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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Jan 11. 2024

OO 대하듯 하라, 1000만 탈모인이여!

인생 첫 탈모클리닉 방문기 1탄


띠링띠링. 눈 내린 거리처럼 깔끔하고 모노톤으로 통일된 어느 센터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손님을 맞이하는 밝은 인사가 오갔고, 반겨주시던 직원 중 한 분이 내게 차 한잔내어주었다.

상담 전 작성해야 하는 종이 차트가 있다며 커다란 큐빅이 박힌 은색 볼펜과 사전 상담표를 테이블에 올려 놓으셨다.

차가워진 몸을 뜨끈한 재스민 차로 녹이며, 차트에 요목조목 답변을 체다.

잠시 후, 차트와 함께 상담실로 안내받았다.

상담실 문을 열자,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 분이 정돈된 책상 앞 앉아 내게 인사다.

그녀는 예뻤다. 백도화지같은 얼굴에 커다란 눈,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가 또렷했다.


"리나님, 어서 오세요."

처음 보는 나를 향해 과감히 성(姓)을 떼고 다정한 이름을 불러준 그녀.


탈모클리닉 원장님이다.  

화사한 미소로  반겨준 그는 무엇이 고민이냐고 물었다.


"음... 제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지 한 5개월 됐어요. 미루고 미루다가 걱정돼서 와봤어요."


정말 용기를 내서 이곳에 찾아왔다.

나라는 사람이 두피클리닉 센터로 발걸음을 옮기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사건이 필요했단 말이다.  

 



처음에는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탈모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그럴 수 있어, 일이 많으니 그럴 수 있지.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래. 잠을 못 자서 그럴 거야.

그때마다 머리가 빠지는 원인 진단을 스스로 내리고 일상에서 결핍된 생활을 채워나갔다.

결핍된 부분을 채우면 비어 가는 머리통도 파릇파릇한 새 머리카락으로 다시 채워질 거라 믿었다.  


하나, 두어 전부터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 쓸어내리면 손아귀에 머리카락 여러 개가 빠져있고, 바로 반대편 손으로 머리를 쓸어내려도 머리카락이 여러 빠지기를 반복했다.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머리 전체를 감쌀 때 느껴지는 부피감도 예전보다 훨씬 작아졌다. 부풀었던 반죽이 줄어든 느낌이라고나 할까.

고무줄로 머리를 묶으려면 전보다 여러 번 휘감아야 비로소 짱짱하게 묶였다. 매일 점검하는 방바닥 모니터링에서는 여전히 긴 검정 머리카락이 산발적으로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우리 집에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나뿐이다.)


이런 상태로 막연히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탈모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몇 달을 지냈다. 식적으로 아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2024년1월 1일을 두 시간 앞둔 시각, 샤워한 후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문제에 직면하자!

곧장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켜고 검색을 시작했다.  '탈모클리닉'이라는 다섯 자를 네○버에 적고 인근 지역 정보를 클릭했다.


OOO두피 클리닉 센터

OO 두피 클리닉 센터

OOOO두피 케어 전문샵


사진으로 보기에도 내부가 깔끔하고 전문화된 의료 기기를 갖췄다는 OOO 두피 클리닉 센터가 눈에 들었다. 1월 어느 날 방문하기로 클릭하고 예약을 완료했다, 제야의 종을 치기 사십 오 분 전에.

망설이던 일을 실행으로 옮기니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탈모클리닉을 가겠다는 다짐다른 새해 시작이다.  

 



어여쁜 탈모클리닉 원장님 앞에 앉아 있기까지 결국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다.

쉽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탈모가 아닐 거라는, 내 머리카락에 대한 확신을 내려놓아야 했으니.  

침울해진 내가 울상 지으며 늘어놓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원장님께서는 요즘 탈모가 너무 많다고, 특히 4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여성에게 탈모가 현저히 많이 일어나는 게 현대 사회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조금 위로가 되면서도, 서글퍼졌다.

출산하고 애 키우면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이젠 머리카락까지 빠지다니...너무 억울한데. 속으로 투덜댔다.


"자, 그럼 리나님, 검사를 한 번 해볼까요?"


기다리고 두려웠던 탈모 여부 검사.

