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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수아 Oct 19. 2023

장기 관점에서 커리어 쌓기

방향만 잘 잡는다면 멀어도 언젠가는 도달한다.

몬트리올에 오기 전 서울에서의 약 6년간의 경력을 요약해 보면, 해외 게임업계 동향을 염두에 두며 경험의 범주를 넓혀가는 과정이었다. 해외 취업이 아니더라도, 국내외 게임업 동향을 살피는 것은 자기 객관화와 더불어 성장에 있어 좋은 연료가 된다. 때로는 잘 가공된 GDC 강연 등을 보며 “우리는 왜 이렇게 못하나”라는 막연한 불만을 품기도 했다.

유명하고 잘 만든 게임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특징들, GDC 등 개발기에서 공유해 주는 내용에 기반해 가설을 세우고, 해당 방향으로 직무를 움직여 갔다. 운도 따라줘 경험해 볼 수 있는 환경과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잦은 변화 때문에 불안정하고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고, 몬트리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UI 아티스트에서 UX 디자이너로


나는 커리어를 UI 아티스트로 시작했는데, 천천히 UX 디자인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느끼는 차이점이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정의하기 어려웠고, 개인적인 의견일까 싶어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점차 UX 책과 아티클, GDC 등의 공부를 통해 실무에서 생각하던 방향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UI 스타일과 화면설계는 다르다

한국의 게임 UI 디자이너는 보통 아트팀 소속이고, 장식, 아이콘, 연출 퀄리티 위주로 작업한다. 따라서 팀이 크고 직무가 세분화되어도 UI 모션, 아이콘 제작, 등 비주얼 단위가 기준이 된다.

출시가 코앞이면 UI를 전체적으로 여러 번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티 내기 좋다.”는 이유로 UI를 전체적으로 갈아엎기도 했다. 하지만 비주얼을 아무리 개선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거나, 화면이 나오는 순서가 문제라면 소용없지 않나? 또 레이아웃을 잘 정리해 두면, 효율적으로 여러 가지 비주얼 방향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이 둘은 다른 업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듀랑고의 경우엔 UI 디자이너가 게임 디자인팀 소속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팀에서 UI를 본질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UI는 게임 아트를 반영은 하되 전부가 아니고, 레이아웃은 시각인지에 민감한 UI 디자이너가 다루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고에서 직군에 대한 설명은 다른 회사들과 유사했다.

여전히 명쾌하지 않아 웨스턴의 큰 회사들은 어떤 식으로 공고 글을 내는지 살펴보았다. 해외 취업에 관심이 있어서도 있지만, 공고 글이야말로 회사가 직군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EA의 Job description -  Senior UI artist / Senior UX designer


큰 게임 회사(EA, Ubisoft, Epic games, King, etc)는 UX 디자이너와 UI 아티스트를 따로 고용한다.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면 UX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게임을 접할 때 경험하는 것들을 정의하고, 정의된 데이터 지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프로토타이핑 등을 통해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UI 아티스트의 경우 한국의 UI 아티스트 구인 글과 유사한데, 아트 방향에 맞춰 고품질의 인터페이스 비주얼을 정의하며, 엔진 작업을 하기에 기술적인 지식도 겸비하면 좋다.

UX 디자이너의 경우 IT 업계의 UX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비슷한 업무를 한다고 적혀있다. 즉, 해당 지식을 게임에 어떻게 응용할지 선례가 어느 정도 쌓여있고 해당 직군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는 뜻이다.   


이미 정의되어 있는 UX 개념과 방법론들

자유도 있게 처음부터 혼자 UI를 쌓을 기회가 있어 데브캣 스튜디오의 PC 프로젝트로 옮겼다. 책과 여러 아티클에서 본 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인터페이스를 그리기 전 정보를 먼저 정리하고 이해하기 쉬운 멘탈모델을 만드는 것. 인터페이스를 만들더라도 장식 없는 선과 면 단계에서 이해하기 쉬운지를 먼저 검증하는 것 등…

UX는 웹과 더불어 발전해 왔기 때문에, 찾아보면 오래전에 정의되어 있거나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당시 작업을 하던 도중에 알게 된 것도 있고, 좀 더 UX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 깨달은 것들이 있는데, 해당 개념을 알게 되면 새롭게 무언가를 알게 된 느낌보다는 “아, 이게 이거였고, 역시 중요했구나” 싶은 게 꽤 되었다.

예를 들자면 와이어 프레임, 인포메이션 아키텍쳐, 유저 플로우 같은 것들이다. 장식을 얹기 전 레이아웃은 와이어 프레임이었다. 무언가 사용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깊이가 깊어지는 건 유저 플로우를 잘못 디자인한 것이다. 어떤 정보를 찾을 때 늘 헷갈리거나, 너무 널리 퍼져있다면 인포메이션 아키텍쳐가 잘못 형성된 것이다.



UX 리서치를 경험하다


어쩌다 리서쳐로 전직을

PC 프로젝트를 한창 개발하던 당시, 넥슨은 한차례 전사적으로 개발 중이던 신작들을 솎아냈다. 아쉽게도 우리 프로젝트는 캔슬되었고, 데브캣 스튜디오에선 캔슬된 프로젝트의 사람들은 조건 없이 살아남은 사내 프로젝트로 가도 좋다는 온정적인 결단을 해주었다.

당시 나는 책을 넘어 UX가 정확히 뭔지 더 알고 싶었다. UX 석사도 고민하던 찰나, 듀랑고와 PC 프로젝트 리서치 및 분석을 도와주셨던 P님과 대화해 볼 기회가 있었다. 마침 UX 분석가 직무가 열려있었고, 운 좋게 갈 수 있었다.

