하루 일과를 싹 바꾸기로 계획했다. 탈모를 나 스스로 탈피해 보겠다며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2024년 1월 3일, '탈모 중기'라는 차가운 현실과 맞닿은 나는 한결 초연해졌다.
바로 다음 날 아침, 몇 년째 가는 단골 헤어숍 앞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문을 열었다. 헤어숍 원장님께서 반겨주셨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뿌리 염색하시게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원장님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셨다.
"저 단발로 자를게요."
- To be continued on Thurs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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