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관찰일기 05화

버스 안, 아주머니의 분노

그녀의 화는 어디서 오는가

by 서글

이어폰을 꽂고 올라탄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후의 버스 안. 중요한 일정으로 인해 급하게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막 실은 차였다. 뒤 귀를 막은 이어폰에서는 요즘 꽂힌 적당한 리듬감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바깥을 돌아다닐 때 들리는 온갖 소음을 막아주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만든 사람을 나는, 조금은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날씨는 아직 꽤 더웠지만,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버스 내부는 꽤 쾌적했고, 나는 땀을 말리며 조금 생긴 여유에 숨을 돌리고 있던 터였다.


아쉽게도 잠깐의 평화는, 급하게 맺은 휴전 협정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깨지고 말았다. 한 아주머니의 날카로운 외침이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내 두 고막에 침투했다.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그 말을 듣고 창밖을 보니 버스는 아직 정류장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2~3m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있었다.


"여기는 위험해서 안 돼요."

버스 기사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규정으로도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승하차를 하다 문제가 생기면 버스 기사가 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아직 정류장과 떨어진 차도 한복판이었기도 했고 말이다. 아주머니는 우선 한 보 물러난 듯했지만, 그녀의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듣던 노래가 여전히 후렴에 도달하지 못한 걸 보면 말이다.


"아저씨, 그냥 문 좀 열어주면 안 돼요?"

아까의 외침보다 조금 더 짜증이 섞여있었다. 짜증인지, 분노인지 그 중간쯤 어딘가인 듯했다. 그 쯤에서 나는 노이즈 캔슬링을 끄고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보다 더 흥미가 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위험해서 안 돼요."

기사님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사실이 그녀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여기가 뭐가 위험해요. 안 위험해요."

아주머니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본인의 주장에 힘을 싣고자 했지만, 기사님은 묵묵부답이었다. 아직 정류장까지는 거리가 남아 있었고, 규정을 따라야 할 뿐인데 어쩌겠는가. 상대가 반응을 해주지 않자, 아주머니의 모노드라마가 이어졌다. 배우의 감정선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아, 진짜 열받아!"

"아, 답답해 죽겠네!"

"아, 짜증 나! 왜 이렇게 시간을 끌어!"

그녀의 대사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라는 단말마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는 많은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한글자이다. 정류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기 전까지 그녀의 대사는 길게 이어졌다. 자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그것은 다른 승객들에게 들리게끔, 꽤나 큰 볼륨과 발성이었다.


아마 그녀의 하루는 썩 즐겁지 못한 날이 되었을 것 같다. 버스에서 짜증 나는 사람을 만났고, 답답하고 억울한 상황을 겪었다고, 그녀 스스로 한 장면을 만들어 연출 및 출연까지 수행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언제나 객관적으로 주어지고, 해석하는 것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대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대사를 뱉을지는, 인생에서는 감독이 정해주지 않는다. 전부 '(애드리브)'라는 지문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 애드리브에 따라 상대 배우의 반응이 달라지고, 상황은 매번 다르게 흘러간다.


스스로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그 안에 몰입하고 갇히게 되는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문득 나는 저런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나,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괜히 짜증을 부리고 집에서 나온 아침의 일이 떠오르기도, 몇 달 전, 친구와 다툰 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을 했던 것일까. 나도 제3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받아들여지지 않을 고집을 부리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그녀의 분노는, 나의 분노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어쩌면 나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 이제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고 행동할 수 있게끔 의식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던, 어느 평화로운 버스 안에서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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