다만 와보고 나니, 리서치와 디자인은 실무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나는 실험 설계와 이에 기반한 논문을 써본 경험이 없었다. 어찌 보면 팀이나 나 상호 간에 가능성만 보고 결정한 셈이다. 혹은, 게임업계 내 개발 경력이 꽤 있으면서 UX를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거나.


무엇을 배웠나

특정 게임팀에 소속된 리서쳐가 아니고, 다양한 게임팀의 각각 다른 이해도와 니즈를 바탕으로 의뢰를 받아 리서치를 수행하는 팀이었다. 해서 아무래도 익숙한 FGT 등의 유저테스트와 설문조사 의뢰가 많았다. 하지만 어쩌다 다양한 방법론을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팀원들은 다양하게 접근해 보고 싶어 했다. 구성원들이 공학, 통계학, 마케팅 등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이 경험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내가 뭘 하고 싶으며,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줬다. UX에 대해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UX라는 단어가 다소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안다. 나 또한 UI가 UX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인터페이스의 경험은 프로덕트를 둘러싼 유저의 경험 중 일부이다. 게임은 특히나 별도의 게임 룰이나 가상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터페이스과 유저 경험을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마지막 단에서 문제를, 해결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 인터페이스기에 UX 디자이너가 목업을 만드는 것이다.


학문적 지식이 디자인 퀄리티와 스킬을 담보하는가

그렇다면 리서치 방법론을 포함해 UX에 대한 학문적인 지식이 있다면 디자인을 잘하는가? 방향을 잘 잡게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지식과 경험은 조금 다른 것이고, 문제를 잘, 효율적으로, 빠르게 해결하는 것은 기존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실제로 해결해 본 경험이 많아야 한다. 해서 UX 디자이너로서 성장하고 싶다면 한 번쯤 거치면 좋겠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느껴졌다.

마찬가지로, 디자인 경험이 있다고 해서 리서치를 잘하느냐? 그 또한 그렇지는 않다. 실험 설계 및 집행, 분석을 다양하게 많이 해봐야 한다. 다만 리서치란 말 그대로 통제된 상황에서 학문적 실험을 말하며 아무래도 경험을 쌓으려면 대학원을 거쳐야 할 것 같다. 이 부분이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해외의 개발 파이프라인을 알게 되다

UI 아트로 시작해, 와이어 프레임을 활용한 프로토타입, 설문조사 등을 활용한 UX 디자인, 마지막으로 UX 리서치를 차례로 경험했다. 공고에 쓰인 글로 “아마도 이런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을 것이다”를 추측했지만, 실제로 어떤지 너무 궁금했다.


운이 좋게도 King에 UI artist로 4년째 근무 중인 H 언니를 통해 어떤 식으로 개발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정량적인 방법, 정성적인 방법 모두를 활용해 탄탄하게 개발해 나간다는 인상이었다. 또 이렇게 포멧화가 됬다는 건, 상당히 오래전부터 데이터드리븐 디자인을 진행해 오며 폴리싱을 거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쉬웠던 점

유저 리서치는 실제 유저 반응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데이터를 정교하게 뽑아내는 업무들로, 개발자의 시각으로 봤을 때 너무 좋았다. 아티클 등을 보면 웨스턴 쪽에선 리서치가 파이프라인에 잘 녹아 들여져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 과정이 업계 보편화가 되면 너무 좋겠다 싶었다.

다만 팀 내에 아무래도 게임 개발을 해본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가끔은 게임을 표면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물론 특정 게임을 깊이 있게 플레이해 코어 유저로서 당사자성이 있거나,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수도 없이 수집하고 찍먹해봤거나 하는 경우야 당연하게도 좋은 인사이트를 갖고 실험을 설계하셨지만…

이 팀은 결국 다른 큰 웨스턴 게임 회사와 비슷하게 중앙의 리서치 팀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한국은 빨리 발전하고 그만큼 게임 업계에서 해당 팀의 니즈는 많아질 것이므로 앞으로 역할이 더 커질 것이다.

문제는, 내가 팀에 온 목적은 UX를 더 잘 이해해 디자인을 잘하기 위함이었다. 적성에 더 맞았다면 진지하게 고민했겠지만,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보다는 주도적으로 여러 액션을 통해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와본 결과


내가 해외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게임의 UI는 어떤 관점에서 다뤄질 것이다, 의 가설이 어느 정도 일치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관련 직무를 모두 실무로 경험해 보았다.

현지에 와보니 좀 더 업계 보편적으로 UX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게임 업계 또한 Candy Crush의 King이나 EA, R6S나 Assassin creed 등 Ubisoft의 유명 프로젝트 등 정도가 개발 파이프라인에 UCD가 잘 안착되어 있는 듯하다. 내가 입사한 회사도 Activision 소속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고, 건너 오랫동안 메인 스튜디오로서 개발 경험이 있는 Infinity Wards, Treyarch, Raven 등이 체계가 잡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장선으로 Halo3가 MS와 인수 후 내부적으로 협업하며 진행했던 Usability test에 대한 글을 본 적 있다. Halo3가 2007년에 발매된 것을 고려한다면, 2010년이 되기 전에 UX research를 게임에 접목한 사례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 후대 회사라 할 수 있는 Bungie가 어떤 파이프라인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참조: How Microsoft Labs invented a New science of Play - 한글요약본)

또, insight 팀을 예전부터 운용한 Riot Games가 어떤 식으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을지, 어떤 것을 평균적 기조로 삼아 일하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참조: Jakob Nielsen, Games User Research: What’s Different?)

이제 가까이 왔으니 더 부딪쳐 공부하며 경험을 쌓는 일만 남았다.


이다음으로는 해외 이직을 위해, 쌓아온 커리어를 어떤 식으로 정리하고 준비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 작성된 글입니다. 관련해 여러 가지 의견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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