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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나 작가 Feb 01. 2024

올빼미족에게 던지는 경고

우리, 조심해야 해요

가느다란 초침이 숫자 12를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58, 59, 땡, 10시.


10시다. 열 시 정각이 되면 학원을 쭉 돌아보고 강의실마다 불이 켜지진 않았는지, 온라인 lab실이나 선생님 자리에 있는 컴퓨터가 켜진 건 없는지 마지막 점검을 한다. 학원 철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어 건물 밖으로 나온다. 밤 열 시가 넘은 거리는 상가 네온사인으로 여전히 밝고 기차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이자, '자유'라는 대지가 펼쳐지는 시간이다. 학원 교육업에 종사하는 강사나 원장은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지금부터는, 내 세상이다.


스물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내 '올빼미족' 생활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부터 움텼다. 낮에는 수업을 하고, 밤에는 수업 자료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다. 수업 준비에서 손을 떼게 되자, 학원 경영이라는 분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어느 정도 수준에 다다르자, 상담 심리 공부로 날을 새다가, 그것도 어느 정도 공부하자 대학 입시 상담 준비를 하느라 뜬 눈으로 해 뜨는 걸 맞이해야 했다. 이런 치열한 생활을 20년 넘게 이어오더니 언제부턴가 그냥, 올빼미족으로 살게 되었다.


고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우선 TV부터 켠다.(20대까지는 연장되는 일이나 공부에, 30대에는 TV에 빠져 살았다) TV 소리에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를 뒤적거리다가, 냉장고 옆에 붙어있던 치킨집, 닭발집, 짜장면집, 족발집 전단지를 쭉 훑어보며 그냥 주문해서 먹을까 망설인다. '맥주 한 캔이랑 먹으면 딱인데...' 라며, 그날 당기는 메뉴로 주문을 하고 소파에 철퍼덕 드러눕는다. 이럴 거면 고민은 왜 하는 건지, 돌아보면 대부분은 주문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마른빨래와 뒤엉켜 소파에 드러누운 나는 음식이 배달될 때까지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가며 오늘 밤 날 즐겁게 해 줄 프로그램을 고른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배달 오면  TV를 보며 양념치킨 한쪽을 물어뜯는다. 맥주도 벌꺽 들이켜고, "캬! 오늘 고생한 날 위해 이 정도 낙(樂)은 가져줘야지", 라며 이 순간을 음미한다. 부른 배를 감싸며 멍 때리다가 눈꺼풀 둔탁해지면 슬슬 씻으러 화장실로 기어간다. 꼼꼼하게 클렌징을 마치고 거실을 정리하고 방에 가서 드러누우면 침대 옆 탁상시계는 얼추 새벽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늘 그랬다. 

 



여기까지가 지금껏 이십이 년 넘게 살아온 내 라이프 패턴이다. 올빼미족 삶에 익숙해지기까지 불과 몇 개월이 소요되었고, 숙해지자 야밤 생활을 벗어나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밤늦게 자는 패턴으로 내 나이의 절반 넘게 살다 보니 바꾸는 건 몹시 어려웠다. 좋은 취지로 '미라클 모닝'에 참여하려고 시도했으나 일주일 정도 가다가 다시 원상 복귀했다. 이른 새벽, 침대와 몸이 하나 되어 일어나기 어려웠다. 그뿐인가.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는, 나만의 온전한 밤도 그리웠다.


한데 이제는 정말 라이프 패턴을 반드시 바꿔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내게 다가온 것이다. 올해 1월 초 만나 뵌 탈모클리닉의 원장님이 내게 속삭이셨다.


"탈모의 가장 큰 원인이 뭔 줄 아세요? 스트레스요? 스트레스 중요하죠. 근데 그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어요. 바로, 잠입니다. 잠! "


"잠이요? 잠은 충분히 자는 거 같은데요?"


"몇 시에 주무시는데요?"


"음... 제가 원래 늦게 자는데,  새해에는 생활 패턴을 바꾸려고 하거든요.(새해에는 으레 다짐하니까) 요즘은 11시에서 11시 반이면 자요."