그는 첨단 두피 검사 디지털 기기를 내게 가져와 내 머리통 이곳저곳을 이 잡듯 뒤져가며 검사했다.

"아우, 음... 아이고."

머리카락을 이리 치우시고, 저리 치우시며 검사하는 선생님에게서 알 수 없는 탄식이 쏟아졌다. 멀뚱하니 앞만 쳐다보며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처음 해보는 두피 검사에 어색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벌거벗긴 것만 같았다. 난 평소에 별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머리를 감고 살아왔다.

그러니 내 두피 상태가 어떠한지 알 턱이 있나. 


내가 두피에게 지독하리만치 무심했다.  

어려서부터 피부에는 그렇게도 관심이 많으면서 두피는 다른 사람 것인 양 대하며 살았다.

짐짓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 

바지런히 내 머리통을 촬영하시던 선생님께서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앉으셨다.

짧은 침묵 방 안을 메운 공기마저 가라앉는 듯했다.


아무 말 없이 컴퓨터 마우스를 붙잡고 검사 결과를 클릭하며 자료를 송출하는 선생님.

의 날쌘 손가락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검은 눈망울이 진해지자, 내 눈빛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괜히 왔나? 검사 한 번 하려고 한 건데...그냥 나갈까?'

눈치를 살피며 갈등하던 내게, 선생님은 커다란 스크린을 돌려 보여주시며 입을 여셨다.

"리나님"

진료실을 들어섰을 때 밝고 상냥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묵중한 호명이 날아왔다.


"네."  


"탈모 중기십니다."




"뭐라고요?!"

탈모 중기십니다, 탈모 중기십니... 탈모 중기... 탈모...

짧은 한 문장이 두 귓가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을 수 없었다.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저 '탈모'라는 세계에 발 한 짝 살포시 적신 거겠지 싶었다. 한데 그냥 탈모도 아니고 탈모 중기라니!

출산 후 잠시 생기는 탈모처럼 일시적 현상일 거라는 자기 믿음이 꽤나 컸나 보다. 탈모 초기도 아니고 '중기'라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나는, 가슴 대못을 박은 것처럼 아렸다.


 "저기... 음... 탈모 중기라고 하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걸까요?"

선생님께서는 내 두피 사진을 하나하나 집어가며 설명해 주셨다.

"자, 여기 보이시죠? 각질들. 각질이 꽤 많아요. 이 각질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생기거든요. 환절기도 한몫을 하고요. 두피도 피부예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얼굴이나 목처럼 두피를 세심히 관리하지 않잖아요."

중, 고등학교 수업 시간 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으로 검사 차트와 선생님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겹겹이 쌓인 각질이나 노폐물이 모공을 막으면 두피도 숨을 쉴 수 없어요. 물론 매일 머리를 감지만 아주 꼼꼼하게 감지 않는 이상 모든 노폐물이 다 씻기진 않으니까요. 모공이 막히면 두피도 숨을 쉴 수 없고, 머리카락에서 뿌리까지 영향을 전달하지 못해요. 자연히 건강을 잃겠죠, 그러면 뿌리와 머리카락도 얇아지고, 힘을 잃어 머리카락이 잘 빠지게 되는 거죠. 자, 여기 구멍 보이시나요?"

구구절절 옳은 말씀에 숙연히 경청하던 나는, 화면에서 집어 주시는 내 두피 일부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빈 구멍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져 외로이 놓인 가여운 두피 모공.

빈 모공이 여기에, 또 저기에서도 보였다.

황망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저게 그건(탈모된 모공) 가요?'라는 눈빛을 던졌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게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선생님께서는 탈모의 원인이 매우 다양하다고 하시며, 그 대표 원인으로는 주로 카페인 다량 섭취, 수면 부족, 영양 섭취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 염색과 과다한 스트레스를 손꼽으셨다. 




다른 원인은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으나, '염색'이 탈모의 커다란 원인 중에 하나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염색약이 꽤 독해요.  그런데 우리가 흰머리가 나면서, 삼사십 대부터는 정기적으로 뿌리 염색이나 염색을 하시는 분이 많잖아요. 염색약이 독해서 자주 하면 두피까지 물들고, 피부에 스며든 염색약으로 인해 세포가 죽어요."

