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수액이 안 들어간다며 주삿바늘을 다시 꽂았다. 이번에 오른쪽이다. 혈관이 잘 보이는 편이라 주사 여러 번 맞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네 번째 구멍이다. 오른팔에 주사를 놔줘서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편안하다. 그런데 주삿바늘을 다시 꽂으니 밤에 자꾸 공기방울 들어갔다고 기계가 울린다. 몇 번이나 깨어 간호사실에 전화했다.
이제 슬슬 자극 없는 식사가 지루하다. 자극적인 음식이 먹고 싶다. 느끼해..
또 저녁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금방 돌려보내고, 무의미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정말 맛없게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시간이 너무너무 안 가니 잠을 자게 된다. 고생하는 남편을 부르고 싶지 않은데, 점점 남편 오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그래도 오늘은 배도 하나도 안 뭉치고 회사에서 연락도 안 왔다. 퇴원은 못하지만 내일까지만 견디면 무거운 기계는 떼어버리고, 가벼운 마그네슘 하나 맞는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적어도 화장실 가기는 편하겠지!
이제 슬슬 우울해진다. 바깥을 보고 싶다. 창문 밖엔 바로 벽이 있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갇힌 것 같다. 이렇게 최소한 삼일은 있어야 한다니.. 과연 내가 둘째를 가질 수 있을까? 임신과 출산을 한 번 더 반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지금 생각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싶다.
오후엔 회사에서 두 번 정도 연락이 왔는데 큰 스트레스는 안 받았다. 출근도 다음 주까진 못한다고 연락해두었다. 다섯 시까지 온다는 남편이 다섯 시 반에 와서 화가 났다가, 디카페인 커피랑 피자를 싸온 남편이 사랑스러웠다가, 발목 주물러달라고 하는데 장난치는 남편이 미웠다가 재미있게 놀면 또 사랑스럽다. 기분이 요동을 친다. 임신해서 그럴까 입원해서 그럴까?
남편이 가고 나니 또 우울하다. 감금생활이 길어지니 괜히 화가 난다. 나는 분명 산후우울증에 걸리겠구나 싶다. 전업주부는 못할 상이다.
12시쯤 약 끝나면 마그네슘으로 바꾼다고 해서 안 자고 기다리는데, 계속 팔이 뻐근하다. 약은 다 들어갔는데 줄엔 좀 남아있었고, 아직 열두 시가 안되어 화장실이나 다녀오려고 했는데 피가 50센티는 역류해 있다. 알고 보니 트랙토실 말고 수액이 떨어진 지 한참이었다. 화장실 가다 간호사실에 말해 마그네슘으로 바꾸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어깨랑 팔이 뻣뻣하고 뱃속에서 뚝딱이 태동이 활발해진다. 괜찮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특히 팔, 어깨, 등에 힘이 안 들어간다. 마치 몸살 났을 때의 느낌이다. 황산마그네슘 주사에 대해 검색해보니, 온갖 안 좋은 이야기만 나와서 걱정이다. 첨에 주사 맞을 때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 줘야 하지 않나? 의사 선생님도 없는 날인데..
괜히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것 같고 심박수도 올라가는 것 같아 긴장이 된다. 컨디션이 너무 나빠 한숨 자고 싶은데, 자다가 숨이 멎어 죽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어 자지 않고 간호사 선생님만 기다렸다. 오늘따라 간호사 선생님은 오지를 않는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링거가 하나만 있으니 조금 간편해져서 일단은 일어났다.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5층 병동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너무 답답한 느낌이 들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으나 찾아봤지만 나갈 길이 없었다. 왜 간호사실에 물어볼 용기는 안 나는지 모르겠다. 참 희한하지.
병실에 돌아와서 쉬는데 아침보다는 조금 낫다.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물어보니, 이 약이 원래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상태도 조~금 나아졌고 원래 그런 거라 하니 안심이 된다. 점심 먹고 쉬는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남편도 기다려지고 자꾸 우울해져서 씻기로 했다. 내일쯤 주삿바늘 바꿀 것 같은데..