"이제 더 일찍 주무셔야 합니다. 잠자는 시간이 중요하거든요.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는 인체 내 세포 생성과 회복이 이뤄지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에요. "



원장님께서는 인간의 생체 리듬과 호르몬, 세포 생성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다. 밤 아홉 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서 열 시부터 수면을 취해야,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몸속 생성되는 세포와 회복되는 세포의 활동이 원활이루어진다고 한다. 피부 재생만 이 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혈류도 증가하고, 체내 신체 모든 기관이 회복하는 황금 시간, 반드시 인간이 자야만 하는 시간이라고 거푸거푸 강조하셨다.


요즘 현대인에게 올빼미족, 야근 등 이런 생활이 자리 잡으면서 어느새 인간이 마땅히 자야 하는 시간에 자지 않게 되었고, 늦게 자는 잘못된 생활 습관이 탈모의 주된 원인이기도 전문가의 진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생활 습관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였구나.' 


탈모 후, 머리가 자라나야 하는데 이 황금 수면 시간에 자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두피 속 세포가 생성되지 않는다며 선생님께서는 당장 생활 패턴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하셨다. 갑자기 덩그러니 놓여있던 내 빈 모공 사진이 떠올랐다. 이 악물고 바둥바둥 사느라 그렇게 된 건데, 결국 나 스스로 탈모를 초래한 셈이었다.

원장님께서는 이와 더불어 한 가지 더 당부하셨다.  


"머리는 하루 중 언제 감으시나요?"

"밤에 감았더니 머리가 길어서 잘 안 마르고, 엉망이 되길래 아침에 일어나서 감고 출근해요."


"앞으로 머리는 밤에 감고, 잘 말리고 주무세요."




"우리가 저녁에 집에 오면 하루동안 쌓인 먼지 때문에 더러워서 씻죠?"


"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감아도 결국 출퇴근길에, 또 일하면서 먼지와 오염물이 달라붙죠. 그렇기에 머리도 밤에 감아줘야 합니다. 아니면 밤사이에 더러워진 노폐물이 두피에 잔뜩 쌓여서 수면 시간 동안 일어나는 세포 활동에 지장을 주거든요. 머리는 반드시 밤에 감아야 합니다. "


이런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뒤통수를  기분이었다. 원장님께서는 밤에 머리를 감고 머리 전체를 완전히 건조하면 너무 좋겠지만, 수면이 늦어질 거 같으면 두피 부분만 잘 말리고 자라고 하셨다. 차라리 그렇게 해서라도 밤에 감고 자는 것이 두피 건강을 위해 좋다 말이다.





미처 생각 못 했을까? 이런 생활 방식이 내게 독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정을 넘어서 자는 건 그저 내 삶이요, 출근  머리를 감는 것은 깔끔하게 단장하기 위한 일상 습관이었다. '늘 실패했던 아침형 인간에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던 1월 차디찬 어느 날 여전히 기억한다. 


그 후로 집으로 돌아와 생활 패턴에 변화를 줬다. 평생 안 바뀌던 생활 습관을 놀랍게도 '탈모 중기'라는 시련을 겪으면서, 단 한 번에 고쳤다. 탈모 클리닉에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아침 5시에 일어났다. 그다음 날에도 5시 10분, 5시 30분, 다시 5시 기상. 이렇게 일주일 이어가다가 주말에 좀 늘어지게 잤다. 비슷하게 몇 주를 보내고, 지금은 안정적으로 5시면 눈을 뜬다. 이게, 절박하니 되더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밤 9시면 머리를 감고 10시에는 어떻게든 잠에 들 수 있도록 분주히 움직였다. 아무리 일이 있어 늦어지더라도 10시 30분 안에는 자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지내기를 벌써 한 달이다. 


지금도 머리는 밤마다 감고 있다. 매일 감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늦어지면 다음 날 감았다. 일주일에 5~6일은 감는 거 같다. 한 달 동안 습관을 잡으니 머릿결도 훨씬 더 좋아지고, 머리털이 덜 빠지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한 달 가지고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나아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최측근인 남편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이렇게만 지내면 탈모가 멈추게 될까?

자칫 까먹을 뻔했던 원장선생님의 조언 하나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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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브런치북] 스치듯 탈모 : 탈모 탈피 백서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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