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신체의 균열과 불안의 그림자
"장난치지 마"
처음 어머니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때의 어머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칭얼대는 날 알아서 놀라며 보내 놨더니, 울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달려와서 하는 소리가 "나 왼쪽 손이 안 움직여"라니.
축 늘어진 왼손을 오른손으로 들어 눈앞에 흔드는 아이에게서 심각성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었을까.
"진짜 안 움직여."
나는 여전히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 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내 안에선 이미 현실과 동떨어진 감각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갑자기 움직이지 않은 손, 말을 듣지 않는 내 왼팔은 끔찍한 악몽처럼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아, 이건 꿈일 거야'라며 끝없이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나 내게 팔을 움직여보라고 재촉하셨지만, 그것은 여전히 축 늘어진 채 오른손에 시체처럼 붙들려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어머니의 얼굴에 당혹감과 불안이 스치는 것을 봤다.
나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보관함 앞 긴 소파에 앉히고는 채 마르지 않은 내 몸 위에 허둥지둥 옷을 입히셨다. 나는 그때 어머니가 화가 나신 건지, 아니면 내가 이 상황이 두려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무서웠다.
그 순간, 내 몸은 힘없이 왼쪽으로 스르르 기울었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온몸에 힘을 줘 똑바로 앉으려 애를 써도 소용없었다.
마치 다른 중력이라도 작용 하는 듯, 내 몸은 자꾸만 소파의 등받이에 짓눌렸다.
다급해 보이는 어머니를 부를 수 없었다. 혼자 끙끙대며 버티려 애쓰다 문득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역력했지만, 목소리만큼은 퍽 다정했다.
"그냥 누워"
혼날까 두려움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그제야 편안해졌고, 몸을 기댈 수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까지, 어머니에게 이끌려 걸어갔다.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앉아있을 땐 말을 듣지 않던 몸이, 서있을 땐 멀쩡하다니.
마치 버그 걸린 게임 캐릭터라도 된 기분이었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병원이 많지 않았지만.
잔병치례가 잦아 늘 들르던 1차 병원, 소아 응급실은 다행히 열려있었다.
어머니는 그곳까지 말 그다로 '밟았다'.
평생 안전운전만을 고수했던 어머니가 그렇게 속력을 높이는 건 처음 봐서, 당시의 그 상황 속에서도 놀라워 했다.
차 뒷자석에 길게 누워 어머니의 한 손을 꼭 잡고 창문 밖, 푸르고 높은 하늘을 응시했다.
저 하늘이 마치 내게 '괜찮을거야, 아무일 없을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해서,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망설임 없이 나를 업으셨다.
따로 업어달라 보채지 않았는데, 그만큼 당신이 불안하셨다는 거겠지.
나는 군말 없이 축축한 물기와 땀이 뒤섞인 어머니의 등에 업혔다. 나를 업어주신 기억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그 와중에도 이 순간을 즐겼다.
병원은 일요일 소아 응급실 답지 않게 고요했다. 아마 환자라고는 나 하나뿐이어서 그런걸까.
어머니는 나를 이동식 베드에 눕히고는, 의사 선생님께 다급하게 내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마치 내가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청진기를 대고, 플래시로 눈을 비춰보고, 이런저런 진찰을 이어갔다. 그중 무릎을 고무망치로 톡톡 두드려 반사 신경을 확인하는 검사도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왼쪽 다리 차례였다.
-톡
분명 다리가 움찔하며 반응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쩐지 오른쪽 다리보다 감각이 둔하고 반응이 미약했다. 그때의 나는 '뭐, 별거 아니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어린 나를, 나는 아직도 후회한다. 그 순간, 선생님께 그 미묘한 차이를 말했더라면...
몇 가지 추가 검사가 더 이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베드에 누워 천장의 지렁이 모양 얼룩 개수를 세고 있었다. 그와 달리 의사 선생님과 어머니의 대화는 점점 심각해지는 듯했다.
"응, 많이 심각한가 봐.."
어머니의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는 지금 병원으로 오고 계신다고 했다.
내 가슴은 뛸 듯이 설레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은 평일이면 밤늦게나 볼 수 있었고, 주말엔 아버지마저 잠에 취해 계셨으니, 아파야 비로소 두 분의 온전한 시간을 나에게 할애해 주셨기 때문에 좋았다.
아이같다고? 어쩌겠나, 나는 아직 7살인 걸.
"조금 자..."
어머니는 계속 내 눈을 감기려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애정 어린 눈빛이 좋았고,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시는 손길이 좋은데, 어찌 눈을 감고 잠들 수 있겠는가. 이제 곧 아버지도 오실텐데!
간호사 선생님이 다가와 "깨어있죠?", "대화하고 있죠?"라며 연신 확인했다.
병원에 환자가 나뿐이니 특별 대우를 해주는 거라고, 나는 천진난만하게 착각하고 있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3차 병원에 연락을 돌리고 있습니다. 주말이라 출근한 전문의가 없어 조금 먼 곳까지 구급차로 이송해야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전, 기다리던 아버지가 응급실러 들어섰다.
"아빠!"
링거를 맞고 베드에 누워있는 나와 짧게 눈이 마주쳤을 뿐. 아버지는 곧장 의사 선생님에게 다가가 다급하게 내 상태에 대해 물었다.
정작 환자는 여기 있는데, 내게는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온 신경을 쏟는 아버지가 어린 마음에 조금 서운하게 느껴졌다.
커튼 너머에 가려져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그 순간의 무게를, 훗날 어머니의 설명을 통해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차분하고 굳건했다. 그녀는 그저 내가 아프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와 치료받고 나으면 된다는, 단순하고도 희망적인 기대를 품고 있었다.
불안감은 감춰진 미지의 영역 속에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언 단어들을 이해했고, 스크린에 띄워진 내 뇌 CT 사진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새하얀 우뇌의 절반을 삼킨 검은색의 거대한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절망적인 가능성들이 폭풍처럼 몰아쳤을 것이다.
그의 얼굴이 온 세상을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굳어지는 것을 어머니는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새하얀 우뇌의 절반을 집어삼킨 검은색의 정체.
그래, 뇌출혈이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잘 몰랐기에, 태연했고.
아버지는 그 사진을 잘 알았기에,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