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답과 그에 대한 명쾌한 해설에 무릎을 쳤다.

선생님은 다시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여기, 이 거뭇거뭇한 반점 같은 거 보이시나요? 여기, 그리고 여기." 내 두피에 있는 검정 얼룩이었다. 염색약 잔여물이다.

"이게 바로 머리 염색약이 물든 거랍니다. 머리를 감아도 다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거든요. 이런 염색약이 스트레스만큼이나 가장 심각한 탈모의 직접적 요인이에요."


세상을 잃은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내게 선생님은 따뜻한 말을 건넸다.

"지금이라도 관리를 받으시면 나아지실 수 있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다시 상냥해진 선생님은 절망에 빠진 내 앞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두꺼운 갈색 커버의 파일을 들이밀었다.

파일을 열자, 프로그램과 가격표가 나열되어 있었다.


- 관리 프로그램, 가격표 -

기본 68,000원   OOO +OO+OOOO  관리

트러블성 두피 관리 75,000원  OOO+OO+스케일러+OOOO 관리

지루성 두피 관리 85,000원  OOO+OO+ 스케일러+ 마사지+ OOOO 관리

VIP 관리 120,000원 풀패키지 OOO+OO+ 스케일러+ 마사지+ 아쿠아워터 관리+ OOOO 관리


탈모 판정에서 허덕이느라 넋을 잃었던 내가 현실로 돌아와야 할 때였다.

관리하면 전처럼 풍성한 머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파일을 보며 정신을 추스렸다.

"오늘 상담 감사해요. 먼저 제 상태를 알고 싶어서 무료진단 검사를 예약했었고요, 상담 결과를 남편에게 전하고 나서 결정해야 할 거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으셨다.

"금액이 부담되시나요? 워낙 고가 기기와 제품을 이용해서요. 호호. 너무 부담되시면 신년 프로모션도 있어요. 12만 원짜리 VIP 관리를 1회당 6만 원에 받으실 수 있는 신년 프로모션이에요. 때마침 오셨으니 그거라도 해보시죠. 서둘러 손쓰셔야 하는데..."


정공법으로 다시 권유하는 선생님을 향해 나도 다시 방패를 세워 들었다.

"아, 근데 저희 부부가 돈을 쓰기 전에 서로 금액이 든 작든 의논하고 결정해서요. 또, 제가 정말 탈모 중기라고는 예상을 못해서 지금 너무 당황스러워요. 남편과 의논 후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급한 거 안다. 그럼에도 차분히 돌다리를 두드리고 싶다.

포기를 모르는 원장선생님의 치료 권유 영업과 철벽 같은 방어가 4차 전에 접어들 무렵, 선생님이 쐐기를 박는 필살기를 휘두르셨다.


간암이 왜 무서운지 아시나요?




탈모 중기 판정으로 한 방 크게 맞자, 처질대로 처져있던 내 눈이 땡그래졌다.  

"간암은 간이 아프다 싶었을 때 병원 가면 '말기'거든요. 그땐 손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어요. 그 정도로 미처 모르고 살아가면서 병 속도가 빠르게 진행된답니다.  

탈모는 바로 간암과 같이 대해야 해요.  지금은 탈모 중기 이시지만, 이대로 가버리시면 다음에는 더 악화되어 있을 겁니다."


단호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비장하게 간암과 탈모를 비유한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겁이 덜컥 났다. 영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시는 같지 않았다.


바로 지금 내가 벌써 '탈모 중기'라는 오늘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언제 이걸 예상이나 했단 말인가.


간암과 탈모 중기. 이 찰떡같은 비유에 다시 숨이 턱 막혔다. 탈모는 불현듯 다가와 급속히 진행된다는 그의 말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 두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내쉬며, 선생님애절하게 물었다.


"선생님, 급한 상황이라는 거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지금은 갑작스러워서 좀 부담돼요. 생각이 필요해요. 죄송하지만, 혹시 그사이 집에서도 혼자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원장선생님께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답하셨다.



방법이... 있습니다.





-  To be continued on Thursdays


#여성탈모 #탈모천만시대 #탈모극복기 #탈모클리닉체험기


[연재 브런치북] 스치듯 탈모 : 탈모 탈피 백서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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