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함정, 착각
"전임자도 똑같이 일했는데요?"
예전에 잠시 협업했던 조직에서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그 말은 '설명'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설명이 아닌, 예상이자 기대였고, 때로는 변명에 가까운 말이었다.
조직에서 이 문장은 유난히 빠르게 등장한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 이전 사람이 하던 방식이 그대로 재현되지 않을 때, 문제의 원인을 차분히 살펴보기도 전에 가장 먼저 호출되는 문장이다.
전임자가 그랬으니, 당신도 당연히 똑같이 할 줄 알았다는 말, 그 문장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착각이 숨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사고방식을 두고,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새로운 대상을 평가할 때 개별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대표 사례’에 대입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새로운 대상을 평가할 때, 개별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대표 사례에 대입해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조직 안에서는 이 대표 사례가 종종 '전임자'가 된다. 전임자가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면, 그 사람은 곧 기준이 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느 순간부터 설명되지 않는 전제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다. 사람을 보기보다 역할의 그림자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리듬으로 일하는 지보다, 그림자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먼저 확인하게 된다. 물론 그림자를 확인하는 일은 빠르다. 하지만, 빠르다는 이유로 선택된 판단은 종종 중요한 정보를 놓친다.
조직에서 이런 착각이 쉽게 강화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조직은 기본적으로 '안정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복잡한 판단이 필요한 상황일수록 이미 검증된 틀을 재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때 전임자의 성공 사례는 조직 입장에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기준'이 된다.
새로 정의할 필요도 없고, 다시 설계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묻지 않게 된다.
'이 역할이 정말 같은 역할'인지, '과거와 지금의 환경에 달라진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사람은 바뀌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는 왜 그대로인지'.
그런데 이 착각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기대 불일치’가 생겼을 때 불쑥 찾아온다.
“왜 이렇게 처리 속도가 다르지?”
“전임자는 퇴사 직전에도 알아서 했는데”
“경력이 있으니, 이 정도는 설명 안 해도 할 줄 알았어요”
이 말들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비교 대상이 잘못 설정되었음을 드러내는 신호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 인물을 기준으로 현재를 재단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 결과, 새로 온 사람은 아직 배우는 중임에도 ‘부족한 사람’이 되고, 조직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기대를 ‘암묵적 기준’으로 유지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착각이 개인에게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과거의 자신을 전임자처럼 사용한다. “예전의 나는 이 정도는 쉽게 했는데", “그때는 안 헤맸는데”, “왜 지금은 이러지?” 이 역시 같은 구조의 착각이다.
환경이 바뀌었고, 요구되는 역할이 달라졌고, 뇌가 사용하는 모드도 모두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숙련된 자신을 현재의 기준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 비교는 늘 현재의 '나'를 패배자로 만든다.
조직에서든 개인에게든, 이 착각의 핵심 문제는 하나다. 상황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지 않고, 맥락을 생략한다는 점이다. 전임자가 잘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뛰어나서만이 아니라, 시기의 구조, 기대, 관계, 시스템 등이 복합적으로 함께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조직에서는, 그 맥락들을 모두 제거한 채 “그 사람은 됐는데, 너는 왜 안 되지?”라고 묻는 순간, 질문은 진단이 아니라 압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커리어 이야기를 할 때 ‘능력’보다 먼저 ‘기대의 구조’를 살펴본다. 이 역할에 대해 조직이 정말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대가 문서로 명시된 것인지, 아니면 전임자의 그림자를 따라 형성된 것인지.
그리고 개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정말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만약 이 질문이 정리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조직 속에서 계속해서 잘못된 기준과 싸우게 된다.
“전임자가 그랬으니, 너도 그럴 줄 알았어.” 이 문장은 사실을 말하는 문장이 아니다.
생각을 아끼기 위해 만들어진 문장이고, 맥락을 생략하기 위해 선택된 문장이며, 책임을 구조가 아니라 사람에게 넘기는 문장에 가깝다. 그렇기에, 조직에서 이러한 문장을 의심하지 않는 한, 조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개인은 같은 자리에서 자신을 깎아내리게 될 것이다.
생각의 함정은 늘 이렇게 작동한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게 착각이라는 사실조차 눈에 띄지 않게.
Jane 제인
MindMark Lab은 행동신경과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인간의 잠재된 욕망와 행동 원리를 분석하여,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한 최적의 성공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휴먼 솔루션 연구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