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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Jan 20. 2024

비록 학업은 망쳤다만, 탈모만큼은 기필코 막으리

탈모 클리닉 원장님이 알려주신 비법

탈모를 막을 묘안을 말씀하시는 원장님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초롱초롱, 두 귀는 쫑긋 섰다.


"그게 뭔가요?"


좋은 관리를 받는다 해도 생활 습관이 잘못되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관리하는 보람이 없을 테다.

어느새 내 고개와 상체가 선생님을 향해 앞으로 숙여졌다. 주옥같은 말씀을 한 마디놓치지 않으려는 듯. 원장님께서는 숨을 한 번 고르시더니 "먼저~"라며 입을 떼셨다.


"머리를 자르시는 걸 추천합니다.
지금 모발 상태로는 머리가 길면 엉키거나 당김으로 더 빠지게 돼요."


청천벽력이다. 몇 년 동안 열심히 길러 왔건만.

이유를 듣고는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가슴 한참 아래까지 길러온 머리를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어, 어디까지요..?"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어느 정도 길이까지 잘라야 하는지 슬그머니 여쭤보았다.


"한... 이 정도까지는 잘라야겠죠?" 어깨 바로 아래쪽에 희고 고운 손을 '한 일자(一)'로 가져다 데시는 원장님.


"헉!"

지금보다 25cm는 넘게 잘라야 하는 길이였다. 비명과 탄식이 섞여 나왔다.  

이것이 '탈모 중기'라는 진단 때문인지, 갑작스러운 단발행 권고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선생님,  잘라야만 할까요?  머리를 묶고 다니면 괜찮지 않을까요? "


그는 말없이 미소만 지으셨다. 

원장님께서는 가늘어진 머리카락과 탄력 잃은 모공때문에 당김 빠짐이 일어나고, 머리가 길면 머리를 감거나 빗을 때에도 빠지는 경우가 빈번해서 탈모 중기인 나에겐 전혀 도움될 리 없다고 말씀하셨다. 합당한 논리말을 잇지 못 했다.


원장님은 그밖에도 탈모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습관, 머리 감을 때 두피에 해주면 좋 행동,  새싹 같은 모발을 쑥쑥 자라게 해 줄 영양소와 음식 등 탈모 예방에 도움 되는 단비 같은 정보를 알려주셨다.


부지런히 받아 적었다.

신문 기자라도 된 듯 원장님이 말씀하시는 탈모 방지 관리법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으려 애썼다. 양 손가락을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나갔다.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검색한 탈모 관련 정보에 대한 궁금증도 여쭤보답을 들었다.




이런 내 모습에 잠시 중, 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꾸벅거리며 졸던 내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 그 많은 선생님의 을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서울대학교를 들어갔을 거라며 말이다.

역시, 사람은 절박해야 움직인다.



새해가 밝고 며칠 지나지 않은 이 시점,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또 다른 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래, 상념이 많아서 내 비록 학업은 놓쳤다만, 기필코 탈모만은 막아보겠어!

비장하게 결의를 다졌다. 원장님의 말씀을 타이핑하며, 지난날 나를 반성하고 현실 속 내게 얼음물을 끼얹었다. 이런 나를 눈치 채신 걸까. 선생님이 갑자기 호랑이처럼 불호령 하셨다.


"받아만 적는다고 머리털이 나는 게 아닙니다."


강단 있는 어조와 사감선생님 같은 카랑카랑한 목소리. 일순간 유격 현장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움찔했다.

 

"네? 네!"


너무 놀라 얼떨결에 학생처럼 대답했다.

그렇게 열 몇 가지를 받아 적고선, 집에서도 열심히 관리해 보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원장님이 날 붙잡으셨다.  


"알았어요, 그럼.

이번 주부터 딱 2주간만 새해 프로모션을 시작하는데, 12만 원짜리 VIP 관리를 31,000원에 할 수 있어요. 그거라도 1회 체험해 보고 가세요. 확실히 달라질 테니."


솔깃했다.

말씀대로 '새해 프로모션을 시작하는데' 이므로 탈모 클리닉을 방문한 1월 3일 수요일 경, 아직 탈모클리닉 벽면과 상담실 그리고 안내 책자 그 어디에도 전혀 홍보되어 있지 않은 '원장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프로모션'이었다.

멈칫하다가 탈모 방지 관리법을 상세히 배운 것만도 감사해서, 속는 셈 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성 직원분을 따라서 관리실로 향했다.  

상냥하게 안내해 주시는 그분이 오늘 내 두피를 관리해 주시는 선생님이셨다.  총 1시간 10분이 소요되는데 여섯 가지 관리를 받는다고 설명해 주셨다.