씻고 나와도 시간이 안 간다. 남편만 기다려진다. 회사 생활과 나름의 병간호, 강아지 케어까지 하고 있으니
잘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나는 임신 중인데 이런 거라도 고생해야지! 하는 양가감정이 든다. 그래도 잘 쉬고 지치지 않게 해 주고픈 맘이 크다. 육아는 장거리 레이스인데 낳기 전부터 지치면 안 되지.. 서로 지금처럼 배려하며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트랙 토실을 떼어서 그런지 오후 두 시부터 네 번쯤 배가 뭉쳤다. 이 이상 심해지지 않았으면.. ㅠㅠ 출산 때까지 퇴원 못한다 생각하기로 했지만 정말 퇴원하고 싶다. 얼마나 퇴원하고 싶냐면, 병원생활이 답답하고 지루해 조리원에 가기 싫을 정도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는 맘에 열 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여섯 시가 되기 전 혈압을 재러 왔다고 깨웠다. 치마로 된 환자복을 입고 있으니, 자꾸 자다가 옷이 엉덩이까지 올라간다. 바지를 줬으면 좋겠는데 산부인과 특성상 치마가 편하겠지 싶다.
잘 자고 있는데 밥이 와서 또 깼다. 또 자는데 옆자리에서 밥 먹는다고 불 켜서 또 깼다. 첨으로 챙겨 온 안대를 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곧이어 쓰레기통 비우러 오는 소리에 깼다. 잘 자고 있는데 오늘 주사 바꾸는 날이라고 온다. 어제 꼼지락대면서 씻었는데 역시 오늘 바꾸는군, 그래도 어제 씻었으니 오늘은 바늘만 바꾸고 다시 잤다.
자고 있으니 또 와서 주삿바늘을 빼준다. 잠시의 자유를 누리려 물도 뜨고 화장실도 가고 조금 움직였다. 한참 후 주사를 바꿔주러 오셨다. 오른손잡이인데 왼쪽이 낫지 않겠냐 하는데, 이상하게 오른쪽이 편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점심때쯤 되어 불을 켜고 일어나 병동 한 바퀴 산책을 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햇볕도 쬐었다.
드디어 진료받는 날. 하루 종일 진료받기만을 기다렸다. 언제쯤 본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지금일까? 지금일까? 생각하니 하루가 더디다. 17시 30분경 밥이 나왔는데, 너무 맛없어 보여 다른 걸 먹으려던 참에 간호사실에서 호출이 왔다. 경부 길이가 좋으니 낼 아침에 수액 떼고, 수축 검사하고 오후에 퇴원이란다. 신난다.
오전에 수액을 떼었다. 내내 수축도 없고 상태가 좋다. 점심 먹고 한시에 수축 검사를 했는데, 20분 동안 2번이나 수축이 잡혔다 ㅠㅠ 분명히 오전엔 괜찮았는데.. 진짜로 괜찮았는데.. 간호사 선생님 손이 차가워서 더 수축이 오는 거 아냐? 하며 탓하는 마음이 들었다. 퇴원 못하면 어쩌지 정말 정말 걱정했는데 그래도 경부 길이가 길고 안정적이니 일단 퇴원 허락이 떨어졌다.
남편이 근무를 뺄 수가 없어서 근처에서 일하시는 시어머니께서 퇴원을 도와주러 오셨다. 혼자 가려면 막막했을 텐데 다행이다. 태아보험에 산모 특약을 들어 입원일당도 나온단다. 40만 원가량 병원비가 나왔는데, 엄마가 보내준 돈과 입원일당으로 처리해서 부담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커피라도 한잔할래? 하셨는데, 왠지 조심스럽고 금방이라도 수축이 다시 잡힐 것 같아 집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강아지랑, 어느새 따뜻해진 날씨, 겨울이 지나가버린 창밖 풍경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뚝딱아, 이제 엄마 뱃속에 조용히 있다가 4월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