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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림 Oct 19. 2024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군대에서 만난 라디오 스타

고대하고 고대하던 파견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군용 트럭이 아닌 15톤 사제 덤프트럭을 운전해야 했다. 기존 부대에서는 군용 두 돈 반(5톤) 차량을 운전했기 때문에 운전을 다시 배워야 했다.


이 특수한 부대의 주요 임무는 자유로(自由路) 길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흙을 남한 최 전방 즉, 북한 인근까지 들어가서 덤프트럭에 실어와야 하는 임무였다.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의 8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운전을 가르치는 사수와 부사수는 거의 반나절 이상 차 안에서 함께해야 했다.


거의 3주 이상 사수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군인이라는 상하 관계라기 보단 형과 동생의 관계처럼 돈독해져 있었다. 근데 가만 보니 사수의 얼굴이 낯이 익다. 하지만 하늘과도 같은 선임에게 사회에서 뭘 하셨냐? 묻기는 어려웠다. 너무 익숙한 그의 목소리와 외모, 아무리 봐도 내가 사회에서 이미 알던 사람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얼마 뒤 가까운 두 달 선임에게 물었다.


“혹시 제 운전을 가르치시는 김병장님이 사회에서 뭘 하셨던 분인지 아세요?”


라고 묻자 선임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너 XX 라디오 몰라? 거기서 DJ 하셨던 분이잖아?” 


순간 내 귀를 위심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부도로 가족이 해체되고 늦은 밤 홀로 집에 있던 나를 달래 주던 그 라디오의 DJ가 바로 내 운전을 가르쳐주는 사수였다. 내게 꿈과 희망을 준 사람이 내 옆에서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팬심을 발휘, 김병장님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내 과거 이야기부터 꿈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당신이 나에게 끼친 영향력 등 그의 옆에서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내 말이 지겨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심야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사연자의 이야기를 경 청하 듯 내 말을 관심 있게 들어줬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김병장, 그가 전역을 하는 날이 되었다. 난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그를 떠나보냈다.


“전역하면 연락해, 얼굴 한 번 보자. 대학가요제 꼭 나가야 한다.”  


그가 떠나며 내게 해준 말이다.


1997년 12월 24일, 난 2년 6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전역하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특별한 날이었지만 연일 미디어에선 나라가 부도가 났다면서 IMF가 어쩌고 저쩌고 이런 말들만 쏟아내고 있었다.


거기다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아버지의 인생과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렇다고 김대중 대통령이 아버지의 그간의 고생을 알아주고 기억해 주진 않았지만 당시 김 후보의 당선 소식에 기뻐하시던 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다.


1998년, 학교에 복학을 한 나는 MBC 대학가요제 참가자 모집 광고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해마다 열리는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에 난 군대에서부터 오디션 참가를 위해 칼을 박박 갈았고 복학 후엔 블화로 나를 강제 탈퇴시킨 스쿨 밴드의 멤버들과도 화해를 하고 음악적 의기투합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1999년 밀레니엄을 앞둔 시기, 나는 내 자작곡으로 MBC 대학가요제 지역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노래는 'IMF 시대'의 암울함을 대학생의 입장으로 표현한 'IamF'였다. 성적표에 있는 낙제 점수인 F학점을 빗대어 나라의 경제가 F학점이라 패러디한 이 곡은 현 대한민국의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와 함께 본선까지 오르며 우수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젠 정말 록스타로 살아갈 장밋빛 인생이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 제목은 신해철 2집에서 착안했고 ‘iamF는’ 작가 최호림이 실제 1999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자작곡이다. 표지는 전시공의 작품이다.


- 대한민국의 IMF 사태

나라가 부도났다던 대한민국의 IMF 외환위기는 1997년 12월 3일부터 2001년 8월 23일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고, IMF 외환위기는 대기업들의 연쇄 부도와 외환 부족으로 인해 발생했다.


1997년 초, 한보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여러 대기업들이 도산하면서 경제 위기가 심화되었고 대규모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대한민국의 외환 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했고, 결국 한국 정부는 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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