매 단계마다 낯선 기계를 하나씩 꺼내보여 주시고는 그 기계로 두피를 이렇게 저렇게 한다며 알려주셨다. 제법 뜨끈하고, 따끔하고 차가운 관리를 차례로 받고,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에 지났다.

관리 후 머리를 말리고서 다시 원장실을 향했다. 원장님은 내가 처음에 찍은 사진과 두피 관리 찍은 사진을 비교해서 보여주셨다.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아주 깨끗했다.



두피 관리묵은 각질을 벗긴 두피가 말 그대로 깨끗해지기도 했지만, 얗게 드러난 두피 때문에 적은 머리숱이 상대적으로 빈곤해 보였다. 게다가 비어 있는 모공이 훤히 보일 정도로 날것의 이었다. 니터에 있는 내 두피 사진을 바라보니 거벗겨진 듯 움츠러들었고, 마음까지 휑해졌다.

'깨끗하다'라는 어휘는 좋은 표현인데, 내 두피에게 측은이 생겨 눈물이 나올 뻔했다.


"선생님, 저거. 오른쪽에 있는 저... 빈 구멍이요. 저거 설마 머리가 빠진 모공인가요?"

"맞습니다. "

눈앞이 뿌예졌다.

을 잃고 비어있는 모공이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이런, 못난 주인을 만나 내 두피 모공이 고생이 많았구나, 마음이 아렸다.


"어때요? 두피 스케일링과 관리를 받고 나니 두피가 깔끔해져서 아주 잘 보이죠?"

두피클리닉 센터에서 행하는 두피 관리에 자부심으로 가득 찬 원장님은 나와는 다른 온도로 계속 모니터를 응시하시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보통 사람은 두피에 있는 모공에서 1~2개에서 많게는 3,4개까지 머리카락이 나곤 하거든요. 한데 탈모가 시작되면, 이렇게 보시는 것처럼 한 모공에서 머리카락이 하나씩 나옵니다. 또는 비어있기도 해요. 영양분이 부족하기도 하고 안 좋은 생활습관 때문이죠."


곧장 정신을 추스르고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선생님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물어보신 이 빈 모공은 머리카락이 안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비어있는 거랍니다. 묵은 각질로 막혀 있기도 했고요, 방금 말한 그런 이유들로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서둘러 관리하셔야 해요."


가여운 빈 모공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울렁거리고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열심히 살았는데, 열심히 산 결과가 '탈모'라니. 살아온 숱한 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금방이라도 또다시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아 고개를 털었다. 어쩐다, 이제.

내 두피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원장님께 허가를 구하고는, 남편과 논의 후 관리를 받도록 힘써보겠다고 말을 남긴 채 상담실을 나왔다.

친절하면서도, 엄격한 조교선생님 같은, 리고 탈모 치료에 열정이신 원장님은 알겠다며 나와 인사를 나누셨다.

 시간이었지만, 그녀와의 만남 너무도 강렬해서 잊지 못할 것이다.

 



탈모클리닉에서 나와 길을 걷는데 눈 쌓인 거리가 꼭 모니터로 본 새하얀 두피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내 두피 이곳저곳에 있던 텅 빈 모공 사진만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걷던 나는 너무 심각해지지 않기로 했다.

다행이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현실을 제대로 맞닥뜨리게 돼서. 탈모에 있어 가장 적은 결국 스트레스와 걱정 아니던가.  

거리를 걷는 초반 십여 분은 탈모 중기와 빈 모공에 대한 충격을 가시는데 들이고, 나머지 시간은 내 마음을 다잡는데 소요했다.


중간에 친한 동료 작가에게 전화해서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나 탈모 중기래! 푸하하." 라며 실없이 웃기도 하고, 커피숍에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 지나가는 행인의 머리숱을 구경하기도 했다.

", 머리숱 다."


사람 얼굴이 아니라 그들 머리숱눈에 들어다.

넋놓고 타인 머리숱 구경을 하다가, 창가에서 시선을 뗐다. 자세를 고쳐 앉고는 난 원래 어렸을 때도 머리카락은 얇았어, 라며 자위다.

원장님 조언을 받아 적은 메모장을 펼쳤다. 그리고 정독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내 생애에서 탈모만큼은 막아보리라.

  

앞으로 내가 갖추어야 할 생활 습관을 중얼거리며 읽었다. 실천해야 할 것과 주의해야 할 것을 구분하고, 하루 일과를 싹 바꾸기계획했다.

탈모를 나 스스로 탈피해 보겠다며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2024년 1월 3일, '탈모 중기'라는 차가운 현실과 맞닿은 나는 한 초연해졌다.


바로 다음 날 아침, 자주 가는 헤어숍 앞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문을 열었다.


"원장님, 저 머리 자르려고요."







-  To be continued on Thurs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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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브런치북] 스치듯 탈모 : 탈모 탈피 백서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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