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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an 20. 2023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숨은 제주를 발견하는 재주 13 - 망장포 포구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동요 중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지금 보니 가사가 좀 이상하다. 헌 집 줄 테니 새 집을 달라? 아무 조건 없이? 요즘 부동산 가격이 심상치 않은데 두꺼비가 그런 부탁을 들어줄 리가..

그나저나 두꺼비는 거래에 응했을까?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안다. 그런 일은 동화 속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현대사회에서 헌 집은 쉽게 부서지고 그 자리엔  집이 올라갈 뿐이. 새것은 너무도 쉽게 옛것을 대체한다. 그 뒤에는 새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여 이득을 챙기는 개발론자들 있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옛것이 있던 자리에 새것을 올리면 훗날 옛것이 그리워진다 해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음을. 이것이 옛것 사진 앨범 속에 더 많이 남게 된 이유이다.


새것 vs 옛것.  디지털 vs 아날로그. 나는 여기서도 마이너 취향이다. 깔끔하게 리마스터된 디지털 음원보다는 LP 음반 특유의 질감을 선호한다. 아직도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 음반이 나왔을 때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비닐을 뜯을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전자책보다 실물로 만져지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건 물론이다. 글쓰기도 컴퓨터로 쓸 때보다는 종이 위에 연필로 쓸 때가 더 잘 써지더라.


포구에 대한 취향도 마찬가지다. 현대식 구보다는 옛 포구가 더 좋다. 옛 포구 모양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 있다면 캠핑카를 끌고 가서 며칠이고 눌러 살 준비가 되어있다.

지금까지, 나의 1픽 포구를 소개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다. 이제 그 포구를 소개할 차례다.


옛 포구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정해안도로처럼 길 끝이 막혀있어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덕분에 소수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포구. 망장포 포구되시겠다.


확실히 돌로 한층 한층 쌓아 올린 포구에는 매끈한 시멘트가 발린 현대식 구가 담을 수 없는 포근함이 있다. 현대식 구가 단체 발송한 e메일이라면 옛 포구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손 편지 같은 느낌이랄까? 포구 크기도 아담 게 어선은 못 품어도 뗏목 몇 척 정도는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옛 포구에는 아무래도 테우 같은 옛날 배가 잘 어울리겠지? 파도가 들어오지 못하니 여름철 아이들 수영장으로도 금상첨화겠고... 소나무, 나무 데크 등 주변 경관과의 조화도 꽤 자연스러운 게 이정도면 나의 최애 포구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포구를 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현대식 구가 눈에 걸린다.

역시 난 시멘트 느낌은 별로야, 하다가 방파제에서 일출을 맞이하라며 그려놓은 벽화를 보고는 이내 마음이 수그러진다. (실제로 코로나 전까지는 이곳에서 새해맞이 행사가 열렸다) 방파제 끝에 걸린 빨간 등대하며 저 멀리 지귀도까지 보이니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오.


설마 망장포 포구마저 너무 작다고, 옛스럽다고, 시대에 뒤처진다고 개발하려 들진 않겠지? 하긴 하논에 야구장을 짓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여기에 뭔들 못할까?설마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 노래를 불러주리라.

'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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